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최장집 교수의 결별 사건에 '노동 중심' 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네요. '노동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말도 나오구요. 그런데 '노동' 이라는 단어가 정치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분명치 않아서 많이 헷갈립니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분들은 노동을 '노동조합'과 비슷한 개념으로 쓰시는 분들입니다. 노동조합이 사용자들에 맞서 노동자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노조 조직률이 10%도 채 안되는 한국에서 노동조합에 소속된 노동자들과 전체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는 많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재벌대기업에 소속된 노동자들은 (사무직이든 생산직이든) 일정 부분 재벌들과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질 수 있는 동기가 충분합니다. 회사가 잘 나가야 임금도 더 많이 요구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것은 당연지사인거죠. 그들이 굳이 재벌개혁이나 경제민주화를 지지해야 할 동기가 약한거고 복지 등도 마찬가지. 과연 그들이 점증하는 국민들의 복지 요구를 탐탁하게 생각할까요? 

이렇게 대기업노조원들이 진보적일거라는 기대는 근거없는 망상에 불과합니다. 그 사람들은 그저 '자기 밥그릇 잘 챙기는 사람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거죠. 그 사람들의 밥그릇을 굳이 걷어차야 할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정치의 중심(?)에 놓자는 것도 황당한 주장입니다. 그것은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자발적 조직' 이라는 점에 혹한 좌파들의 먹물스런 환타지일 뿐이고, 진보정당들이 괜히 망한게 아닌거죠. 

또한 설사 노조조직률이 100%라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우리 사회를 진보적으로 변화시키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노조조직률은 한국보다 높고 (미국 12%, 일본 18%), 프랑스는 오히려 한국보다 낮습니다. 싱가포르는 25% 대만은 37% 이구요. 물론 근로조건 등은 많이 개선되겠지만, 그 것들은 진보의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사실 임금은 거의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서 노조가 100%일 때와 0% 일 때의 임금이 큰 차이가 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다만 노조는 임금이 어느 선 이하로 터무니없이 내려가는 것을 막아줄 뿐인거죠. 

어떤 분들은 북유럽의 높은 노조조직률을 들면서 마치 그것이 사민주의의 필수 조건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우연의 일치에 의한 착시인걸로 보입니다. 북유럽의 노동조합들은 '조직된 노동' 이라기보다는 '조직된 시민'의 개념에 더 가까운 거죠. 그들이 만들어낸 복지국가는 단체협상이나 파업 같은 노조 활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민주의정당에 대한 조직적인 지지 덕분인 것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아무래도 노동은 노동자계급의 의미인 것 같고, 최장집 교수는 특히 더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국처럼 발달한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이란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냥 길가다가 수도 없이 마주치는, 평범한 장삼이사 월급쟁이 서민대중들입니다. 학자들이야 이론적 엄밀함을 위해서 그럴 수 있겠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노동 중심' 이나 '서민대중 중심'이나 그 말이 그 말입니다. 대중들이 직관적으로 알아 들을 수 있는 쉬운 말이 엄연히 있는데도 정치인들이 '노동 중심' 어쩌고 하는건 공연히 있어 보이는 척 하고 싶거나, 정치와 학문도 구분을 못하는 덜 떨어진 사람이거나 둘 중의 하나로 보입니다. 

그래서 사실 최장집 교수가 안철수의 지향이 '노동 중심' 이 아니라서 결별했다는 건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헤프닝이 맞습니다. '서민대중 중심' 이 아니라서 결별했다는건데 이해가 되겠습니까? '서민대중 중심' 이라는게 대체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