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언론인 P씨의 수기

 

 버스가 경기와 강원 경계선을 막 통과한 뒤 몇 분 지나지 않았을 때 민화협 총장 C씨가 갑자기 심각해진 표정으로

버스를 세웠습니다. 정오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시점이란 기억 뿐, 정확한 시간은 떠오르지 않는군요. 학생들이 탄

버스들은 이미 앞서 가고 있고 우리 차가 맨 뒤에서 달렸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 아이구, 난 서울로 다시 돌아가야겠어요. 지금 탄핵 가결이랍니다."

 C 씨는 그동안 계속 라디오 리시버를 귀에 꽂고 여의도 국회 상황을 실황으로 듣고 있었어요. 지금 막 국회에서

는 현직 노대통령 탄핵이 가결되었다는 겁니다. 대부분 승객들이 버스에서 일단 내렸습니다. 모두들 망치로 뒤통

수를 한대 얻어맞은 사람들처럼 한동안 멍청한 표정으로 서로 바라만 봤습니다. C 씨는 이 행사의 실질적 지휘자

이고 북과의 창구역을 맡았기 때문에 그의 거취는 아주 중요했습니다. 그는 당시 신생당인 열우당의 마포 지역 위

원장을 맡고 있어서 당장 당으로 가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휴대전화기로 돌아갈 차편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급하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죽일 놈들 같으니! 하필 오늘 같은 날 기어코 일을 냈구나."

전직 의원 모씨가 중얼거렸고 비슷한 탄식들이 여기저기서 터졌습니다. 전직 학술재단 이사장과 전직 관광공사

사장과 그리고 전직 의원 두어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총장이 떠나는데 이 행사

를 어떻게 끌고가느냐? 그걸 의논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길 가 풀섶 위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잠시 고민에 빠졌

습니다.

'내가 비록 C 씨처럼 정치에 몸 담은 처지는 아니지만 정부가 무너지는데 이 판국에 금강산 구경을 간다는게 우

습지 않은가? 나도 총장 따라 그만 돌아가야 하는 게 도리 아닐까?'

그러나 또 한편 다른 생각이 뒤를 이었습니다. '한국 정치라는 게 이런 파국이 오십년 동안 떡먹듯 일어나는데

정치인도 아닌 내가 거기 지나치게 휘둘리고 동요할 게 뭔가?'

바로 이때 C씨가 다급한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어요.

"차가 와서 난 가봐야겠어요. 이거 모처럼 선생과 재미있게 지낼 기회인데 참 안 되었어요. 계속 가실거죠?"

이미 생각을 정리한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C씨는 택시를 타고 서울로 떠났고 십여분 이상 멈춰

서있던 버스는 다시 북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차창밖 날씨는 여전히 화창했지만 내 마음은 몹시 어두웠어요. 북에서도 남의 정변을 알텐데 과연 그쪽에서 남을

신뢰하고 이 행사에 여전히 적극성을 띠고 나올까? 이게 나의 제일 큰 걱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믿고 의지하려던

C 씨가 가버린 것도 내게 적지 않은 타격이었습니다. 탄핵의 여파가 애꿎게 내게까지 직접적 피해를 준 셈이지요.

 지도위원 가운데는 버스에 오른 뒤 초기부터 나를 흘끔 흘끔 곁눈질로 겨냥하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체격이 우람

하고 성질이 괄괄할 것 같은 인물인데 무슨 이유인지 그는 내게 관심이 많습니다. 그가 프로야구 사무총장이란 걸

뒤에 알았습니다. 설마 그가 나를 프로야구 선수로 스카웃 하고 싶어서 그럴리는 없을텐데, 나는 그의 눈길을 못

본척 했지요. 그런데 내 수호신이던 C 씨가 떠난 뒤 야구협 총장이 한층 적극성을 띠었습니다. 그는 비어있는 내

옆 자리로 양해도 구하지 않고 자릴 옮겨오더니 다짜고짜 말했어요.

"선생을 저는 잘 압니다. 처음 보자말자, 너무 반가왔지요. 왜냐구요? 저희 형님도 언론인이신데 형님한테서 선생

얘길 아주 많이 들었거든요."

"형님이 누구신데요?"

