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한 SBS의 교학사 역사교과서 오류 지적

                                                       2013.09.09


어제 저녁 8시 SBS뉴스의 메인 뉴스로 방송된 <교학사 역사교과서 오류>를 보고 어이가 없어 몇 자 적어 볼까 합니다. SBS 기자는 무슨 의도로 그런 엉터리 기사를 취재하고 데스크는 검증도 없이 시청자를 호도하는 기사를 스크린하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인터뷰한 역사학자라는 교수들은 무슨 근거로 저런 엉터리 취재에 동조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먼저 어제 SBS 뉴스에서 해당 기사를 링크하니 읽어 보기 바랍니다.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972878

지금부터 어제 SBS가 교학사 역사교과서의 오류라고 지적한 4가지 사항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에 들어갑니다.


1. 민비를 명성황후라 서술하지 않아 문제라고?

교학사 역사교과서(이후 교학사라 표기)에서 민비라고 서술한 부분은 <우리나라 최초 의료기관, 광혜원(1885년)>이라는 제목에서 “이후 알렌은 고종과 민비의 시의로 임명되어...”라고 한 부분입니다. 극히 정상적이고 그 시대에 맞게 잘 기술된 것인데 SBS는 민비를 명성황후라고 서술하지 않아 민비(민자영)를 격하시켰다고 말합니다.

민비(민자영)가 명성황후로 추존된 것은 민비가 죽고(1895년) 대한제국이 선포된 1897년 이후입니다. 따라서 광혜원이 설립된 1885년에는 민자영은 고종의 처로 민비 혹은 민왕후의 신분이지 명성황후일 수가 없음으로 1885년의 일을 서술한 교학사의 서술은 제대로 한 것입니다. 만약 저 자리에 ‘민비’ 대신, ‘명성황후’를 넣어 기술했다면 대단히 우스꽝스럽게 되어 버립니다. 당시 민자영(민비)이 ‘명성황후’로 불려질 수도 없었지만, 고종은 왕의 신분으로 칭해지고, 왕의 처는 “황후”라는 황제의 처로 표기되는 것은 맞지 않지요. 고종을 ‘광무황제’라고 표기했다면 그나마 격이 맞아지지만, 이것 역시 1885년의 시대상과는 맞지 않는 칭호입니다.

더 큰 문제는 민자영(민비)를 역사서에 ‘명성황후’라고 표기하지 않으면 민족적 반역을 저지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입니다. 민비가 당시 민중들에게 어떤 존재였으며, 민비가 민중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당시의 기록이나 보고 이렇게 난리를 피우는지 모르겠습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소위 진보적, 민중사학자라는 사람들이 민비를 ‘명성황후’라고 격상시키지 못해 안달하는 것입니다. 민비가 단지 일본인의 손에 죽었다고 <조선의 국모>라고 치켜세우고 ‘명성황후’라 불러야 한다는 것에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민비가 일본인에 의해 죽지 않았다면 아마 역사서는 ‘고부군수 조병갑’ 정도로 취급했을지 모릅니다. 그 정도로 민비는 고종의 안위와 왕실의 유지에만 급급했지 나라의 존망이나 민중의 삶에는 철저히 무관심했죠. 아니 무관심한 정도가 아니라 매관매직, 학정으로 원성이 자자했던 인물입니다. 이런 인물이 <조선의 국모>라 불리고 <명성황후> 뮤지컬로 미화되는 것은 역사의 왜곡이죠.

* 민비에 대해 제가 예전에 썼던 글을 링크하니 참고하십시오.

http://theacro.com/zbxe/?mid=free&search_target=nick_name&search_keyword=%EA%B8%B8%EB%B2%97&page=2&document_srl=827491

그리고 황현의 매천야록을 읽어 보시고 민비가 어떤 학정을 저질렀는지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일제시대 조선어 교육 관련

SBS는 교학사가 일제가 1920년대에 조선어를 필수과목으로 했다고 서술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며, 일제를 미화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1922년 제2차 조선 교육령에는 조선어를 필수과목으로 정했습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유화정책의 하나로 조선어를 필수과목으로 한 것인지 몰라도 조선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1938년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일제가 조선어 사용을 제한하는 제3차 조선 교육령에서는 조선어를 필수과목에서 빼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동아일보 1939년 12월 30일자 기사에서도 확인됩니다. 이 기사는 그 동안 조선어를 필수과목으로 해왔던 사실을 밝히고 제3차 교육령에서는 조선어를 수의과목으로 하여 학교장의 재량으로 한다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 동아일보 1939년 12월 30일자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39123000209202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39-12-30&officeId=00020&pageNo=2&printNo=6596&publishType=00020

교학사는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했는데 왜 SBS는 저런 비판 기사를 내보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와 관련한 것은 다음에 링크하는 ‘다만버’님의 글을 읽어 보시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당시의 신문기사 등 방대한 자료를 올려놓아 신빙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http://blog.naver.com/athina/40195401151


3. 독립운동가 김약연을 김학연으로 잘못 기술?

SBS는 교학사가 독립운동가 김약연을 김학연으로 오기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마치 김학연이라는 독립운동가는 없고 김약연만 있는데 교학사가 이런 오류를 저질렀다는 것이죠. 그런데 김학연은 김약연과 사촌지간으로 김학연 역시 독립운동가였습니다. 1908년 북간도에 민족학교인 ‘명동학교’를 설립한 사람입니다. 관련한 내용을 링크합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45817&cid=404&categoryId=404


<1906년에 설립되었다가 1년 만에 폐교된 서전서숙(瑞甸書塾)의 민족교육정신을 계승하여, 서전서숙을 나온 김학연(金學淵) 등 애국지사들이 1908년 4월 27일 화룡현 명동촌(和龍縣 明東村)에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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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명동학교 [明東學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물론 교학사가 김약연의 활동을 기술해 놓고 김학연으로 표기했다면 오기일 수가 있으나, 명동학교와 관련해 기술한 내용에서 김학연을 언급했다면 오기가 아니라 제대로 역사적 사실을 기술한 것이죠.


4. 제헌헌법 전문 해석을 왜곡했다고?

제헌헌법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제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써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참 별별 것을 다 트집 잡는다는 느낌입니다. 교학사가 제헌헌법 전문에 대해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것으로 해석한 것을 두고 SBS는 전문에는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음으로 교학사가 제헌헌법 정신을 왜곡했다고 비난합니다. 제헌헌법의 전문을 보면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라고 나와 있습니다. 기미 삼일 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고 표현한 것에서의 ‘대한민국’이란 임시정부를 이야기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당연하고, 이를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표현한 것은 문제가 없지요. 도대체 무엇이 문제라는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