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성향의 진보논객들이나 매체에서 그냥 감정적, 증오적으로 거의 배설수준으로 박근혜를 까기만 했지 제대로 분석다운 분석을 한 경우는 드물었는데 시사인의 천관율 기자는  그동안 볼만한 좋은 분석기사들 많이 써주고 나름 진단도 했었죠.  
 이번에 기사들 모아서 다시한번 복기해보고 회상해보는 글을 썼더군요.



우선, 오늘 온라인에 풀린 지난주 기사.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7408

이 기사의 히스토리를 읊으려면 2010년부터다.

그 해 국회의 한 친박 의원실에서 두툼한 책 두 권을 받았다.

2004년부터 당시까지 박근혜 의원 발언이 전부 정리된 책자. 내부용으로 만든 건데, 기자들 공부시키겠다고 보여주는 거라 했다. 읽어보면 박근혜가 7년 내내 일관성 있고 믿을만한 정치인이라는 걸 알 거라고. 자신있으니까 보여주는 거라고 했다.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일단 너무 많았다. 두 권 합쳐 500쪽인가 그랬다. 스토리도 구성도 없이 발언만 모아둔게 그정도였다. 읽힐 리가 있나.

그 해 가을쯤 이 책을 읽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8165233

네트워크 분석이란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것저것 찾아보니, 정치인의 말을 이 툴로 분석하는 담론네트워크 분석이란 기법도 알게 됐다.

내가 이미 7년치 박근혜 워딩을 다 갖고 있다는게 떠올랐다. 가장 까다롭다는 데이터 확보를 무임승차했다. 무협지에 보면 어이없는 장면에서 뜬금없이 절세비급을 얻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가 그런 기분이었다.

몇번 수소문을 해서 트리움이라는 업체를 만났다. 말도 안되는 땡깡과 읍소를 번갈아 쓴 끝에 대표와 의기투합을 했다. 이양반 사업하면 큰일날 사람이라고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다행히 내가 틀려서 이회사 지금 잘 나간다.

2011년 5월에 이 기사를 썼다. 다 합쳐서 10쪽짜리 덩치였다. 그전에도 이후에도 한 주제로 10쪽을 혼자 쓴적은 없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73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76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77

이걸 쓰면서 500쪽 발언록을 몇번씩 읽었다. 안 보이던게 보였다. 눈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인상적이었던건 메시지의 속도. 빨라서가 아니다. 무지하게 느렸다. 박근혜는 한 얘기를 하고 하고 또 했다. 똑같은 얘기를 리바이벌하는걸 한달에 8번까지 봤다.

다음은 메시지의 양. 엄청나게 짧았다. 어떤 느낌이냐면, 착 - 척 - 탁, 이정도 호흡을 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표현 구려서 죄송하다. 아무튼 지금 야당 정치인들 하는, 착착착착착 - 척척척 - 탁 - 한편 - 또한 - 이외에도 - 다시말해, 요런 느낌하곤 많이 달랐다.

가장 눈에 뛰었던 것은, 메시지의 깔때기 효과. 무슨 얘기를 해도 결론이 같다. 박근혜는 결국 하고싶은 얘기를 먼저 정해두고, 무슨 현안이 등장하든 본인 특유의 결론으로 끌고 들어온다.

만날 여의도만 쳐다보고 있는 나같은 사람은 이게 무지하게 지겹다. 하지만 대선주자가 상대하는건 나같은 사람이 아니라, 한주에 한번이나 정치뉴스를 볼까 하는 저관여층이다. 속도, 양, 깔때기 효과가 모두 이 층을 타깃으로 정교하게 배열되었다는게, 500쪽 발언록을 몇번 읽으니 보이기 시작했다.

박근혜를 무시하면 안된다고 느꼈던게 그때부터다. 저 기사에도 나오지만, 진보의 무시와 보수의 찬양 둘 다 '정치인 박근혜'의 본모습과는 거리가 있다고 느꼈다.

이때부터 이 관점에서 야권의 메시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재앙이었다. 정치인과 고관여층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끝도 없는 에스컬레이션. 어느 순간 메시지는 저 우주로 가 있었고, 보통의 유권자는 저 당은 말이 만날 바뀐다고 느낄 빌미를 주었다.

2012년 총선이 되었다. 다시 트리움과 일을 꾸몄다. 여야 사령탑의 워딩을 전부 긁어모았다. 최고위/선대위 모두발언과 이런저런 토론회 워딩을 다 모으니, 박근혜 워딩이 한명숙 워딩의 2/3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분석 결과를 받아보기 전부터 대충 감이 잡혔다. 야권의 고질병. 또 메시지 인플레 관리 못했구나 싶었다. 돌려보니 예상대로였다. 이 기사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89

이 기사가 전망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아무튼 야권은 총선을 졌다.

대선 국면에 돌입했다. 메시지 전략에 대한 기사는 몇번 썼으니(그리고 아무도 안읽는다는게 확실해 졌으니), 공급자 말고 수용자를 분석해보고 싶었다. 스윙보터 6그룹 총 36명 유권자를 그룹별로 2~3시간씩 포커스그룹인터뷰(FGI) 했다. 정치 소비자가 어떤 수요를 갖고 있는지 분석해서, 어디를 어떤 메시지로 공략해야 하는지를 역으로 짚어보고 싶었다.

보통은 대선 캠프가 몇천씩 들여서 하는 작업이다. 말도 안되는 비용으로 트리움과 진행하면서, 세 캠프에 컨설팅비 받아야 한다고 투덜거렸다. 물론 한푼도 안받았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385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386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387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388

위로부터 읽어야 한다. 지면으로는 한 기사였는데 온라인에는 인트로도 따로 빼고 후보 별로도 쪼개서 4개로 나갔다. 나는 한 기사로 읽는 편이 맞다고 생각한다.

지금 보면 내가 쓰면서도 가치를 몰랐던 대목도 있다. 이를테면 문재인의 돌파구는 안철수와 경쟁하던 20대가 아니라 4050 저소득층이라는 컨설팅 결과는, 이제와 보니 지난 대선을 관통하는 칼같은 컨설팅이었다. 단지 내가 그걸 치고나갈 감이 없었던게 문제였다.

아래는 다시 이번주 기사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7408

여기까지 기사를 다 훑으신 분은 거의 없겠지만, 나는 메시지 전략이라는 주제만 놓고 보면 2년째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의 메시지 분석도 야권의 메시지 난맥상도, 언젠가 어딘가에 썼던 이야기의 재탕이다. 박근혜가 대선을 이겨서 '승자효과'로 평가가 좋아진 것도 아니다. 정치 플레이어들이 같은 전략을 쓰고 같은 실수를 하니, 기사 역시 같은 내용을 변주하게 된다.

지금 심정으로는, 제발 이 주제만은 다시 쓰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