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언론인 P씨의 수기-

 

          "아주머니. 내일 새벽까지 몇 시간 쉬고 갈텐데 제일 조용한 방을 주세요."

         "흠, 아주 조용하고 혼자 쉬기 딱 좋은 방이 있습죠. 거기 보이는 쪽문 열고 들어가요.

          맘에 꼭 들거라고."

      여인숙 주인이 가리키는 맞은 편 쪽문을 열자, 정말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것 같은

    작은 방이 나타났습니다. 방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고 비좁아 나는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그러

    자, 눈치 빠른 여주인이 재빨리 말했어요.

      "그래뵈도 우리집 특실이라고. 제일 조용하거든. 숙박료도 다른 방 반값만 받아요."

      그 '반값'이란 말에 나는 군말 못하고 그 방으로 들어가서 여장을 풀었습니다.

 

         나는 옷을 벗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천정에서 희미한 형광불빛이 방을 밝히고 있는데 정말

      골목이 지척이건만 주위가 절간처럼 조용했어요. 운 좋게도 값싸고 조용한 방을 기적적으로

     구하게 된 셈입니다.  눈을 감아도 금방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잠시 방 안을 두리번거리는데 그

     때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볼펜으로 끄적인 낙서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보통 낙서에

     비해 분량이 아주 많았고 아무렇게나 휘갈긴 글씨가 아니고 제법 줄까지 가즈런히 맟춰 또박

    또박 써내려간 낙서입니다. 흐린 불빛 아래서 그걸 바라보던 나는 느낌이 심상치가 않아서 갑

    자기 벌떡 일어나 벽 앞으로 다가섰습니다.

 

   -죄송합니다. 세상에 무엇보다 못난 것이 스스로 삶을 놓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그 못난

   놈이 되어버렸네요.

    물론 궁금한 순간이었죠. 내 생애는 어떻게 끝날까? 어떤 모습일까? 누구나가 어쩔 수 없이

   맞이하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제 저는 섰습니다. 하고 많은 날 중에 오늘 이곳에서 조그만

   날붙이를 손에 쥐고서. 이제 이쯤에서 끝내야겠어요. (중략)

 

   -아버지, 부모님 불효자를 용서...

  -민경씨 미안해요. 당신의 마지막 문자, 마지막 통화는 받지 못하겠네요. 하지만 고마워요.

  그 벨소리....당신을 생각하며 연습한 노래인데 이제 마지막으로 울려주네요. 고마워요. 미

  안해요.(중략)     

 

  내 작은 수첩에 기록된 것은 이게 전부입니다. 벽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사연들이 쓰여 있

 었지만 나는 수첩에 옮겨 적다가 그만두었어요. 나는 그걸 보고 절간처럼 고요한 이 방에는

젊은 한 남자의 원혼이 숨쉬고 있는 걸 알았습니다. 그는 공교롭게도 내가 금상산 가는 길에

나를 배웅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은 파랗게 젊은 나이에 왜 스스로 자기 삶을 접었을까? 낙서의 내용만으로는 그것

을 감지할 수가 없습니다. 삶을 스스로 포기하는 이유는 수천가지 수만가지도 더 될 수 있

고 오직 한가지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반수면 상태로 접어들기 무섭게

나는 무엇에 놀란듯 눈을 번쩍 뜨곤 했습니다. 꼭 옆에 누가 앉아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

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당신, 금강산에 간다구? 좋으시겠다. 나도 거긴 가고 싶었는데 이젠 갈 수가 없지.'

반 수면 상태에서 이런 말 소리도 들린 것 같습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지금도 신경이 예민

한 나는 그때마다 눈을 번쩍 뜨고 방 안을 휘이 둘러보곤 했어요. 그러다가 새벽 4시까지 거

의 숙면을 하지 못했습니다. 버스 출발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에 나는 4시에 일어나 세면을

마치고 그 여인숙을 빠져나왔습니다. 물론 그 방을 나서기 전에 하룻밤을 함께 보낸 그 젊은

친구와 간단한 작별의 인사는 나누었지요.

 

 오전 여섯시에 나는 대학의 운동장으로 나가서 지정된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 버스에서 나

는 진짜 지도위원들을 몇 사람 만났는데 전직 의원을 지내고 지난 정부에서 학술재단 이사

장을 지낸 모씨, 역시 의원을 거쳐 관광공사 사장을 지낸 모씨, 그리고 민화협(민족화해협의

회) 사무총장 C 씨, 그리고 어제 방북교육 강사였던 젊은 여성, 그리고 프로야구협회 사무총

장 L씨 등입니다. 그밖에도 우리가 탄 버스에는 신분이 애매한 중년의 여염집 부인들이 여

나무명이나 동승했습니다. 이 부인들이 설마 지도위원 자격으로 참여한 것 같지는 않았고

짐작컨데 연줄연줄로 공짜여행에 끼어든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학술재단 이사장과 민화협 총장은 전부터 안면이 조금 있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민화협 총

장 C 씨는 전에 무슨 사회단체에서 개최한 친선 바둑대회에서 두어차례 마주쳤던 인연으로

가벼운 농담 정도는 건넬만큼 친한 사이였지요. 그를 보는 순간, 나는

'옳지. 이 사람이 북한통이니까 이 사람 곁에 꼭 붙어다녀야겠다.' 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이런데서 자칫 어리버리하게 굴다가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왕따가 되기 십상이거든

요. 왕따가 되는 게 두려운 게 아니고 길을 잃고 헤맬까봐 그게 두려운 것입니다.그는 아마

북쪽을 이미 열 차례도 더 다녀왔을테니까 초행인 나에게는 좋은 안내자가 될 게 분명합니다.

 

 드디어 이십여대의 버스행렬이 군사분계선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지금 금

강산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움직이는 버스에 타고 있는 지금도 여전

히 분단선 저쪽은 내게는 가상의 세계입니다. 그 가상의 세계가 불과 몇십분 뒤에 현실로 나

타난다는 게 꿈 같기만 했습니다. <그리운 금강산>이란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지난 날

얼마나 가슴 아파하고 그 산을 동경하고 그 산이 너무 멀리 있다는 사실을 원망하고 애달파

했습니까? 그 산은 단순히 수많은 절경을 품고있는 산이 아니고 언제나 내겐 잃어버린 반쪽

조국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산을 향해 나는 지금 비록 폐품 처리된 '아식스' 등산화를 신고

있긴 하지만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8월의 날씨는 온화하고 밝아서 하느님도 모처럼 나의 북행에 축복을 내리는듯 했습니다. 버

스는 서울 권역을 금새 벗어나 경기 북부지역을 막힘없이 달리고 있습니다. 나는 민화협 총

장 C 씨와 나란히 앉아 간간히 농담도 주고 받고 언제 바둑의 진검승부를 벌여야 한다는 흰

소리도 주고 받았어요. C 씨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큼 민주화 운동으로 감옥을 처가집

처럼 드나든 인물인데 그럼에도 성격은 쾌활하고 특히 나에겐 바둑의 맞수라고 그러는지

아주 곰살맞게 굴었습니다.

 

 그런데 천지가 화창한 이런 대낮에, 모처럼 축복받은 이 여행길에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