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여나 앞에서 가고있는 학생들이 이 '가무(歌舞)의 광경'을 보게 될까봐 조마조마했습니다. 중년 부인들이야

일상에서 흥이 나면 아무 때나 가무를 펼칠 수 있지만 수백명의 학생들은 지금 결코 며칠 여흥을 즐기려고 거기 가

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명색이 지도위원들이 모두 타고 있는 버스에서 이런 장면이 연출된다는 건 나로서

는 상상도 못하던 일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서 만류할 처지도 아닙니다.

 앞쪽 좌석에 전직 의원님과 전직 고위관리님이 여럿 타고 있지만 그들 가운데 누구도 여성들의 가무를 만류하지 않

고 되레 흥미로운 눈길로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나 한사람만 너무 생각이 경직되어 있는가?' 

한국인들은 동구의 헝가리나 폴랜드처럼 평소 춤과 노래를 매우 즐기는 민족이다. 모처럼 금강산 구경 가는 것이

그들에겐 축제일 수 있다. 기쁘고 즐거운 날, 비록 버스 속이라곤 해도 잠시 국민가요가 된 노래를 흥얼거리고 어깨

춤을 춘들 뭐가 이상한가? 한 발 물러 생각해보니 여성들을 무턱대고 비난만 할 수도 없습니다.

'당신 혼자 너무 어두운 생각에 젖어 있는 거야. 어젯밤 그 여인숙 방에서 만났던 젊은이 생각에 아직 젖어있는 모

양이지. 세상사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거 없어.'

내 등 뒤에서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버스 안의 가무는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어요. 가무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버스행렬은 검문을 위

해 멈췄고 가무는 저절로 중단되었습니다.  젊은 군인 한 사람이 버스로 올라와서 내부를 휘이 둘러봅니다. 그는 인

민군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십일세 때 남으로 내려온 인민군을 보고 지금 다시 보는 것이니까 거의 60년 만에

육안으로 직접 북의 군인을 보는 셈입니다. 어릴 때는 굉장히 무서워서 군인이 옆으로 다가올 때 온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지요. 하긴 착검한 총을 들고 있는 군인이 다가오니 무서울 수 밖에요. 그러나 지금 버스에 올라온 군인은

조금도 무섭지 않습니다. 젊은 병사는 버스 안을 한바퀴 둘러본 뒤 말없이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제부터 북의 땅입니다. 그러나 국경을 통과한다는 기분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그동안 막혀있던 이웃집 울타리

가 열리고 이웃 주인의 허락 아래 그 집 마당으로 들어서는 , 그런 기분입니다.

 

 검문을 끝내고 모퉁이를 한바퀴 돌아가자, 바로 그 산의 지극히 작은 한 자락이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주위에 벌

써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감도는 걸 느꼈습니다.

금강산이 이렇게도 가까왔나? 경기와 강원도 경계선을 통과한지 불과 삼십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금

강산이 자태를 드러내다니! 나는 오래동안 속아온 것 같은 허망한 생각에 잠시 젖었습니다. 우리는 물리적인 거

리보다 마음으로 그 산을 너무 멀게만 느껴온 것입니다.

 

 드디어 버스가 온정리의 북측 CIQ(출입국 관리소) 앞에 멎습니다. 대위급 정도로 보이는 인민군 장교가 검색대

에 서서 일행들의 패스포트를 하나하나 검사하는데 학생들은 그저 형식적으로 살피고 쉽게 통과시킵니다. 그 장

교는 내 패스포트를 보자, 뭔가 흥미를 느꼈는지 내게 말을 건넸습니다.

"남측 언론계 종사하셨군요. 북에도 같은 이름이 있습네다."

'알고 있습니다. 저와 동명이인(同名異人)이지요."

카프의 선봉이던 그는 월북해서 활동하다 지금은 열사릉에 묻혀 있습니다. 그의 소식은 최근 남쪽에도 많이 알려

져 있습니다. 장교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고 스스로 밝히고

"즐거운 여행 하시라요." 라는 호의적 인사말까지 해줬습니다.

 

자, 이제부터 금강산 일대를, 아니, 그 일대의 북쪽 땅을 마음 내키는데로 걸어다닐 수가 있습니다. 이박삼일, 일정

이 다소 짦다고 느꼈지만 그 땅을 걷는데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꿈속에서도

그리던 금강산의 절경들을 한 곳도 구경하지 못하고 왔습니다. 사흘동안 나는 학생들의 행사에 밤낮으로 동행하

고 참석하느라고 산에 오를 짬도 없었고 어쩌다 잠시 휴식시간이 주어져도 그 짧은 시간에 산에 오를 엄두를 낼

수도 없었어요. 지도위원들은 친한 사람끼리 짝을 지어 산에 다녀오기도 했으나 나는 늘 혼자, 아니 이십대 젊은

학생들 곁에 머물렀습니다. 그러고보면 나야말로 진짜 지도위원 역할을 충실하게 한 셈입니다. 말로만 듣던 <만

물쌍 코스>, <구룡연>과 <상팔담>과 <옥류담>등 천하절경을 바로 지척에 두고 나는 그곳들에 곁눈질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도착 이튿날 고성의 명파 해수욕장에서 온정각까지 약 10킬로의 행군에 참여했던 일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세째날 온정리 문화회관에서 개최된 남북 합동공연 장면들도 기억에 남습니다. 나는 금강산의 절경들

을 구경하는 대신 온정리 광장에 세워진 금강산 안내도에서 그 절경들의 위치를 잠시 살펴볼 기회가 있었습니

다. 아마 그 안내도는 대형 면세점 앞마당에 세워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안내도를 꽤 열심히 드려다 봤어요.

내가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아내가 대뜸 물었습니다.

"구경 잘 하셨어요?"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 금강산 안내판에 그려진 금강산을 가까이서 아주 자세히 봤지." 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내는 그냥 지나쳤습니

다. 그 말이 설마 금강산의 절경들을 모두 외면했단 말이라곤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나도 금강산

의 풍류와 멋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구는 있었습니다. 아니, 보통 이상으로 이 욕구가 강했을 수도 있습

니다. 그러나 그 산의 절경들을 못 본 것이 그다지 아쉽지는 않습니다. 학생들과 행군할 때 얕은 개울 가를 지

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학생 몇명이 개울가에 주저앉아 물속에서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을 신기한듯 바라

봤습니다. 나도 거기 잠시 주저앉아 작은 물고기들이 민첩하게 헤엄치는 모습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봤어요.

"북의 물고기야. 남쪽하고 똑 같애."

어느 학생이 큰소리로 말했어요. 그러고 보니 남쪽 어느 개울에서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물고기들입니다. 그 학생의 말이 지금도 가끔 떠오릅니다. 개울속 그 작은 물고기들의 모습도 가끔 눈앞

에 어른거립니다. 그 개울속 풍경이 금강산에서 내가 바라본 제일 아름다운 절경이었습니다. 끝)

 

 * 남북교류복원 시점에 맟춘다고 서두르다 보니 많이 미흡한 글이 되었습니다.

그간 인내심을 갖고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