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파의 대부' 라는 강철서신의 김영환씨가 이석기 사건에 대해서 신중론을 주장하고 나왔네요.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08/28/0200000000AKR20130828219600004.HTML?input=1301p

김영환씨가 맹렬한 반북활동과 주사파 해체에 앞장섰던 양반인지라 저도 살짝 솔깃해지기는 합니다. 전문가의 소신발언일 수도 있고, 한 때 자신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이 인생 끝장의 지경이 되니까 인간적인 측은심이 발동한 것일 수도 있겠죠.

정말 김영환씨 추측대로 진지하고 구체적인 모의라기보다는 "선배, 정말로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뭘 어찌해야 할까요?" 하니까 공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어쩌긴 어째. 니는 러시아혁명사도 안 읽어봤나, 그때처럼  총기가 어쩌고 주요시설이 저쩌고 블라 블라" 이랬을 수도 있겠죠. 이런 식의 대화는 80년대 혁명을 꿈꾸던 핏뎅이 운동권들은 한 두번쯤 농담처럼 주고 받은 적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서 설사 그랬을지라도 그들의 신분은 국회의원이고 공당의 당직자들입니다. 내란모의로 엮어도 할 말이 없는거에요. 저같은 장삼이사들이 '박근혜를 찢어죽이고싶다' 고 하는 것과 국회의원이 그러는 것은 차원과 성격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죠.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주사파가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분들과 몇번 사적으로 안면을 익힌 적이 있습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이 두명인데, 한 사람은 그쪽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안다는 굉장한 리더급에 있던 분이고, 한 사람은 듣보잡에 평범한 노동자의 삶을 사는 보통의 서민이었죠.

첫번째 리더급에 있던 양반은 강남의 부잣집아들에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입니다. 이론가라기보다는 몸으로 때우는 활동가 스타일. 불굴의 의지 하나만큼은 저절로 존경심이 들 정도였죠. 청춘의 반 이상을 수배와 투옥으로 보냈으니까요. 얼마전에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다는 뉴스가 뜨던데 이제 반백의 초로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그렇게 사는 모양입니다.

이 양반이 재밌는게, 우익적 감성이 굉장히 충만한 사람이었다는거죠. 현대건설 회장하던 시절의 이명박 팬이었거든요. 오래전 유인촌이 이명박 역할로 나오던 기업드라마가 화제였는데, 존경반 부러움반 섞어서 칭찬에 침이 마르데요. 몇번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거창하게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런 개념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주의니 자유주의니 하는 이념보다 민족이 킹왕짱 우선이고, 하필 민족사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자연스럽게 주사파가 되는거죠. 물론 남한은 미제의 꼭두각시 식민지;; 국가에 대해서는 대략 조선시대 임꺽정의 산채 비슷하게 인식하는거 같았구요.

보통 주사파라고 하면 단어의 뉘앙스 때문에 급진적이고 과격한 이념가들을 떠올리기가 쉬운데, 막상 그런 모습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만약 다른 나라에서 살았다면 대부분 우익 민족주의자가 되기 쉬운 사람들이죠. 그런데 하필 한국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이상하게 풀려서 '좌빨'이 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있는거구요. 그 양반도 아마 운동권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새누리당이나 어디에서 꼴통같은 소리 틱틱 해대는 정치인으로 살고 있었을 거 같습니다. 그런 불굴의 의지로 사업을 했으면 꽤나 성공했을 거 같구요.

어쨌든 그럼에도 그 양반에 대한 제 평가는 차갑습니다. 남들은 평생 한번도 얻기 힘든 수많은 기회들을 모두 차버리고 스스로 선택한 삶이거든요. 게다가 그런 개인적 희생의 결과가 북한이라는 최악의 막장 세습왕조국가라니 동정의 여지도 없습니다. 그나마 한 때 통일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면서 긍정적으로 기여한 바가 조금이라도 있겠지만, 잘못된 노선으로 말미암아 정상적인 통일운동은 물론이고 남한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것이 사실이고요.

반면 두번째 평범한 듣보잡 서민으로 살고 있는 친구는 조금 다릅니다. 중졸 학력에 정말 열심히 사는, 지금껏 일요일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만 하면서 사는 친구였죠. 그럼에도 여전히 대책없이 가난합니다. 나름 그 계통의 최고 기능을 갖추고 술이나 도박 이런거 근처에도 안가고 하는데도 그렇습니다. 죄가 있다면 노력하면 된다는 마인드로 한길만 판게 잘못이겠죠. 물려받은거 없는 중졸 학력에 뒷배봐주는 친척도 없고 재수가 꽃피지 않는 이상 뾰족한 수가 없었을 거 같구요.

그러다가 이상하게 물든 것 같은데, 언젠가 한번 북한에 대해서 약간 이상한 소리를 하길래 인정사정 없이 깐 적이 있었죠. 그랬더니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지는 겁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주사파라는게 그 친구에게는 혹시 심리적인 탈출구가 아니었을까였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아둥바둥하는 친구가 무슨 대단한 이념같은게 있었겠습니까? 그런 탈출구마저 없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고 견디기 어려웠을 거 같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 해소하는 것을 그 친구는 특이하게 그런 걸로 해소하는거죠. 그렇다고 뭐 대단한 걸 하는것도 아니고 꼴랑 민노당 (지금은 통진당) 에 당원 가입해서 당비 뜯기는 게 다였구요. 솔직히 그 친구에게는 체제에 순응하고 맞춰 살라는 말을 양심상 못하겠더라구요. 마지막 위안처인 종교와 같은건데 버리라고 하면 화를 낼 거 같기도 했구요.

휴거 소동이 벌어져도 미친 또라이들이라고 비난만 하는게 아니라 이런 저런 사회적 원인 분석을 하듯이, 저는 주사파라는 사람들도 때려잡아서 박멸하는게 능사라기보다는 치료가 필요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곤 합니다. 우익 민족주의라는 감성을 요상한 왕조국가에 투영하거나, 실제와는 다른 이상향을 고통스런 현실의 종교적 대안처럼 여기는건 확실히 병리적인 현상일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민족적 자긍심을 충족시켜 줄 만큼 더 발전하고, 계층간 격차가 줄어들고 이동성이 커지면 저절로 해소되는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구요. 그 많던 운동권들이 사라진건 정부가 때려잡아서가 아니라 사회가 발전했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