" 아무개라고... 그닥 유명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 그러시군요. 잘 알고 있습니다. 이거 반갑습니다."

나는 그저 인사치레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니  얼론 후배 가운데 그런 이름이 있긴 했지만 한번도 직접

만난 기억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남의 이름을 기억해주니 역시 반가운 건 사실이었죠. 여기까진 괜찮았는데 그 사람

은 갑자기 허리춤에서 소주병을 불쑥 꺼내 마개를 이빨로 거칠게 따고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부어 내게 불쑥 내미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이미 전작이 있는지 입에서 소주 냄새가 확 풍겼습니다.

 

 "아이구머니나...대낮에 술은 무슨 술입니까?  미안하지만 저는 낮에는 전혀 술을 못합니다."

"하하 이렇게 우연찮게 뵙게 된게 얼마나 축복입니까? 이게 인연이란 겁니다. 축하주를 마셔야죠."

내가 몇번이나 손을 흔들고 사양했지만 그는 억센 한쪽 손으로 내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꽉 붙잡고 술잔을 내 입으

로 가져왔습니다. 마치 약 먹지 않을려고 버티는 어린애에게 엄마가 어거지로 약을 먹이는 것과 비슷한 동작이었

습니다. 그 술잔을 뿌리쳤다가는 이 완력이 충만한 사내로부터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순간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결국 나는 아직 정오도 지나지 않은 시간에 소주 한 잔을 들이키고 말았습니다. 술잔을 받았으면

당연히 그 잔을 상대에게 되돌리는 게 남자들의 풍속이고 이른바 주도(酒道) 입니다. 이미 술을 입에 대지 않은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한때는 나도 탑골공원 근처의 대폿집을 이웃집처럼 드나들기도 했던 전력이 있습니다. 특히

6월항쟁의 시기에 그 데모에 적극 가담했던 나는 하루 싸움이 끝나면 동료들과 어울려 탑골 부근의 단골 대폿집

으로 달려가서 밤이 이슥해지도록 소주와 탁주를 번갈아 마시며 시대의 진전을 배반하는 집권자의 행태에 격한

울분을 토로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 추억입니다. 나는 집에서는 평소 소주는 커녕 맥주 한 잔도 자작

으로 마시지 않는 게 습관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이 들수록 자기의 정신을 엄정하게 관리

할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삶의 순간 순간은 짧지만 소중하다. 그 짧은 시간의 어느 한 모퉁이도 취기로 젖게 하고 싶지는 않다. 취기로 시

심(詩心)을 돋운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이 말을 그다지 믿지 않습니다. 아침에 맑은 눈으로 화단의 꽃과 풀잎을

만났을 때 나는 가장 신선한 시심을 느낍니다. 하물며 수십년만에 모처럼 기회를 잡고 북의 땅과 만나는 순간에

술에 젖어 있어야 하다니!

그러나 주도에 따라 나는 술잔을 야구총장에게 건냈고 그는 내가 주는 술잔을 낼름 받아 마셨습니다.

'아, C 씨가 곁에 있었다면 이 술잔을 막아주었을텐데..' 나는 떠나버린 C 씨가 못내 아쉬웠습니다. 일행의 지휘

자이자, 감독관 격이던 C 씨의 부재는 또 다른 후유증을 일으켰습니다.

 

 앞에서 나는 여염집 부인으로 보이는 여나무명의 중장년 여성들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C 씨가 떠난 뒤 그때

까지 쥐죽은듯 침묵하고 있던 이 여성들이 아연 활기를 띠고 버스 안의 분위기를 주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몇 잔 술을 마신 야구총장은 그들과 죽이 아주 잘 맞았지요. 어느 여성이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고 어떤 여

성은 버스 통로로 슬쩍 나와서 몸을 조금씩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꼬옷 피이이는 도옹배엑 서어메에 보옴이이 와았거언마안...혀엉제에 떠어나안 부우사안항에 ...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지요. 그러나 청아한 노래 소리는 점점 커지고 통로에서 춤추는 여인들의 동작도

더 활기를 띠기 시작합니다. 나는 이 중년 여성들이 이른바 <젊어서 노새>파 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이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다는 게 큰 특징입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