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답글 늦어서 죄송합니다. 우선 님의 댓글에 대한 '나름' 답변을 드립니다.

2. 님의 댓글 중 '인간의 도'......에 대한 설명에 대하여는 100% 맞는 주장으로 이견이 없습니다만 루가노 리포트의 존재가 가능한 이유는 역사에서 인간의 위치를 판단해보면 될겁니다.

아니 왜 소비와 기술발전은 줄일 수 없고 인간 머릿수를 줄일 수 있다니 인간에 대한 도가 땅에 떨어졌나보군요. 인명경시, 인명경시 하더니 이런 재미진 주장이라니. 기술발전 그까이꺼 좀 늦추고, 소비도 좀 낮추면 안 되는 건가요? 

이 개념에 대하여 예전에 제가 '인간의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는 제하의 글을 블로그에 쓴 적이 있었는데 검색해보니 제 글을 인용한 블로그가 있어 그 글을 재인용합니다.(자기글을 다른 사람이 인용했을 때 자기글의 원본이 없어 자신의 글을 인용한 글을 인용할 때 맞는 용어가 뭐더라...? ^^)


3. 그리고 약탈국가...... 영어로 predatory state라고 하는데 그 요체를 인용, 요약하여 말씀드리면....

<정복, 약탈 국가>

-자원 추출 등의 과정을 통해 수립된 원형적 국가가 정복국가/강압수단을 소유하고 타인 또는 타 집단을 강제적으로 지배하는 데 전문화된 정치집단(또는 군사집단)이 특정 영토내외의 경쟁세력을 무력으로 정복함으로써 강압력을 독점하고 국가를 수립했기 때문이라는 것

-이런 국가는 약탈국가로도 칭할 수 있다/국가 자신이 생산적 활동을 통해 부를 창출하지 않으면서 특정 영토 내의 사회성원들에게 폭력을 사용하거나 폭력 사용 위협 혹은 외부로부터의 침략위협을 이용하여 ‘보호요금’을 갈취하기 때문(그래서 ‘갈취적 국가’라고도 한다)

-이런 국가도 최소한의 질서유지 기능은 수행/그 이유는 1. 사회내부 저항은 정복국가와 약탈국가에게 가장 큰 위협/2.자원을 추출할 경우 약탈적이라도 최소한의 보호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

-간접 통치(봉건국가)에서 직접통치(국민국가)로 발전/간접통치는 봉건영주, 교회와 성직자, 지방토호세력과 같은 중간매개자에 의해 국가권력을 간접 행사/그러다 중간매개자가 모두 제거 또는 배제되면서 직접통치로/봉건국가-신분제국가-절대주의 국가로 이행된 유럽/통치력의 국유화/주민의식과 문화를 동질화/도량형 통일을 통한 지배력 강화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 사회로 개방형을 띠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그렇지 않죠.


그리고 제 글......

인간의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인간을 하나의 '재화'로 가정해 보자.


'인간을 재화로 가정하다니 아무리 가정이라지만 반인륜적이다'라고 발끈할 분도 계시겠지만 글쎄? 인류가 생긴 이래, 그리고 문명이라는 기록이 생긴 이래 인간은 '재화' 이상의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다.


특히,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누어 사고한다면, 피지배층은 지배층의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재화'에 불과하다. 2:8의 시대? 인류의 역사를 잠시 반추해 보자. 2:8의 시대가 아닌 적이 있었나? 물론, 민주주의 시대에서는 누구나 피지배층에서 지배층으로 신분 상승을 할 자격을 부여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 신분 상승은 아주 일부의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와 같은 것으로 대다수의 피지배층에게 '나도 할 수 있다'라던가 '나는 능력이 안되서 불가능해'라는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르네상스 이후로, 인간이 특히 '재화'로 소비되는 전쟁이 점차 대규모화 되고 빈번해진 것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인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지배층에게 인간이라는 '재화'가 퍼도퍼도 닳지 않는 무궁무진한 자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일반화 되면서 '재화'간의 차별화와 대결의 결과가 인류의 전쟁을 점점 더 대규모로 그리고 빈번히 발생시켰는지 모른다.



만일, 당신이 목이 마른데 누군가 당신에게 시원한 콜라 한잔을 준다고 해보자. 마침 목이 마른 당신은 '달콤하게' 콜라 한잔을 마실 것이다. 당신에게 콜라를 건내준 사람에게 감사하면서... 그런데 한잔 더 권한다. 이미 갈증이 해소된 당신은 상대방의 고마움에 채 뿌리치지 못하고 마실 것이다. 아니, 갈증이 완전히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 두번째 잔 역시 고맙게 마실지 모른다.


