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 제목 : The Mind's I :  Fantasies and Reflections on Self and Soul

엮   은  이 :  Douglas R. Hofstadter  and Daniel C. Dennett

출   판  사 :  Basic Books        1981            

 

번역서 제목 :  이런, 이게 바로 나야 !

옮    긴     이 :  김동광

출    판     사 :  사이언스 북스  1판 4쇄   2011, 10,  21

 



 

오래전에 사두었던 책인데 이제사 읽기 시작했다. 조금 읽어보니 진작에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덕하님과의 약속도

있어서 번역본과 비교해 보면서 읽었다.  괴번역 『 괴델, 에셔, 바흐 』때문에 내 눈높이가 많이 낮아져서 아주 나쁜 번역은

아니군 했는데 그것도 잠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번역이 나오기 시작했고 원문을 보니 오역으로 인한 난해함이었다.

 

읽어본 부분은 <서문>, <보르호스와 나>, <보르헤스와 나>, <전주곡>, <마음,뇌,프로그램> 이었는데 오역이 많이 있었다.

단순한 오역이 아니고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오역들이었다. <전주곡>은  호프스태터의 글로 『 괴델, 에셔, 바흐 』에도

실려 있어 두 사람의 번역을 비교해 볼 수 있어서 흥미로왔는데 둘 다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  호프스태터의 언어유희에 대한

박여성씨의 옮긴이주가 내용파악에 아주 도움이 되었다.  박여성씨 번역에 칭찬할 부분이 있다니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었다 !

 

자 그럼 또 어떤 엉뚱한 번역이 독자들을 괴롭혔는지 보자. 다니엘 데닛이 쓴 서문에 있는 아주 재미있는 인지 실험인데 역자

김동광씨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해서 완전 엉터리로 번역했다. 과학서 전문 번역가라고 하는데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p30   예를 들어  언어심리학자 제임스 래크너 James Lackner 와 메릴 개렛 Merrill Garrett 의 놀라운 발견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들에 대해서는 「 더 깊은 내용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를 보라). 그들은 문장을 이해하기 위한 무의식 채널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동시 청취 dichotic listening (좌우의 귀에 동시에 소리를 들려주는 시험 - 옮긴이) 테스트에서

        피실험자들은 이어폰을 통해 두 개의 다른 채널을 들으면서  그 중 한쪽 채널에만 주의를 기울이라는 지시를 받는다.

 

p14  Consider, for example, the striking discovery by the psycholinguists James Lackner

        and Merril Garrett (see “Further Reading”) of what might be called an unconscious channel

        of sentence comprehension. In dichotic listening tests, subjects listen through earphones to

        two different channels and are instructed to attend to just one channel.

 

 

 



p30  그들은 주의를 기울여서 들은 채널의 내용은 똑같이 되풀이 하거나 정확하게 보고할 수 있었지만, 주의하고 듣지 않았던

        채널의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내용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만약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쪽 채널에서, 어떤 문장이

        읽혀졌다면 대개 필실헙자는 소리는 들렸다든지, 또는 남성이나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는 정도만 보고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그 소리가 그들의 모국어로 이야기되고 있었는지 정도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겠지만, 어떤 내용이

        이야기되었는지는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p14    Typically they can paraphrase or report with accuracy what they have heard through the attended

          channel but usually they can say little about what was going on concomitantly in the unattended

          channel. Thus, if the unattended channel carries a spoken sentence, the subjects typically can report

          they heard a voice, or even a male or female voice. Perhaps they even have a conviction about

          whether the voice was speaking in their native tongue, but they cannot report what was said.

 

* with accuracy 가  report  하나에만 걸리는 게 아니고 paraphrase 에도 걸린다고 봐야한다.

 

제안번역 : 보통, 그들은 주의를 기울인 채널을 통해 들은 것은 정확하게 표현을 달리해 말하거나  보고할 수 있었으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널에서 언급한 내용에 대해선 거의 말할 수 없었다. 만약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널을 통해 문장을

                   말해주면 피실험자들은 목소리를 들었다고, 또는 그게 남자 목소린지 여자 목소린지도 보고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 목소리가 자신의 모국어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있었으나 들은 내용을 알지는 못했다.

