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 있어야 한다. 살기 싫은 곳을 떠날 자유는 자연권이다. 근현대 시민사회의 성립 원리를 해명하는 가설적 이론들 중 하나인 사회계약론은 암묵적으로 국가에 의한 보호 및 국가가 주는 다른 이익들을 수용함으로써 시민들은 국가에 동의를 표시하고 있으며 그 동의는 시민들을 국가에 구속시키는 동의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배후에는 국가가 지우는 부담과 국가가 제공하는 이익들이 싫으면 개별 시민들은 짐싸서 떠날 수있다는 생각이, 거주가 동의를 구성한다는 생각이, 따라서 그 국가를 떠나는 것만이 동의하지 않음의 표시로 간주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실로, 절 우물에 독을 풀어넣었거나 무슨 죽어 마땅한 죄를 저지르고 떠나려 한다는 증거가 없다면 그 동의하지 않음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 그가 한국 사회에 적잖은 위해를 끼친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간첩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주장은 넌센스이다. 그는 한국에서의 삶에 좌절하고 희망을 잃은, 그래서 바로 윗 나라로 가서 산다 한들 이보다 더 고달프겠는가라는 생각이 든 우리 주위의 흔해빠진 서민들이나 돌이킬 길 없이 무너져 내린 자영업자나 한달 앞을 내다볼수 없는최하 비정규직 종사자일 수도 있다. 당신이 얼추 50미터쯤 앞 수풀 경계에서 사람같기도하고 사냥감같기도 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걸 본 사냥꾼이라면 일단 쏘고 보겠는가? 만약 한국의 법이나 군령이, 과거 동독이 그랬고 현재의 북한이 그러하듯이, 그 동의하지 않음을 사살해 마땅한 죄로 규정하고 있다면 그 법이나 군령이 잘못된 것이고 한명의 기능 담지자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한명의 양심과 인격으로서의 개인은 그 법과 군령을 거부해야 마땅하다. 초병은 사격을 가하더라도 대충 조준해서 얼마든지 그를 살려줄 수 있었고 그 결과 그 초병이 입는 손실은 한 사람의 목숨값에 비하면 아주 미미하다. 그럼에도 초병은 굳이 조준 사격해 사살했다. 물론 초병이 그렇게 한 것은 그의 잘못만이 아니다. 그런 행동이 근현대 자유주의 사회의 가치기반인 인간의 존엄성의 이념을 깔아뭉개는 행동이라는 것을 그에게 가르쳐주지 못한 우리 모두, 한국 사회가 아직 이 수준밖에 못되는데 책임있는 이들 모두의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