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김민아 논설위원의 글과 보도를 요약 정리하였습니다.
길벗님은 방송보도를 가지고 시비를 하시던데 교학사 교과서의 내용을 보고 어떤 생각인지 무척 궁금해 집니다.
어떤 부분은 역사해석이기에 다양한 해석도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마는 그러나 기본적으로 역사관이라는 것을 벗어나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역사라는 것이 학자들에게는 모르지만 일반 국민들 특히 교과서 같은 것은 가치중립이거나 객관적일수가 없는 것입니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반론도 가능하고 토론이 되지만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교과서는 국가나 사회에서 통용되는 그리고 국가적,민족적 관점에서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기때문에 어떤 역사관으로 교과서를 만드느냐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일본 극우들이 교과서를 만들때마다 일본 국내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비판과 반발이 있어온 것입니다.

그런점에서 교학사 교과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보아도 이 사람들의 역사관 가치관이 일본 극우와 상통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위해 일본 식민통치를 미화하고 독재를 정당화하는 것일까요?
차라리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건조하게 공과과를 나열하면 이해라도 하겠습니다마는
교학사 교과서의 기술내용은 유괴범이 아이를 납치해서 새옷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었으니 유괴범은 좋은사람이니 욕하지 말아라
하는 식입니다.

 

  1.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의 회고록을 인용하여 당시 시행하는 정책은 전부 민비의 계책이었으며 국왕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중략) 근본적으로 화근을 제거코자 도모한 것이다.” 회고록 밑에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과격한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학습문제도 실었다.

  2. 일제 강점기에 공중 보건과 전염병 예방에 힘쓴 결과 유아 사망률이 낮아지고, 식민지배가 지속될수록 근대적 시간관념이 한국인에게 수용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형적인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일본 영자신문 재팬타임스는 한국 교과서가 일본의 식민 지배를 찬양한다고 보도했다.

  3.이승만의 이름은 11쪽에 걸쳐 80회 넘게 언급된다.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2공화국 수립 과정은 모두 17행으로 다뤄진다. 단일 사안인 새마을운동은 21행에 걸쳐 소개된다. 분량만 보면 헌법 전문에 나오는 4·19 혁명보다 새벽종이 울렸네가 중요해 보인다. 10월 유신을 자유민주주의 정도에서 벗어난 비상체제인 동시에 독재라고 규정하면서도 1쪽에 가까운 분량을 미·소의 데탕트 외교, 닉슨 독트린, 북한의 군사력 증강 등을 들어 유신의 불가피성을 설파하는 데 할애한다.

  4.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의 희생도 초래되었다”(제주 4·3사건), “남한에서도 민간인들에 대하여 살상이 일어났다. (중략) 이들이 북한에 협조할지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에 이들을 처형하였다”(국민보도연맹 사건), “시위대의 일부가 무장을 하고 도청을 점거하였다. 계엄사령부는 계엄군을 광주에 진입시켜 광주를 장악하였다. 이 과정에서 희생자가 많이 발생하였다”(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과 살상은 있는데, 이를 야기한 주체는 없다.

  5.도종환 민주당 의원은 10교학사 교과서는 강화도조약에 대해 개혁파의 주장과 고종의 긍정적 인식으로 체결됐다고 서술하고 있다이는 강화도조약은 조선에 국교 수립을 강요한 불평등 조약이라고 기술한 후소샤 교과서보다 훨씬 일본 측 입장을 반영한 기술이라고 밝혔다.

  6.일제의 철도사업에 대해서도 교학사 교과서는 “1900년대 초에 개통된 철도는 일본으로 쌀과 면화 등을 실어나르고철도를 이용하여 먼 거리 여행도 가능해졌다이에 따라 새로운 공간관념이 형성되었다고 긍정적으로 서술했다. 후소샤 교과서는 한국 병합 후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서 철도·관개시설을 정비하는 등 개발을 행하고라고 기술했다. 국내 다른 교과서들은 일제가 철도를 부설하는 과정에서 토지를 헐값이나 무상으로 수용하고 노동력을 수탈해 농민의 저항을 받기도 했다. 호남평야의 쌀과 북부지방의 물자를 수탈할 목적으로라며 수탈 목적이 있었음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