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성경에 따르면 신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창세기 1 27~28, 공동번역)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 27~28, 개역개정)

 

옛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믿었던 것 같다. 물론 아버지라고 불리는 신에게 음경과 고환이 있어서 그 모양대로 아담을 창조했다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유일신에게 음경이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성령이 숫처녀 마리아를 임신시켜서 예수가 태어나도록 할 때 음경을 사용했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은 별로 없어 보인다.

 

신의 형상을 이야기할 때 주로 떠올린 것은 합리성, 이성, 추론 능력, 생각하는 능력, 도덕적 직관 등이었을 것이다. 신은 완벽하다. 따라서 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이성 역시 완벽할 것이다. 물론 사탄이 심어 놓은 육욕에 의해 방해를 받지 않는다면 말이다.

 

 

 

다윈 이후로 대체로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 역시 자연 선택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보는 이론(?)보다는 인간이 자연 선택의 산물이라고 보는 진화 생물학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신은 완벽한 반면 자연 선택이 완벽한 기제(mechanism)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자연 선택은 기존에 존재하는 변이 중에 번식에 더 유용한 것을 추려낼 뿐이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보면 정말로 바보 같아 보이는 기제가 진화하기도 한다.

 

인간의 눈의 경우에는 시신경이 망막 안쪽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시신경 다발이 망막의 일부를 가린다. 반면 문어의 경우에는 시신경이 망막 바깥쪽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 문제가 없다. 대다수 과학자들은 척추 동물의 망막이 바보 같은 설계의 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런 면에서는 문어 같은 두족류가 더 낫다. 신이 인간을 너무나 사랑해서 겸손을 가르치려고 그렇게 창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http://en.wikipedia.org/wiki/Blind_spot_(vision)

 

 

 

자연 선택의 산물이 불완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수학자에게 매우 불길하다. 눈이 불완전할 수 있다면 인간의 추론 능력도 불완전할 수 있다. 수학의 공리 체계에는 자명해 보이는 공리가 있고, 역시 자명해 보이는 기본적 추론 절차가 있다. 공리에서 시작해서 추론 절차들을 거쳐서 정리(theorem)로 이어진다. 이런 식으로 정리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수학의 증명이다.

 

만약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한 인간의 추론 기제가 불완전하다면 우리가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추론 절차에 오류가 끼어들지도 모른다. 그러면 명제 P도 증명되고 명제 ~P(not P)도 증명되는 골 때리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러지 말라는 보장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설사 누군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한다고 해도 그 증명이라는 것이 결국 기본적 추론 절차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 기본적 추론 절차의 무결성을 증명하기 위해 기본적 추론 절차의 무결성을 가정한다면 순환 논리일 뿐이다. 수학자의 이런 불안감을 코미디로 표현한 글이 있다.

 

What the Tortoise Said to Achilles(거북이가 아킬레우스에게 한 말),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http://www.ditext.com/carroll/tortoise.html

http://fair-use.org/mind/1895/04/what-the-tortoise-said-to-achilles

 

 

 

“이 공리 또는 추론 절차는 내가 생각해 볼 때 너무나 자명해 보인다”라는 느낌은 제대로 된 근거로 볼 수 없다. 자연 선택이 자명하지 않은 것을 자명하게 생각하도록 인간의 뇌를 “설계”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에는 빨간색이나 파란색이 없는데도 자연 선택은 세상에 그런 색이 있는 것이 자명해 보이도록 하는 시각 처리 기제를 “설계”했다.

 

그렇다면 왜 수학자들은 공리 체계의 무결성을 대체로 믿을까? 내가 보기에는 “지금까지 엄청난 수학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잘 정립된 공리 체계에서 P~P가 동시에 증명된 적은 없었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라고 암묵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젠장... 연역법의 무결성을 귀납법으로 입증하려고 하다니... 다들 귀납법보다 연역법이 우월하다고 하던데...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다. 세상에는 신은 없어 보이고 불완전한 인간은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없어 보인다.

 

 

 

지식의 확실성 문제에서는 과학이 수학보다 더 참담하다. 설사 수학적 추론이 완벽하다고 가정해도 과학적 지식의 완벽성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수학과 달리 과학에서는 실증적 검증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실증이라는 것이 감각에 의존한다. 그리고 자연 선택이 만들어낸 감각 기관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이것은 인간이 고질적으로 착시에 시달린다는 점만 봐도 뻔하다.

 

게다가 근본적으로 시각 체계는 완벽할 수 없다. 세상은 3차원인데 망막은 2차원이다. 세상에 대한 정보가 망막에 맺힐 때 정보 손실이 일어난다. 2차원인 면에 3차원인 입체에 대한 정보를 온전히 담을 수는 없다. 적어도 빛을 이용하는 망막에서는 그렇다. 인간의 뇌는 이미 손실된 정보를 바탕으로 3차원 공간을 재구성해낸다. 자연 선택이 아무리 완벽한 시각 기제를 만들어내려고 “애써도” 손실된 정보를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감각 기관이 불완전하다면 감각 기관에 의존하는 과학적 검증이 불완전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다가 과학적 검증에는 귀납법의 고질적인 문제까지 개입된다.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 지적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룰 생각이다.

 

 

 

이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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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