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희 경정은 사시 43회(2000년) 합격자로 남편의 고향인 청주 수곡동에서 법률사무소를 운영해왔다.


그러던 그녀가 2005년 경찰청의 국가고시 합격자를 대상으로 한 경정 특채에 응시했는데 전국에서 89명이 응시해 10명을 최종선발했고 여성 응시자 4명 중 권씨가 유일하게 합격했다.


여기서 두가지의 의문이 생긴다.


첫번째는 당시 전국에서 89명이 응시하였는데 이 응시자격은 사시,/행정/외무고시를 합격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왜 고시합격생들이 대거 경찰 경정에 응시했을까?


두번째는 권은희가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발생했던 '잡음'에도 불구하고 경정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과연, 국가공무원이 되는데 변호사 시절의 잡음은 아무런 문제가 안되었을까?


문제는 그 잡음이 두번이나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권씨는 부군의 고향인 청주에서 법률사무소를 열고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으나 최근 수임사건과 관련한 위증교사 논란형사사건 수임실적에 대한 지방변호사회 조사설이 나돌자 심리적 피로감이 누적돼 진로전환을 적극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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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의문은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2000년대 중반에 LG에서 신입사원을 모집하였는데 당시 '사법고시 합격자'가 5명이나 응모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다른 직종과 마찬가지로 법조계 중 변호사 분야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격무에 시달리는 판사, 검사는 물론 당장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사법고시 합격자들'이 좋은 스펙으로 민간기업에 입사를 희망했던 것이다.


당시, 변호사 업계가 얼마나 불황이었는지를 설명한 기사를 아래에 발췌한다.


법조불황, ‘돈도 명예도 다 싫다’
청주변호사회, 한달 5건 이하 수임 1/3 ‘생존비상’ 
‘나홀로 소송’에 ‘부익부 빈익빈’ 겹쳐,


법률시장의 불황은 변호사가 크게 늘어난 반면 사선 변호사 선임없이 스스로 재판에 임하는 ‘나홀로 소송’이 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2004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나홀로 소송’은 132만 4,861건으로 전체소송의 85% 가량을 차지했다. 지난 2000년에는 92만 3,415건이었다. 지난 9월에 도입된 개인회생제도도 80%정도가 변호사에게 의뢰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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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희는 불행하게도(?) 극심한 불경기였던 법조불황 때 변호사가 되었고 그래서 곧바로 생존문제에 직면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을 타파하기 위하여 무리한 사건 수임을 하다가 상기에 발췌한 두가지 잡음에 시달린다.


그런 현실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은 대선공약으로 '경찰 수사권 독립'을 약속하였다. 어쩌면 노무현 정권 시절에 노무현과 검찰의 알력은 '경찰 수사권 독립 여부'를 놓고 암투가 벌어진 것일 수도 있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는 25일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검찰에서 경찰의 수사권을 독립시키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그는 이날 서울경찰청 기동단을 방문, "나는 국가권력에 있어 분권주의자며, 대통령이 되면 큰 선물을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김현미(金賢美)부대변인은 "盧후보에게 확인한 결과 이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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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각한 법조시장에서 생존에 직면하는 것보다는 경찰이 되는 것이 권은희에게는 훨씬 유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수사권 독립을 한 경찰 이력은 대형 로펌에서 스카웃 대상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결국, 권은희가 경찰이 된 이유는 그녀가 변호사 시절 잡음이 발생한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생존에 직면한 현실에서 당장은 연봉도 적고 힘든 직업이지만 미래를 보장받는 진로를 선택한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즉, 권은희가 경찰이 된 이유는 '변호사 시절의 잡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사회상을 간과한 채 그녀의 전력을 문제 삼아 공격하는 것은 '허수아비 공격하기 오류'이다.



문제는 두번째 의문에 있다.


그녀는 변호사 활동 중 두번이나 '잡음의 대상'이 되었다. 그 중 하나는 '형사사건 수임실적에 대한 지방변호사회 조사설'이다. 한 조직이 조사를 할 정도라면 그 것이 설사 소문에 불과하더라도 경찰청 특채에서 문제가 분명히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89명의 응시자들은 전부 고시패스 응시자로 '스펙의 차이'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잡음'을 그 것도 두 번이나 일으킨 응시생이 그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권은희에 대하여 검색을 해보았지만 특별히 걸리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조갑제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다음은 그가 운동권 출신이라는 점이다. 권은희 과장이 사시(司試)출신 첫 여성 수사과장, 최연소 수사과장으로 주목을 받던 2005년 10월31일 나온 <주간조선>을 보면 “대학에선 학생회의 역사연구회원으로 야학에 참여했고 학생운동에도 열심이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권은희 과장의 남편도 운동권 출신이라는 얘기도 있다. 또 9.8대1의 경쟁률 속에 치러진 2005년 경정특채 시험에서 특별히 좋은 스펙이 아니었던 그가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이, 노무현 정권 하의 상황 속에서 ‘운동권 전력’이 작용했을 개연성도 있다.


과연 그렇게 생각되는가?

조갑제가 인용한 <주간조선>의 기사 내용대로라면 그녀는 운동권에서 간부도 아니었다. 그냥 '학생운동에 열심히 한 정도'였다. 노무현 정권의 핵심인사들이 '운동권 출신'이기는 하지만 1990년대 말의 학생운동이 사그러져가는 운동권에서 간부도 아닌, 더우기 경찰 경장 특채에 권력의 손이 닿았을까?


조갑제가 쓴 전문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추측...추측...추측...의 남발이다. 그리고 글 마지막에는 '추론(推論)도 가능하다'라고 맺으면서 센스를 작렬 시켰다. 참, 귀여운 할아버지 조갑제옹. 팩트의 달인이라던 조갑제는 나이를 자실수록  '환타지 써대기에 더 열중이신 것' 같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