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의 내란음모죄 혐의 적용은 두가지 측면에서 분석이 가능하겠습니다.


우선, 언론들의 보도에 의하면 이석기의 내란음모죄 적용에 대하여는 법률전문가들의 의견이 '가능하다'와 '적용하기 힘들 것'으로 팽팽히 맞서 있습니다. 

'적용하기 힘들 것'이라는 의견은 두가지의 전제를 들고 있죠.


첫번째는 '내란음모죄'에 대한 법원의 판례가 없다는 것

두번째는 구체적 행동에 대한 것이 없다는 것


이 두가지의 전제로 '적용하기 힘들 것'이라는 의견을 가진 법률전문가들도 '국정원이 추가로 증거를 확보하는 경우'에는 '가능하다'라고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상기 의견이 법률전문가들의 의견이라면 다음의 사항은 저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이석기가 '자신은 평화주의자'라고 하면서 보도연맹 사건을 언급함으로서 이석기의 문제가 되는 발언들은 '긴급재난에서의 정당방위'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려질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물론, 내란음모죄와 같은 위중한 혐의에 '긴급재난에서의 정당방위를 적용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기는 합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내란음모죄에 대한 판결이 한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희귀하여 판례를 참조할 수 없는데다가 더욱 더 내란음모죄에 '긴급재난을 적용하여 쟁점이 되었던 판례'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법의 정서 상, 한국의 현대사를 반추해볼 때 진보진영-NL과 주사파들이 진보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의 학살수준에 가까운 참사들은 충분히 '방어적 심리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는 점에서 '긴급재난에서의 정당방위'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물론 역시 '전쟁 중에 사적 살인 행위'에 대한 법원의 판결의 예를 찾아보기 힘들고-미군의 이라크 전쟁에서 사적 살인이라고 판단되는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검색해 보니 검색이 되지 않네요-특히 한국의 경우 수많은 학살 사건들이 아직도 '논쟁의 도마 위에 올려져 있는 상황이며' '학살을 변호하는 진영의 주장은 '피아의 구분이 힘든 상황에서 적군과 민간인을 구별하기 힘든 현대전의 특성'이라는 것이고 보면 '전쟁에서의 긴급재난 적용'이 법적으로 무시될 수는 없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요즘 법률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이 사건이 법원에서 어떻게 판결을 내릴지 자못 궁금하기도 합니다. ^^)


그럼 우선, 지난 5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의 회동한 녹취록에서 문제가 되는 발언들을 발언한 당사자별로 정리한 것을 인용하겠습니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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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되는 발언을 한 다섯명의 발언은 발언 내용만 보면 '긴급재난에서의 피치 못할 정당방위'보다는 '적극적으로 전쟁에 가담 적군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를 하겠다'로 해석이 됩니다. 개인적인 감정을 표출하자면 보도연맹 사건을 들고 나온 이석기의 후안무치에 대하여 '차라리 떳떳하게 자신의 사상을 견지하면서 법적 처벌을 받는게 두쪽 달린 남자새X가 해야할 일'이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제주 4.3 학살 사건 때 명백한 빨갱이였다가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되었고 그래서 사형을 언도받았으며 탄원서를 내서 '전향서를 쓰면 목숨은 살려주겠다'라고 했지만 끝끝내 자신의 사상을 포기하지 않고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저의 이종사촌(제가 사촌누나라고 부르는 누님의 아버님) 집안의 어른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고,


어쨌든, 이석기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은 차치하고 이석기가 언급한 보도연맹 사건의 개요를 인용하겠습니다.

보도연맹 사건(保導聯盟事件)은,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대한민국 국군·헌병·반공 극우단체 등이 국민보도연맹원이나 양심수를 포함해 최대 20만 명 남짓을 살해했다고 여겨지는 민간인 대학살 사건이다.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이 사건에는 미군도 민간인 집단 학살 현장에 개입했다.[2] 오랜 기간 동안 대한민국 정부가 철저히 은폐했고 금기시해 보도연맹이라는 존재가 잊혀져 왔지만, 1990년대 말에 전국 각지에서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 피해자들의 시체가 발굴되면서 보도연맹 사건이 실제 있었던 사건임이 확인됐다. 현재에도 사건 진상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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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연맹은1945년 6월 5일 결성된 '좌익사상에 물든 이들을 전향시켜 보호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반공 조직으로, 가입자 수는 약 30만 명 정도로 파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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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연맹 학살에서 미군이 개입했다는 것은 이석기의 내란음모 혐의에서 미국 역시 (전쟁 발발 시 자신들의 생명을 워협할) 자구방어책이 필요한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글의 논점과는 조금 어긋날 수도 있지만 역사적 사실 하나를 거론하기 위하여 보도연맹이 언급되니 DJ가 언급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최상위 논점의 두 인물인 박정희와 DJ는 공히 '빨갱이 전력'을 가지고 있는데 DJ의 경우에는 '전향서'를 썼음에도 박정희의 '빨갱이 전력'은 감추어져 있고 DJ의 경우에는 오랜 기간 동안 그리고 사후인 지금까지도 '빨갱이'로 자리매김되는 현실은 굴곡된 한국 현대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들 중 하나이겠지요.


