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 안철수가 현재 민주당에 몸을 담고 있었다면, 정국이 어찌되었을까? 지금처럼 민주당이 하는 것도 없고 안하는 것도 없는, 우왕좌왕과 지리멸렬을 반복하는 시국에 안철수가 뭔가 <<내가 총대를 메겠다, 나를 따르라>>  하고 나설 수 있는 포지션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야권을 이렇게나 개무시하지는 못했을 것 같고, 문재인이 유유자적 트윗으로 훈수질을 하지도 못했을 것 역시 당연지사. 제가 보기에 안철수는 리더쉽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한번 놓쳤습니다. 최장집과 밀당이나 할 때가 아니었던 것이죠. 

현재 야권은 특히 호남은 정치적 리더쉽의 공백 상태, 그러니까 무주공산의 상황이죠. 그러나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니고, 호남에서 안철수의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매우 높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데, 저의 해석은 호남이 안철수에게 <밀어줄테니 총대 한 번 매 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죠. 이 신호의 의미를 캐치하지 못하면 안철수의 미래는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검증된,  어떤 정치인이 야권의 리더쉽을 장악하는 방식은 두가지였습니다. 첫째가 김대중식이고 두번째가 노무현식이었죠. 김대중은 독자창당 후 단기간에 자기 세력을 끌어모아 장악하는 방식이었는데, 이거는 수십년간 산전수전 다 겪은 김대중급이 아니면 결코 성공하기 어려운 방식이고 이제 정치입문 2년차인 안철수가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열린우리당이 김대중과 유사한 방식으로 야권을 장악하려는 시도였는데, 그거야 노무현이 이미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이므로 예외적인 상황이고요. 그마저도 탄핵역풍으로 성공한 듯 보였지만 그 끝이야 다들 아시는 바입니다.

두번째가 노무현의 방식이었습니다. 단기필마로 들어가서 은인자중 준비하며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순식간에 치고 올라오는 방식입니다. 저는 노무현이 상당히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돌이켜보면 노무현은 호남의 정치성향이 상당히 역동적이고 다이내믹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라면 그런 전략을 구사하기 어려웠겠죠. 노무현은 2002년 대선후보경선 훨씬 전에 캠프 조직을 꾸렸었고, 지지의원 한명 없는데도 민주당의 대선후보는 자신이 될 것이라 호언장담했던 사람입니다.

(반면 새누리당은 그런게 어렵습니다. 보수적인 성향상 역동적인 변화를 선호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래서 박정희 후광을 가졌다는 박근혜조차 오랬동안 기다려야 했던 것이죠. 김문수가 새누리당판 노무현을 기대하는 것 같은데, 깨몽으로 끝날 겁니다)

어쩌니 저쩌니해도 안철수는 김대중급은 아닙니다. 만약 김대중이 현재의 안철수였다면 휘하 의원이 벌써 수십명은 모였을테고, 민주당은 공포에 떨고 있었을겁니다. 아니 지금쯤이면 벌써 민주당은 공중분해되기가 쉬웠겠죠. 그래서 만약 안철수가 현재 자신을 김대중급으로 과대평가하고 현재와 같은 제3세력화 전략을 상정하고 있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고, 자칫 좋은 기회 다 놓치고 문국현이나 유시민의 전철을 밟을 공산이 아주 높습니다.

반면 현재의 안철수는 단기필마로 민주당에 입당하던 당시의 노무현보다 굉장히 유리한 위치입니다. 노무현이 노풍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증명하는데 입당후 5년이 걸렸지만, 안철수는 입당도 하기전에 이미 존재가치를 증명한 정치인이니까요. 노무현은 청문회스타라는 조그만 정치적자산만으로 호남의 역동성을 믿고 베팅을 했는데, 안철수는 뭐가 두려워서 이리저리 재보고 간을 보고 그러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안철수가 야권의 리더가 되고 싶다면, 호남을 좀 더 믿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제품을 소비자들이 과연 사줄까 믿지 않는 자의 사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안철수는 호남을 믿고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맡겨야 합니다. 모든걸 걸고 모험하지 않는 자에게 결코 기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사업이든 정치든 그것은 철칙이죠. 

어떤 분들은 친노들의 괴롭힘과 방해공작이 대단할 거고 그래서 안철수가 잡혀먹힐 거라고 예측하기도 하시던데, 따로 신당 차린다해서 친노들이 안그럴 것 같지도 않고, 제 풀에 그걸 멈출 것 같지도 않습니다. 친노들이 어느 정도 타격을 입고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야한다는 분들도 마찬가지. 친노들을 잠잠하게 만들어야 할 사람이 바로 안철수인데, 그걸 누가 해준다는건지 알 수가 없죠. 안철수가 강태공도 아닌데 어느 세월에 그렇게 된다는 건지 궁금합니다. 어차피 명운을 걸고 친노들과 전면전을 해야 하는 것은 안철수에게 예정된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 안철수가 <10월 재보선에 연대 없다>를 분명하게 밝혔네요. 일단은 현명한 판단인 것 같습니다. 후보단일화 어쩌고 할 바에는 무소속으로 따로 나와 있을 이유도 없고 지금이라도 민주당에 입당하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이것만으로 안철수가 신당창당후 독자세력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다고 확신할 단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좀 더 몸집을 불린 후에 당대당 통합 같은 것을 염두에 두고 있을 가능성은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딱 부러지게 이야기를 안하니 속내를 알 수가 없습니다. 10월 재보선 끝나고 몇달간이 안철수에게 주어진 유일한 시간일 것 같습니다. 


(뱀발) 이 글은 <<안철수에게 야권을 장악할 리더쉽과 국정을 운영할만한 능력이 있다>> 고 전제하고서 향후 안철수의 전략에 대해 조언하는 글입니다. 만약 그런 능력이 없다면 어차피 뭘 하든 실패할테고 이 글은 뻘글로 남을테니 안철수의 자질이나 능력에 대해 시비를 거는 댓글은 사절. 이 글은 순수하게 안철수에게 가장 유리한 전략은 뭘까에 대해 고민해보자는 취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