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석기 ‘수군수군 사건‘의 가장 강력한 증거가 녹취록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주최 측 
모르게 몰래 녹음된 음원이 있다는 이야기이고 이것은 곧 도청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도청‘하면 내 인생에서도 의미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1973년 봄 백마 사단 사령부가 월남에서 철수를 해서 부평에 주둔하고 있을 때였다.
월남에 파병이 될 때는 보통 1년 이상 군생활을 한 사람들을 오기 때문에 1년을 월남에서 
근무하고 본국으로 오면 대부분 고참이 된다. 
이렇게 파월 부대는 보통 고참 병장들이 많아서 귀국해서 많은 사병들이 한꺼번에 제대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유명한 하경영이도 제대를 했었다.
고참 병장만 있는 기형적인 병력 구조를 메꾸기 위해서 각 부대에서 중고참, 신병들이 
차출이 되어서 전입을 해왔다. 


그 중에서 이름이 대통령과 한자까지 똑같아 이름만 가지고도 사단의 명물이 될 수밖에 
없는 헌병이 있었는데 사회에서 건달 생활을 하던 사람이라 노는 것이 비록 신병이지만 
선임들이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물건이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고등학교 2 년 후배여서 나와도 친하게 지냈다.


박 병장의 보직이 사단장 경호병이어서 낮에는 사단장실 앞에서 폼 잡고 보초를 서고
사단장이 퇴근한 밤에는 사단장 실에서 제가 사단장이 되어 노는 것이 일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박 병장(실질 계급은 일병인데 사단장 경호병이 위신이 있어야 한다고 
병장을 달고 다녔다.)이 허리에 찬 권총을 덜그럭거리면 나타나더니 흥분한 어조로
 “형님! 동기생 가운데 홍창환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글쎄? 480명을 다 기억할 수는 없잖아? 그런데 왜 그래?”

사연을 듣고 보니 이랬다.
당시에는 사단 내에 일반 전화가 없었고 사단장 실에만 일반전화가 있었다.
사단장이 퇴근한 이후 밤중에 자칭 ‘야간 사단장’인 박 병장이 사단장 책상에 앉아서 사단장 
전화로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금 통화 하시는 분 누구십니까? 관등 성명을 밝히시오.”하고 개입해 들어왔다. 


놀란 박 병장은 전화가 혼선이 된 줄 알고 감히 사단장의 전화에 끼어들다니 하는 생각에서 
 “너 어떤 놈의 새끼야? 지금 어디야? 당장 쫒아가서 박살을 내 주겠어.”하고 욕을 했다. 
상대방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자기가 있는 곳을 알려주며 당장 오라고 하길레 씪씩 거리며
한 걸음에 달려갔다.


알고 보니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보안대(지금의 방첩대)와는 별도의 감청부대라는 생겨서
각 사단 마다 2인 1조가 되어 통신부대 전화 교환실 옆에 작은 사무실을 차려놓고  지휘관의
공적인 대화는 물론이고 사적인 대화까지 24 시간 도청을 해서 기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박 병장은 “감히 어떤 놈이 사단장의 전화를 도청하느냐?”고
라고 생각하고 호기롭게 전화교환대 옆방을 발로 차고 들어갔더니 웬 민간인 복장의 인간이
처음 보는 기계 앞에 앉아서 비웃는 웃음을 띠고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잘못 했다고 싹싹 빌어야 할 판이지만 박 병장은 어안이 벙벙하기는 했지만
넉살 좋게 “여기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이냐?”고 묻고 능청스럽게 대화를 끌어가서 
결국은 통성명을 하고 상대방의 인적 사항까지 파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 출신학교를 확인하다 보니까 동문인 것을 알게 되고 사복이 ‘58회’라고 했다고
하는 것이다.  사태가 그렇게 되니까 박 병장은 완전히 꼬리를 내리고 
“선배님! 실례가 많았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합니다.”하고 나오긴 했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나에게 확인을 하러 온 것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늦은 나이인 25살에 군대를 갔기에 보통 그 나이의
사병이 있기 어렵다는 것을 박 병장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총치종 이야기를 다 듣고서 나로서는 “본인을 만나서 확인을 해보면 되겠네.”라고 했더니
박 병장은 “지금 당장 갑시다.”라고 해서 남들이 다 잠든 밤에 박 병장과 나는 내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통신대로 가서 '2 급 비밀 취급자외 출입금지'라고 쓰여 있는 도청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박 병장이 사복에게 “선배 님! 이 분이 58회인데 알아보시겠소?”하니까 사복이 어색하게 웃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으며 “선배님들 죄송합니다. 사실은 제가 61회입니다. 박 병장님 하도 
기세등등하게 나오길레 제가 꿀리기 싫어서 58회라고 했어요.”라고 했다. 