그런데 세번째 잔, 네번째 잔..... 계속 권유를 해온다. 그러면 당신은 세번째 또는 네번째 잔, 아니면 그 이후의 잔에서 'No thanks'를 할 것이다. '한계 효용의 법칙'이다.


즉, 특정 재화를 소비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그 재화를 추가로 소비하면서 느끼는 '쾌감'보다 크며 특정 지점에 가면 재화의 소비로 인한 '쾌감'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짜증으로 변할 수 있다. 물론, 예외는 있다. 그 것은 '투기'. 인류의 탐욕은 제어될 수 없는 것이라 '탐욕을 만족시키는' 투기는 한계효용의 법칙이 적용이 되지 않는다.


'천민자본주의의 사촌격'인 신자유주의가 그 원천에는 인간의 탐욕을 무제한으로 발휘하게 만들며 소위 재테크가 자본주의의 적이라고 내가 주장하는 이유이다.



각설하고,


전쟁은 탐욕의 정치적 버젼이다. 환원하면 탐욕은 전쟁의 경제적 버젼이라는 것이다. 탐욕은 돈의 논리이지만 전쟁은 결국은 인간 머리수의 논리이다. 그러나 많인 선각자들이 인간의 정치적 탐욕에 대한 '죄의식'을 꾸준히 설파해왔고 그 결과 현대에서는 불과 몇십년전까지 이루어졌던 대규모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자 이제 인간의 머리수가 '지배층'에게 새로운 골치거리로 등장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인간이라는 재화가 넘치면 '전쟁터'에서 소비하면 된다. 그러나 이제는 인간이라는 넘치는 재화를 마땅히 소비할 '호재'가 없다.


마치, 콜라 잔을 열번째 권유...를 넘어 강제받는 것처럼 지배층에게 '인류'는 공급의 초과로 짜증이 나는 재화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넘쳐나는 재화는 인류 공멸이라는 공포의 시나리오를 탄생하게 만들었다.


"인류가 생존하려면 인간의 30%는 없어져야"라는, 중앙일보에서 보도한, 발표되지 않은 미국의 한 연구기관의 보고서는 재화로서의 인간이 이제는 재화가 아니라 하나의 소각되어야 할 '폐기물'과 같은 존재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나마 넘쳐나는 재화의 인류를 견인한 것은 '신기술'이었다. 산업혁명은 급속도로 팽창해오는 인류를 적절히 소화내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부족해 식민지 시대를 양산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의 미국.


미국은 이미 1930년 대에 자신의 나라가 '인간이라는 재화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인구수가 많은 것'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런 미국을 견인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고 또한 냉전이었다. 냉전이 끝나자 미국은 미국보다 더 절박한 위치에 처한 독일이나 일본 등에 의하여 그들의 재화를 감당하기 위한 산업군을 빼앗겼다. 그리고 20세기 말.


인터넷 시대에 도래한 인류... 그리고 그 선봉에 선 미국은 신기술로 그들의 위기를 극복, 아니 늦출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것으로 땡. 인류 전체를 소비 대상으로 하는 신기술의 등장은 늦어지고 있고 그런 신기술의 효과가 지속될 것이라는 착각은 허무한 잔치로 끝났다.


지금, 지구촌 위의 각 나라를 보면 인간이라는 넘쳐나는 재화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간의 탄생이 축복, 그러니까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에서 '쾌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쾌감'을 양산한다. 그리고 그런 인간의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에서 가장  앞선 위치에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잘했건, 잘못햇건, 대한민국에서 정치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골치 아픈 것이다. 왜냐하면 '잉여 재화'인 인구수가 지구촌에서 가장 많은 나라이니까. 인구밀도가 1,2등을 다투는데 그나마 인간이 경작할 수 있는 땅만을 놓고 판단한다면 대한민국의 인구밀도는 가히 독보적인 존재이리라.


어쩌다가 대한민국의 인구수가 이렇게 많이 늘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최소한 기록상으로는 조선 숙종 때의 인구 3백만이 불과 300년 전의 일이다.) 대한민국이 그나마 버텨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인구수는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토지의 면적에 비해 너무 많다.


그런데, 그 대한민국에서, 인구밀도가 독보적'일' 대한민국에서 지배층의 '과점'은 또한 세계의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한국에 비정규직이 유독 많은 이유이다.


인류가 인류의 장래에 장애물로 등장한 현 시점에서 넘쳐나는 재화인 인류까지 포함하여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시대를 꿈꾸는 것은 '과대망상'에 불과할까?
(출처는 여기를 클릭-원글은 제가 쓴 글입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