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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rone That Killed My Grandson (By Nasser Al-Awlaki)

내 손자를 살해한 드론 (나세르 알-왈라키)

 

* 출처: <뉴욕 타임즈> 여론란 / 2013717

http://www.nytimes.com/2013/07/18/opinion/the-drone-that-killed-my-grandso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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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A, Yemen I LEARNED that my 16-year-old grandson, Abdulrahman a

United States citizen had been killed by an American drone strike from news reports the morning after he died.

 

사나, 예멘 - 나는 그가 죽은 다음날 아침 뉴스 보도를 통해 내 16세 손자, 압둘라만 - 한 명의 미국 시민 - 이 미국의 드론 공습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The missile killed him, his teenage cousin and at least five other civilians on Oct. 14, 2011, while the boys were eating dinner at an open-air restaurant in southern Yemen.

 

20111014일 미사일이 그, 그의 십대 사촌 그리고 적어도 다섯 명의 다른 시민들을 살해했다. 소년들은 남부 예멘의 한 야외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중이었다.

 

I visited the site later, once I was able to bear the pain of seeing where he sat in his final moments. Local residents told me his body was blown to pieces. They showed me the grave where they buried his remains. I stood over it, asking why my grandchild was dead.

 

나는 최후를 맞이한 순간에 그가 앉아있던 곳을 보는 고통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흐른 뒤 그곳을 방문했다. 지역 주민들은 내게 그의 시체가 산산 조각났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들은 내게 그의 유해를 매장한 무덤을 보여주었다. 나는 내 손자가 왜 죽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무덤가에 서있었다.

 

Nearly two years later, I still have no answers.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has refused to explain why Abdulrahman was killed. It was not until May of this year that the Obama administration, in a supposed effort to be more transparent, publicly acknowledged what the world already knew that it was responsible for his death.

 

거의 이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답을 얻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왜 압둘라만이 살해되었는지 설명하기를 거부했다. 오바마 정부는 올해 오월이 되어서야 더 투명한 정부가 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세계가 이미 알았던 것 - 미국 정부가 그의 죽음에 책임 있다는 것 - 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The attorney general, Eric H. Holder Jr., said only that Abdulrahman was not “specifically targeted,” raising more questions than he answered.

 

법무장관 에릭 H. 홀더 주니어는 딱히 압둘라만이 표적이었던 것은 아니라고만 말하며 의문 풀어주기보다는 의문을 증폭시켰다.

 

My grandson was killed by his own government. The Obama administration must answer for its actions and be held accountable. On Friday, I will petition a federal court in Washington to require the government to do just that.

 

내 손자는 그 자신의 정부에 의해 살해당했다. 오바마 정부는 그것의 행동들을 해명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금요일, 나는 워싱턴 연방법원에 정부가 즉각 그리 할 것을 요구하는 청원을 할 것이다.

 

Abdulrahman was born in Denver. He lived in America until he was 7, then came to live with me in Yemen. He was a typical teenager he watched “The Simpsons,” listened to Snoop Dogg, read “Harry Potter” and had a Facebook page with many friends. He had a mop of curly hair, glasses like me and a wide, goofy smile.

 

압둘라만은 덴버에서 태어났다. 그는 7살까지 미국에서 살았고 그 후에는 나와 함께 예멘에서 살게 되었다. 그는 전형적인 십대였다 - 그는 <심슨 가족>을 시청했고 스눕 독[의 노래들]을 애청했으며 <해리 포터>를 탐독했고 친구들로 가득한 페이스북을 페이지를 갖고 있었다. 그는 곱슬머리였고 나처럼 안경을 썼으며 바보같이 싱글벙글거리곤 했다.

 

In 2010, the Obama administration put Abdulrahman’s father, my son Anwar, on C.I.A. and Pentagon “kill lists” of suspected terrorists targeted for death. A drone took his life on Sept. 30, 2011.

 

2010, 오바마 정부는 압둘라만의 아버지, 즉 나의 아들 안와르를 C.I.A와 펜타곤이 죽여 없애야 할 테러 혐의자들 명단에 올렸다. 2011930일 드론이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The government repeatedly made accusations of terrorism against Anwar who was also an American citizen but never charged him with a crime. No court ever reviewed the government’s claims nor was any evidence of criminal wrongdoing ever presented to a court. He did not deserve to be deprived of his constitutional rights as an American citizen and killed.

 

정부는 역시 미국 시민이었던 안와르를 거듭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했지만 결코 그를 범죄 혐의로 기소하지는 않았다. 지금껏 어떤 법정도 정부의 주장들을 조사하지 않았으며 어떤 범죄 행위 증거도 법정에 제출되지 않았다. 그는 한 명의 미국시민으로서의 그의 헌법상의 권리들을 박탈당한 채 살해당해 마땅하지 않았다.

 

Early one morning in September 2011, Abdulrahman set out from our home in Sana by himself. He went to look for his father, whom he hadn’t seen for years. He left a note for his mother explaining that he missed his father and wanted to find him, and asking her to forgive him for leaving without permission.