군대 내에서 필요에 따라 계급을 속이는 일(마이가리)은 있어도 고교 졸업회수를 속이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남자들 사이에서 고교 1 년 선배는 하나님과 동창생으로 알고 있는데 
속아 넘어간 것이 분한 박 병장이 “이 새끼가 선배를 가지고 놀아?”하고 무릎을 꿇고 있는 사복을 
걷어차서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이쯤 되니 나이 먹은 내가 '우리가 남이가?' 차원에서 수습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 후 이렇게 만난 우리 셋은 3 총사가 되어 한 동안 지겨운 군대 생활을 심심하지 않게 보냈다.
때로는 도청 사무실에 놀러 갔다가 사복이 자리를 잠간 비울 때 내가 대신 도청을 해주는
재미 있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과 패거리를 지어서 다니던 중에 좋은 교훈을 얻었는데 그것은 일생에 단 한 번
의 패싸움을 통해서였다.

한 번은 이들과 어울려 함께 외출을 나와 사복을 입고 명동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나는 일개 보병의 신분이지만 헌병과 보안대원과 어울려서 다 같이 사복을 입고 술을 한 잔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마침 그 때 교제 중이었던 집 사람도 함께 했었다.

술이 거나해져서 술집을 나오다가 좁은 골목에서 다른 젊은이들과 부딪혀 시비가 붙었다. 
사복을 입었지만 순간적으로 그들 3 명이 장교들이라는 감이 잡혀졌다. 거기서 오기가 더 
발동해서 ‘이 판에 장교들과 한 판 붙자’는 생각에서 죽기 살기로 싸웠다. 당사자들은 죽기 
살기로 싸운다고 해도 서로가 술이 취해 있다 보니 힘이 없어서 이리 저리 얽혀서 굴러다니는
 무더기 밖에 안 되다 보니 피차간에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그러나 6 명의 젊은이들이 
치고받고 하다 보니 순식간에 명동 골목이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한데 엉켰다가 잠시 숨을 고르려고 떨어진 사이에 집사람이 나를 온 힘을 다해서 잡아당겨서 
구석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하는 말이

“정신 차려요. 저 사람들은 보안대고 헌병이니까 괜찮지만 당신은 끌려가면 아무 것도
 아니잖아?”

듣고 보니까 정말 그 말이 예수님 음성이었다.
정신이 버쩍 들어 약간 비겁하지만 슬그머니 작전상 후퇴를 감행(?) 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신고를 받고 경찰이 와서 파출소에 끌려가 헌병들이 오고 등등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끝이 났다는 것이다.


패거리 문화는 개인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패거리는 패거리 논리를 만든다. 즉 요즘 말로 하면 진영논리이다.
네 편 , 내 편을 나누고 우리 편에서만 통하는 논리를 말한다.

예수는 분명 진영논리를 폈다. 세상과 자기, 즉 세상과 자기를 따르는 공동체로.
세상이란 절대로 타협하거나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가르쳤다.
나에게 예수가 어떻게 세상을 대했는가를 가르쳐준 이는 우찌무라 간죠였다.
그가 말한 “세상은 어느 장군 보다 무섭다’고 한 말을 나는 영원히 잊지 않고 기억한다.

예수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요한복음 14장에 잘 나타나 있다.
그래서 그 무서운 세상과 싸우기 위해서 거룩한 패거리, 즉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다.

예수는 말끝 마다 ‘너희는 서로…’를 강조함으로 ‘거룩한 패거리’를 만들려고 했다.
예수가 이야기한 모든 것은 개인들이 세상에서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그를 따르는 제자공동체에게 한 말이다.
즉 예수의 논리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가르친 윤리가 아니고 공동체 윤리라는 것이 
신학적으로 정설이다.

그러므로 공동체를 전제로 했던 예수의 가르침을 개인적으로 멋대로 해석하면 사람 병신 
되는 수가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