 

 

 

p30    래크너와 개렛의 실험에서, 피실험자는 주의를 집중하고 있는 채널에서 얼마간의 불명료한 문장을 들었다. 그것은 <그는

          공격 신호로 랜턴을 켰다 He put out the lantern to signal the attack>  라는 문장이었다. 동시에 피실험자의

          한 그룹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던 채널의 설명이 될 수 있는 문장을 들었다 (예를 들어 <그는 랜턴을 껐다> 등이다.

          한편 다른 그룹의 이어폰에는 (중립적)이고 무관한 문장이 입력되었다.

 

 p14    In Lackney and Garrett’s experiments subjects heard ambiguous sentences in the attended

           channel, such as “He put out the lantern to signal the attack.” Simultaneously, in the unattended

           channel one group of subjects received a sentence that suggested the interpretation of the sentence

           in  the attended channel (e.g. “He extinguished the lantern), while another group had a
           neutral or irrelevant sentence as input.    

 

* 와장창 다 틀렸다. 시발점은 ambiguous 다.  ambiguous 는 '불명료한' 이 아니고 '두가지 이상의 뜻을 가진' 이다.  여러가지

    뜻 가운데  어떤 뜻인지 불명료하지만 각각의 뜻은 아주 명확한 경우에 쓰는 말이다.   vague 가  '불명료한'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Bald' is vague( how many hairs can a bald man have?) but not ambiguous.

 *  He put out the lantern to signal the attack.  이 문장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공격신호로 랜턴을 켰다는 뜻은 없다.

    1. 그는 공격신호로 랜턴을 껐다.   2. 그는 공격신호로 랜턴을 내놓았다.

  

 * 세번째 문장도 완전히 틀렸다.

 *네번째 문장에서 '중립적'이라는 말이 편집실수로 인쇄되지 않았다.

 *  He put out the lantern to signal the attack. 이 문장을 두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한국어로 번역할 수 없다.

     옮긴이 주를 다는 것도 구질구질하므로 중의성을 갖는 적절한 우리말 문장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제안번역 : 래크너와 개렛의 실험에서 피실험자는 주의를 기울인 채널을 통해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문장들을 들었다. 예를 들면

                   " 그 농부는 올해도 피를 뽑았다 "  같은 문장이었다.  그와 동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널에서 피실험자의 한 모둠은

                   주의를 기울인 채널에서 들은 문장의 두 가지 뜻 중 하나로 해석한 문장을 들었다. (예를 들어 " 그 농부는 올해도 논에서

                   잡초를 뽑았다 ") 한편 다른 모둠은 중립적이거나 무관한 문장을 들었다.

 

 

                 

 

p31   그 결과 전자(前者)는 주의하지 않았던 채널로부터 무엇이 들렸는지 보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조군(對照群)에 비해

         그 불명료한 문장을 더 잘 알아들었다. 주의를 집중해서 한쪽 신호를 해석할 때 주의를 집중하지 않았던 쪽의 채널이 영향을

         미치는 현상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쪽의 신호가 의미론적 수준에서 처리되고 있다는,  즉 주의를 기울이는 쪽의 신호가

         이해되고 있다는 가정에 의해서만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무의식적인 문장 이해이다!

    

p15  The former group could not report what was presented through the unattended channel, but they

        favoured the suggested reading of the ambiguous sentences significantly more than the control

        group did. The influence of the unattended channel on the interpretation of the attended signal is

        processed all the way to a semantic level – that is, the unattended signal is comprehended – but

        this is apparently unconscious sentence comprehension!

 

* 김동광씨가 완전히 헤매고 있다. 앞에서 이미 틀렸으니 뒤에서 제대로 번역할 리가 없지.

* the suggested reading of the ambiguous sentences  : ' 두 가지 뜻을 갖는 문장  해석 중에서(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널을 통해)  제시한 독해 '  라는 뜻이다.

* the unattended signal is comprehended : '주의를 기울이는지 않은 쪽의 신호가 이해되고 있다" 인데  정반대로 번역했다.

