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나는 번역가이자, 과학 저술가(대중 과학 작가, 대중에게 과학을 쉽게 풀어 쓰는 사람)이자, 과학자이자, 좌파 사상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이야기를 해 왔다.

 

 

 

과학자들은 과학적 지식이 미신으로 분류되는 지식보다 우월하다고 믿는다. 여기에 과학자의 자부심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과학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만약 과학이 미신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고 믿는다면 과학 또는 과학자라는 단어를 놓고 싸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Paul Feyerabend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들 한다(나는 그의 글이 직접 읽어 보지는 않았으며 그가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른다).

 

Feyerabend's position was originally seen as radical in the philosophy of science, because it implies that philosophy can neither succeed in providing a general description of science, nor in devising a method for differentiating products of science from non-scientific entities like myths.

http://en.wikipedia.org/wiki/Paul_Feyerabend

 

나는 과학이 객관적 지식이며 미신 또는 사이비과학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진리라는 애매한 개념을 쓰자면 과학은 진리에 점점 근접해가고 있으며 이것을 진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본다.

 

 

 

과학자를 아주 폭넓게 정의하자면 “과학의 진보에 어느 정도 이상 기여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과학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을까? 몇 가지를 나열해 보겠다.

 

1. 남들이 떠올리기 힘든 착상으로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는 것.

 

2. 새로운 가설을 실증적으로 검증하는 것.

 

3. 어떤 가설 또는 이론의 내적 일관성을 따져보는 것.

 

4. 어떤 가설 또는 이론의 외적 일관성을 따져보는 것. 만약 어떤 가설 또는 이론이 잘 정립된 기성 이론과 정면 충돌한다면 그 가설 또는 이론을 폐기 또는 수정하거나 잘 정립된 기성 이론을 폐기 또는 수정하는 혁명을 감행해야 한다.

 

5. 애매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내적 일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외적 일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설 또는 이론을 다듬는 것.

 

6. 개념적, 이론적 교통 정리. 즉 거대 이론 또는 패러다임을 애매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내적 일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외적 일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다듬는 것.

 

7. 다른 과학자의 과학 활동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것.

 

8. 어떤 주제에 대한 기존 연구들을 과학자를 위해 잘 정리하는 것.

 

9. 과학 방법론을 다듬는 것.

 

10. 과학에 쓰이는 수학의 진보에 기여하는 것. 또는 가설이나 이론에 쓰일 수학적 모델을 제시하는 것.

 

11. 실증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

 

12. 과학자를 교육하는 것. 즉 교과서를 쓰거나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

 

13. 과학적 성과를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서 대중에게 알리는 것. 과학자가 되는 과정에서 교과서만 보고 과학을 공부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훌륭한 대중서가 교과서만큼이나 도움이 된다. 또한 과학에 대한 대중적 이해가 높아지면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과학의 진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14. 과학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나 제도를 만드는 것.

 

15. 과학계의 비리를 없애는 것.

 

16. 과학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돈을 대는 것.

 

 

 

12~16을 하는 사람을 과학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좀 더 좁혀서 정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과학의 진보에 어느 정도 이상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사람”으로 정의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교육을 하거나, 돈을 대거나, 사회적 제도를 만드는 것이 과학의 진보에 기여하기는 하지만 간접적인 기여다.

 

기술 개발도 간접적 기여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과학자라기보다는 기술자로 부르기도 한다. 물론 그 경계가 애매하긴 하다.

 

9의 경우는 과학보다는 과학 철학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경계가 모호하다. 나는 넓은 의미의 과학에는 과학 방법론도 포함할 수 있다고 본다.

 

10의 경우 과학보다는 수학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응용 수학과 과학의 경계는 애매해 보인다.

 

나는 넓은 의미의 과학 활동에는 1~11이 포함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좁은 의미의 과학 활동에는 1~8이 포함될 수 있다고 본다.

 

6을 과학이라기보다는 철학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자연 선택 개념 또는 자연 선택 이론에 대한 일반적 논의를 진화 생물학으로 분류할 수도 있지만 생물 철학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학위도 없고 돈도 없는 나는 실증적 검증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리고 설사 돈이나 학위가 있다 하더라도 그런 쪽보다는 6, 9를 비롯한 좀 더 “이론적인” 일을 하고 싶다. 예컨대 집단 선택론을 둘러싼 지리한 논쟁을 끝장낼 수 있도록 말끔하게 정리하는 일을 하고 싶다. 또한 진화 심리학의 검증 방법론을 말끔하게 정리해서 “진화 심리학은 사이비과학이다”라는 주장을 박살내고 싶다.

 

만약 내가 그런 일을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었을 때 누군가 “당신의 작업을 높이 평가하지만 과학이라기보다는 과학 철학에 가깝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런 이야기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과학으로 불리든 과학 철학으로 불리는 무슨 상관인가?

 

Williams는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에서 자연 선택에 대해 매우 일반적인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 책의 내용이 과학 활동(진화 생물학)인지 철학 활동(생물 철학)인지 따지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이 책이 진화 생물학의 발전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는 점을 수 많은 저명한 진화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 A Critique of Some Current Evolutionary Thought is a 1966 book by the American evolutionary biologist George C. Williams. Williams, in what is now considered a classic by evolutionary biologists, outlines a gene-centered view of evolution, disputes notions of evolutionary progress, and criticizes contemporary models of group selection, including the theories of Alfred Emerson, A. H. Sturtevant, and to a smaller extent, the work of V. C. Wynne-Edwards.

http://en.wikipedia.org/wiki/Adaptation_and_natural_selection

 

물론 내가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의 100분의 1이라도 되는 책이나 논문을 쓸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그런 것을 쓴다고 과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직접 실증을 해야 과학자다”라는 비판에는 신경을 쓰지 않을 생각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나는 번역가이자, 과학 저술가이자, 과학 철학자이자, 좌파 사상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나는 과학의 진보에 상당히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싶다. 그래서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좁은 의미의 “과학자” 개념 역시 다른 개념과 마찬가지로 정의하기 나름이다. 어떤 정의에 미래의 내가 속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학술지에는 직접적 실증만 실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논문을 비판하거나, 수 많은 논문의 내용을 정리하거나, 수학적 모델을 제시하거나, 개념적, 이론적 교통 정리를 하는 글도 실린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학술지 편집자들의 정의는 나의 정의와 비슷해 보인다.

 

 

 

이덕하

2013-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