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온갖 주제로 글을 써 왔다. 적어도 양적인 면에서 보면 상당히 방대하다.

 

내가 써온 엄청나게 많은 글 중에서 기껏해야 5%도 안 되겠지만, 나는 내가 생각해낸 가설을 제시한 적이 여러 번 있다.

 

대략 이런 식이다:

 

자연 선택의 논리와 인간의 환경을 고려해 볼 때 가설 A가 그럴 듯해 보인다. A는 내가 생각해낸 가설이다. 물론 문헌을 본격적으로 뒤져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과학자가 이미 비슷한 가설을 제시한 적이 있는지 여부는 나도 모른다. A를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얻지는 못했다. 따라서 A가 잘 입증되었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A는 가설일 뿐이다.

 

 

 

이런 나의 글을 보고 인터넷에서 몇 분이 강력하게 공격했다. 데이터도 없이 가설을 제시하는 것은 과학자로서 용납될 수 없는 행태라는 것이다.

 

 

 

1. 과학자가 논문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주장한 것(“어떤 조건에서 ab 사이에 상관 관계가 성립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약간의 데이터가 있긴 하지만 확실한 것을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을 대중서나 언론에서 왜곡하는 경우(ab의 원인임을 과학자가 입증했다”)가 많다.

 

상대성 이론처럼 이론적으로도 실증적으로도 아주 잘 정립된 경우가 있는 반면, 단지 가설에 불과하거나 부실한 데이터로 뒷받침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잘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나 많다. 나도 이런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오래 전에 어설프게 쓴 글을 제외하면 “이것은 가설일 뿐이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이덕하의 감(gut feeling)도 곧 진리다”라고 생각하면서 내 가설을 진리라고 믿을지 모른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렇게 바보 같은 사람은 그냥 무시하면 된다.

 

 

 

2. 데이터와 함께 제시된 가설만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저명한 진화 생물학자나 진화 심리학자가 쓴 책이나 논문을 꽤 많이 읽었다. 가끔 가다 진화학자가 “내가 이런 가설을 생각해냈는데 더 연구해 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는 식의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그러면 그 구절을 보고 실제로 실증적으로 그 가설을 검증해 보는 과학자도 있으며 그것이 논문으로 발표되기도 한다. 그 논문은 대충 이런 식이다:

 

어떤 과학자가 어떤 책에서 이런 가설을 제시했다. 내가 직접 실증적으로 연구해 보니 그 가설을 뒷받침하는 이런 데이터가 나왔다.

 

이 때 처음 가설을 제시한 사람에게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공로가 있으며 그 가설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얻는 사람에게는 가설을 실증한 공로가 있는 것이다.

 

 

 

3. 데이터 없이 제시된 가설에 대해서는 과학 논쟁을 할 수 없나?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데이터가 없다 하더라도 가설을 과학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가설이 너무 애매해서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것 같다고 비판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가설을 제시했던 사람은 좀 더 명료한 개념을 써서 가설을 다듬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가설에 민망할 정도로 심한 내적 모순이 있다고 비판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가설을 제시했던 사람은 내적 모순을 없애는 방향으로 가설을 다듬을 수 있을 것이다. 방법을 못 찾아서 가설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가설이 잘 검증된 기성 이론과 심각하게 충돌한다고 비판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가설을 제시했던 사람은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이 뉴턴의 중력 이론을 폐위시켰듯이 내가 그 잘 검증된 기성 이론을 폐위시키겠다”는 엄청난 포부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기성 이론을 무너뜨리는 것은 너무 무모하다고 보고 가설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넷째, “나도 데이터는 없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그 가설은 가망성이 없어 보인다”라고 이야기해 줄 수 있다. 가설을 제시한 사람은 그 이야기에 설득 당해서 가설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두 사람의 감(educated guess)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하고 “그래 데이터로 승부하자”고 서로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섯째, 이미 비슷한(또는 똑같은) 가설을 제시한 과학자가 있다고 이야기해줄 수 있다. 그러면 가설을 제시한 사람은 민망해질 것이다.

 

만약 데이터 없이도 생산적인 논쟁이 가능하다면 데이터 없이 가설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해 논쟁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4. 과학 철학자 Larry Laudan은 『Progress and its Problems: Towards a Theory of Scientific Growth(1977)』에서 논리 실증주의를 비판한다. 개념적 교통 정리도 매우 중요한데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실증에만 너무 집착한다는 것이다.

 

물론 Laudan이 실증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실증을 매우 중시한다. 하지만 착상, 개념 정리, 이론적 고찰도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상당 부분 “해당 가설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데이터”가 없어도 진행될 수 있다.

 

실증을 하는 사람만 과학자고, 개념적, 이론적 교통 정리를 하는 사람은 과학자가 아닌가? 실증을 제시한 논문만 과학 논문이고, 개념적, 이론적 교통 정리를 하는 논문은 과학 논문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에서는 이 모든 것이 중요하다.

 

 

 

5. 내가 앞으로 주로 하고 싶은 부분은 개념적, 이론적 교통 정리다. 이런 나의 활동을 비판하고 싶다면 내가 교통 정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 만약 내가 그런 교통 정리를 잘 해낸다면 새로운 데이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은 과학자로서 부끄러울 것이 없다.

 

나는 내가 가끔 제시하는 가설에 대해 당장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누군가 그것을 보고 검증해줄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냥 흥미로운 아이디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 가설들은 내가 유명해진 다음에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때가 되어야 내가 제시한 가설에 관심을 기울이고 실제로 돈을 들여서 검증할 사람이 생길 테니까.

 

 

 

6. 내가 진화 심리학계에서 상당히 잘 입증되었다고 통하는 명제를 데이터 없이 제시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것이 자랑할 일이 아니라는 점은 나도 잘 알고 있다. 내가 과학 저술가로서 성공하려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덕하의 진화심리학 강의>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시리즈로 기획되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보류하고 있다.

 

 

 

이덕하

2013-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