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만들 때 양자역학 이론도 응용된다고 한다. 양자역학에 대해서는 대중서 말고는 읽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정확히 어떤 식으로 응용되는지 모른다. 어쨌든 양자역학적 우연이 컴퓨터의 작동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무언가 조치를 취할 것이다. 예컨대 AND 회로가 항상 AND 회로답게 작동하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다. AND 회로가 가끔 OR 회로처럼 작동한다면 그 컴퓨터는 가끔 미친 듯한 행동을 보일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양자역학적 우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는 늘 100% 결정론적으로 작동한다. 컴퓨터는 시키는 일을 100% 그대로 한다. 물론 고장 날 때에는 제외하고.

 

기본 회로의 수준에서 볼 때 AND 회로는 늘 AND 회로답게 작동한다. CPU의 수준에서 볼 때 ADD(더하기) 명령은 늘 정확하게 더하기를 한다. 2 3을 더하라고 명령을 내리면 늘 5가 된다. 프로그래밍 언어의 수준에서 볼 때 애매한 명령어는 없다. 한국어 같은 인간의 자연어에 애매한 구석이 많은 것과는 다르다. 또한 조금 틀리게 말해도 그냥 넘어가는 일상 대화와는 달리 프로그래밍을 할 때 문법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컴파일 에러가 나서 프로그램을 작동할 수 없다.

 

적어도 현재 널리 쓰이는 컴퓨터는 시키는 일을 100% 정확하게 한 치의 틀림이 없이 하도록 설계되었다.

 

심지어 난수 발생기도 그렇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런 규칙이 없이 무작위로 숫자가 튀어나오는 것 같지만 난수 발생기를 설계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복잡하기는 하지만 100% 정해진 규칙대로 숫자나 나온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진짜 난수 발생기가 아니라 유사 난수 발생기다.

 

 

 

양자역학적 우연을 응용해서 진짜 난수 발생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현대의 기술은 너무나 발전해서 양자역학적 우연을 “증폭”해서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진짜 난수 발생기를 만드는 것이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내가 양자역학이나 현재의 기술 발전 수준을 잘 몰라서 이런 허황된 생각을 하는 것일까?

 

유사 난수 발생기는 컴퓨터에서 아주 요긴하게 쓰일 때가 많다. 그렇다면 진짜 난수 발생기가 쓸모가 있을까? 유사 난수 발생기로는 해결이 안 되고 진짜 난수 발생기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을까? 암호화에 쓰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잘 모르겠다.

 

어쩌면 진짜 난수 발생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투자할 만큼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축구장 만한 요트를 사서 자랑하고 다니는 허영심 많은 재벌의 자랑 거리 이외에는 쓸모가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미 누군가 이런 난수 발생기를 만들어서 쓰고 있는데 (또는 그냥 자랑만 하고 있는데) 나만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뇌의 경우는 어떨까? 내 짐작으로는 뇌세포 하나만 보더라도 양자역학의 기준으로 볼 때에는 충분히 거시적이어서 양자역학적 우연은 뇌의 작동에 사실상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 같다.

 

 

 

이덕하

2013-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