 

20119월 어느 날 아침 일찍, 압둘라만은 혼자서 사나에 있는 우리 집을 출발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못 본 아버지를 찾아 가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보고 싶었고 그를 찾고 싶었다는, 그리고 허락 없이 떠나는 것을 용서해 달라는 내용의 짧은 편지를 어머니에게 남겼다.

 

A couple of days after Abdulrahman left, we were relieved to receive word that he was safe and with cousins in southern Yemen, where our family is from. Days later, his father was targeted and killed by American drones in a northern province, hundreds of miles away. After Anwar died, Abdulrahman called us and said he was going to return home.

 

압둘라만이 떠난 지 이틀 후, 우리는 그가 안전하며 사촌들과 함께 우리 가족의 출신지인 남부 예멘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했다. 며칠 후, 그의 아버지는 수백 마일 떨어진 한 북부 지역에서 미국 드론들에 의해 표적 살해되었다. 안와르가 죽은 후, 압둘라만은 우리에게 전화를 해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That was the last time I heard his voice. He was killed just two weeks after his father.

 

그것이 내가 들은 그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살해당한지 이주 후에 살해당했다.

 

A country that believes it does not even need to answer for killing its own is not the America I once knew. From 1966 to 1977, I fulfilled a childhood dream and studied in the United States as a Fulbright scholar, earning my doctorate and then working as a researcher and assistant professor at universities in New Mexico, Nebraska and Minnesota.

 

그 자신의 국민을 살해한 것에 대해 답변할 필요조차 없다고 믿는 나라는 한때 내가 알았던 미국이 아니다. 1966년에서 1977년까지, 나는 유년기의 꿈을 성취해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했으며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는 뉴멕시코, 네브라스카 그리고 미네소타의 대학교들에서 연구원이자 조교수로 일했다.

 

I have fond memories of those years. When I first came to the United States as a student, my host family took me camping by the ocean and on road trips to places like Yosemite, Disneyland and New York and it was wonderful.

 

나는 그 시절을 그리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내가 처음 한 명의 학생으로서 미국에 왔을 때, 내가 방을 얻어 살았던 집의 주인 가족은 나를 바닷가 캠핑과 요세미테, 디즈니랜드 그리고 뉴욕 같은 곳들로의 여행에 데려갔다 - 굉장한 경험들이었다.

 

After returning to Yemen, I used my American education and skills to help my country, serving as Yemen’s minister of agriculture and fisheries and establishing one of the country’s leading institutions of higher learning, Ibb University. Abdulrahman used to tell me he wanted to follow in my footsteps and go back to America to study. I can’t bear to think of those conversations now.

 

예멘으로 돌아온 후, 나는 예멘의 농수산부 장관으로서 봉직하고 그 나라의 선도적인 고등교육 기관들 중 하나인 입 대학교를 설립하면서 내가 미국에서 받고 익힌 교육과 기술을 조국에 보탬이 되도록 이용했다. 압둘라만은 내가 걸은 길을 따라 미국에 돌아가 공부하고 싶다고 내게 얘기하곤 했다. 나는 지금 차마 그 대화를 떠올릴 수 없다.

 

After Anwar was put on the government’s list, but before he was killed, the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nd the Center for Constitutional Rights represented me in a lawsuit challenging the government’s claim that it could kill anyone it deemed an enemy of the state.

 

안와르가 정부의 명단에 올라 살해당하기 전 까지 미국 자유연맹과 입헌 권리 센터는 그것이 국가의 적이라고 판단하는 어는 누구든 살해할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에 맞서는 법률소송에서 나를 대변해 주었다.

 

The court dismissed the case, saying that I did not have standing to sue on my son’s behalf and that the government’s targeted killing program was outside the court’s jurisdiction anyway.

 

법원은 내가 내 아들을 대신해 고소할 자격을 갖고 있지 않으며 어땠든 간에 정부의 표적 살해 프로그램은 법원의 관할권 밖에 있다고 말하며 소송신청을 기각했다.

 

After the deaths of Abdulrahman and Anwar, I filed another lawsuit, seeking answers and accountability. The government has argued once again that its targeted killing program is beyond the reach of the courts. I find it hard to believe that this can be legal in a constitutional democracy based on a system of checks and balances.


압둘라만과 안와르의 죽음 후, 나는 답변과 책임을 추궁하면서 또 한 번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또 다시 그것의 표적 살해 프로그램은 법원의 관할 밖에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견제와 균형의 체제에 토대한 입헌 민주주의에서 이것이 합법적일 수도 있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


The government has killed a 16-year-old American boy. Shouldn’t it at least have to explain why?

 

정부는 한 명의 16세 미국 소년을 살해했다. 적어도 왜 그랬는지 해명은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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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ser al-Awlaki, the founder of Ibb University and former president of Sana University, served as Yemen’s minister of agriculture and fisheries from 1988 to 1990.

 

나세르 알-왈라키는 입 대학교의 창립자이자 사나 대학교의 전 총장이며 1988년에서 1990년까지 예멘의 농수산부 장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