그리고 DJ의 전향서가 '거짓'이라고 주장되는 사건의 단초가 되기도 하는데 '516쿠테타'를 '516혁명'이라고 주장하는 상당히 구리구리한(^^) 블로그의 글인데 보도연맹 사건에서의 DJ의 행적을 아래에 발췌합니다.

보도연맹 설립자인 鮮于 당시 검사는 "공산주의자들을 전향시키는데는 전향한 공산주의자가 강사로 나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鮮于 변호사는 4년 전 기자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서소문의 배재학당이 있던 자리에 큰 느티나무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교육을 하고 있었어요. 1950년 초로 기억됩니다. 전국에서 道별로 두 사람의 보도연맹원을 강사요원으로 추천받게 되었어요. 나는 전남북을 맡았는데 이때 전남에서 올라온 강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가 공산주의 이론을 비판하는 연설을 하는데 어떻게나 청사유수로 잘 하는지 겁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눈이 새까맣고 얼굴은 통통한 사람이 참 똑똑해요. 첫 강의가 끝난 뒤 제가 그를 검사실로 불렀습니다. 그리곤 추궁했습니다. 

'오늘 강의를 들어보니 의심이 간다. 최근까지 공산당 했던 사람이 그렇게 공산주의를 비판할 수 있나? 공산주의의 문제점을 알았다면 일찍 전향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자네는 정말 전향한 것인가?' 


이렇게 물었더니 '진심으로 전향했다'고 맹세를 하더군요. 그 뒤 이 청년을 강사요원으로 썼는데 아마도 6.25 때까지 서울에서 머물면서 보도연맹 교육에 참여했을 겁니다. 이 청년이 김대중씨였습니다" 


김대중씨는 해방 직후 좌익 신민당에 입당하여 목포지구당 조직부장으로 활동했다. 1946년 전국적으로 번진 좌익폭동에 가담한 혐의로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각서를 쓴 뒤 풀려난 적도 있다. 그는 신민당이 다른 좌익 2당과 함께 남로당을 만들 때는 가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왜 좌익전력자 조직인 보도연맹에 가입하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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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언급하면서 이석기는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이 의원은 이날 오후 7시30분쯤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강의를 한 적은 있다"고 밝히면서도 "저는 전쟁에 반대한다. 뼛속까지 평화주의자"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강연에 모인 사람들은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희생될 지 모를 진보당 열성 당원들이었다. 무려 20만명의 무고한 사람들 학살당한 이승만 정권 때 보도연맹 사건과 같은 정도의 경각심 필요하다고 호소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예고돼 있다면 그에 걸맞는 준비 필요성을 강조했다"며 "양측의 군사행동이 본격화되면 앉아서 구경만 할 것인가 물어본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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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석기의 주장은 20만명으로 추산되는 보도연맹 학살에서의 상당수가 '좌익에서 전향한 사람들'인데 '종북세력으로 의심받는 자신들'이 전쟁이 난 경우에 제일 먼저 피해자가 될 가능성에 대하여 '방어차원에서 거론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글쎄요....? 과연 내란음모죄에서 긴급재난의 적용이 가능할지, 그리고 전쟁 상황에서 '이적 행위를 하는 사람은 현장에서 총살이 가능한' 또 다른 긴급재난의 적용이 있는 현실에서 전쟁 상황에서 '국가를 수호해야 하는 기반으로서의 긴급재난'과 '개인의 목숨을 보존해야 하는 긴급재난' 중 어느 것이 먼저일까요?


이석기의 발언의 진심 여부를 떠나 그리고 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날지 알 수 없지만 이석기의 발언은 '비극으로 점철된 한국의 현대사를 다시 한번 목도하는 것' 같아 씁쓸함 마음을 지울 수 없네요.



주) 이석기의 내란음모죄 관련 법률전문가들의 의견들은 다음의 기사들을 참조했습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