 

제안번역 :    그 결과 전자(前者)는 주의하지 않았던 채널을 통해 무엇을 들었는지 보고할 수 없었으나  중의적 표현의 문장을 

                      해석하는 데 대조군(對照群)에 비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널을 통해 제시된 해석을 상당히 선호했다. 주의를

                      기울여 들은 문장의 해석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널이 미친 영향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신호가 의미론적

                      수준에서 처리되고 있다는, 즉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신호가 이해되고 있다는 - 그러나 이건 분명히 무의식적

                      문장 이해다 - 가설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p31  아니면 우리는 그것을 피실험자가 부분적인 정보 전달만이 이루어지는, 최소한 두 가지 의식을 가지는 피실험자가 존재한다는

        증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만약 우리가 피실험자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채널의 내용을 이해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진지하게 그것이 자신들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즉 그들은 그 문장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고 대답할 것이다.

 

 p15    Or should we say it is evidence of the presence in the subject of at least two different and only

        partially  communicating consciousnesses? If we ask the subjects what it was like to comprehend

        the unattended cannel, they will reply, sincerely, that it was not like anything to them – they were

        quite unaware of that sentence.

 

* 첫번째 문장은 적어도 두 가지 의식을 가지는 피실험자가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고, 피실험자에게 적어도 두 가지 의식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제안번역 :  또는 그것은 피실험자에게 적어도 두 개의 다른 그리고 단지 부분적으로만 소통하는 의식들이 있다는 증거라고

                    우리가 말해야 할까 ? 만약 피실험자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널을 이해하는 것은 어떤 것과 같으냐고 물으면

                    그들은 그건 어떤 것과도 같지 않다고 정직하게 대답할 것이다. 그들은  그 문장을 전혀 알지 못했다.

 

 

p31  그러나 어쩌면 분할뇌 환자에 대해서 자주 언급되듯이, 실제로 우리의 질문처럼 행동한 또 다른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즉 의식적으로 그 문장을 이해해서, 우리의 의문에 답해 주는 피실험자에게 그 의미의 암시를 전달해 주는 또 한 사람의

        피실험자 말이다.

 

p15   But perhaps, as is often suggested about the split brain patients, there is in effect someone else

        to whom our question ought to be addressed – the subject who consciously comprehended the

        sentence and relayed a hint of its meaning to the subject who answers our questions.

 

* 김동광씨가 이 문장들도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고 완전히 틀리게 번역했다. 여기서 피실험자는 두 사람이 아니고 한 사람이다.

    뇌량 절단 수술을 한 간질 환자가 두 개의 의식을 가지는 것처럼 행동하듯이 동시청취 실험결과  피실험자에게 두 개의

     의식이 있는 것 같으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귀로 뭘 들었는지 묻는 질문을 그걸 의식적으로 들은 의식에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제안번역 :  그러나 분할뇌 환자에 대해 종종 제안되는 바와 같이, 우리의 질문 대상이 되어야 하는 다른 누군가 있다. 즉 문장을

                     의식적으로 이해하고선  그 뜻의 힌트를 우리의 질문에 대답하는 피실험자에게  전달했던 피실험자 말이다.

 

 

 

p31   과연 어느 쪽이 옳은 것일까, 그리고 그 까닭은? 어쩌면 우리는 답을 얻을 수 없는 문제로 되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답할 수 없는 문제는 우리가 이 상황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들을 찾아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그 다양성과

          복잡성을  올바르게 다루는 의식에 대한 관점은, 거의 확실하게 우리의 사고 습관의 혁명을 요구할 것이다. 낡은 관습을

          깨뜨리기란  쉽지 않다. 이 책에 실린 다양한 공상과 사고 실험은 그런 관습깨뜨리기에 도움이 되도록 기획된 일종의

          게임이나  연습과도 같다.

 

 

 p15     Which should we say, and why? We seem to be back to our unanswerable question, which

         suggests we should find different ways of looking at the situation. A view of consciousness

         that does justice to the variety of complications will almost certainly demand a revolution

         in our habits of thought. Breaking bad habits is not that easy. The fantasies and thought

         experiments collected here are games and exercises designed to he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