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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Marxist thinker Samir Amin discusses demise of capitalism (By Samir Amin)

인터뷰: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사미르 아민이 자본주의의 현단계를 논한다 (사미르 아민)

 

* 출처: 아흐람 온라인 / 2013811

http://english.ahram.org.eg/News/54564.aspx

 

 

Renowned Marxist thinker and economist Samir Amin, has contributed, through his work and the Third World Forum which he leads, to understanding of the global economy and the analysis of underdevelopment.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사상가이자 경제학자 사미르 아민은 그의 작업과 그가 이끄는 제3세계 포럼을 통해 전지구 경제의 이해와 과소발전에 대한 분석에 기여해 왔다.


Amin spoke to Ahram Online about how capitalism has developed over the years and how today's world, Egypt included, is witnessing the "autumn of capitalism", but is not yet in the spring of a new era of equality.

 

아민은 지난 세월 동안 어떻게 자본주의가 발전해 왔는지와 이집트를 포함해 오늘날의 세계가 어떻게 자본주의의 가을을 목도하고는 있지만 새로운 평등 시대의 봄을 맞이하고 있지 못한 지에 관해 아흐람 온라인에게 얘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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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ram Online: How do you perceive today's global crisis in the light of your refined theory of the centre and the periphery?

 

아흐람 온라인: 당신의 정교한 중심/주변 이론에 비추어 오늘날의 전지구적 위기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Samir Amin: I must start by describing my theory around the development of capitalism, not only as an economic structure of production, but also as a societal order and a set of cultural values that together constitute a phase in the development of human civilization.


사미르 아민: 내 이론이 하나의 경제적 생산구조로서만이 아니라 함께 인류문명의 한 발전 단계를 이루는 하나의 통사회적 질서이자 일단의 문화적 가치들이기도 한 것으로서의 자본주의의 발전을 다룬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에서 시작해야겠네요.

 

Capitalism is centred around polarization between centres and periphery, determined by the law of value; a model that applies to capitalism throughout its historical evolution, and the polarity increases throughout since the logic of capital accumulation doesn't enable the periphery to ever catch up with the centres.


자본주의는 가치법칙에 의해 규정되는, 중심과 주변 사이의 양극화에 의해 포괄됩니다. 이 모델은 전시기에 걸친 자본주의의 역사적 진행을 대상으로 합니다. 양극화는 내내 심화되어 왔는데, 이는 자본축적의 논리가 주변이 중심을 따라 잡을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Capitalism and imperialism, therefore, cannot be considered two separate phenomena, for the first cannot exist without the second, although throughout history the imperialist model changed and thus so did the relation between the centres and periphery. Since the masses at the periphery reject this situation, the capitalist system was never stable and history witnessed this tension on the political level.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는, 그러므로, 전자는 후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에 별개의 두 현상으로 고찰될 수 없습니다. 비록 역사 내내 제국주의 모델이 변화해 왔고 따라서 중심과 주변 사이의 관계도 변화해 왔지만 말입니다. 주변의 대중은 이 상황을 거부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았고 역사는 이 긴장이 정치 수준에까지 도달하는 것을 목도해 왔습니다.


The mutation of capitalism throughout history could be explained through the changes to the law of value, from its simplest form [low cost inputs at the periphery used to produce expensive outputs at the centres] to its most advanced form which I call the law of globalised value.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천은 가장 단순한 형식 [중심에서 고가 산출물들을 생산하기 위해 이용되는 주변에서의 저비용 투입] 에서 제가 전지구화된 가치라고 부르는 가장 진전된 형식으로의 가치법칙의 변화들을 통해 설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Early changes to the capitalist model, from the competitive capitalism soon after the industrial revolution to the monopolistic capital phase starting in the late 1800s until now, were studied by many economists, but now as I study this in greater detail, there seem to be various sub-phases.


산업혁명 직후의 경쟁 자본주의로부터 1800년대 말에 시작해서 현재까지 이르는 독점자본 단계로의 변화는 자본주의 모델에 일어난 초기의 변화로서 많은 경제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었습니다만 제가 더 세부적으로 연구하고 보니 여러 개의 하위 단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What I call the first wave of the South Awakening started early in the 1950s, where the periphery revolted over the dominating capitalism, eventually forcing imperialist capitalism to adapt, to an extent, to the demands of the periphery. In Egypt, it was the Nasserist era, with the attempt to modernise the state and social life, succeeding to an extent, but in the end, failed to bring about a higher level of development, mainly due to lack of democracy. The late journalist Mohamed Sid Ahmed termed it 'nationalising politics'. This allowed for winds from the centres to overthrow the limited success, starting with the defeat of 1967 and the acceptance of the condition of dependency that followed.


제가 남반구의 각성의 제1파라고 부르는 것은 1950년대 초에 시작되었는데, 그 당시 주변은 지배적 자본주의에 저항했으며 그 결과 제국주의적 자본주의는 일정하게 주변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낫세르의 치하에 있었던 이집트에서는 국가와 사회생활을 근대화하려는, 일정하게 성공했지만 주로 민주주의의 결여로 인해 더 높은 수준의 발전을 이루는 데는 실패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저널리스트 모하메드 시드 아메드는 그것을 국유화 정치라고 칭했습니다. 1967년의 패배와 맞물려 이것은 중심에서 불어온 바람이 그 제한된 성공을 전복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했는데, 종속 상태의 승인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I can see there's a fast advancement that started in the mid 1970s, where there's no longer focus on ownership of capital but on greater control over it. I call this phase 'monopolistic globalised generalised capitalism.'


저는 1970년대 중반에 자본 소유권보다는 더 큰 자본 통제권에 더 초점을 맞추는 빠른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저는 이 단계를 독점적인 전지구적으로 일반화된 자본주의라고 부릅니다.


The new term 'generalised capitalism' indicates the extent to which all means of production are integral parts of these monopolistic capitals, acting as sub-contractors to the monopolies, even though they would appear to be independent estates. Any small firm is controlled by inputs it receives from monopolistic technology, funding or asset owners [upstream] and controlled by the monopolistic market is has to sell to [downstream]. Capitalist farmers in Europe and USA are just forms of such case of sub-contractors to generalised capitalism; they survive off state subsidies not from profit, i.e. living off the taxes of simple citizens.


일반화된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명칭은 모든 생산수단들이 이 독점자본들의 통합적 부분들이 된 정도를 가리킵니다. 그것들은 가령 독립적인 토지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독점업체들에게 하도급 되어 있는 것들로서 작용합니다. 어떤 소기업도 그것이 독점 기술, 독점 펀딩이나 독점 자산 소유자들로부터 받는 투입물들에 의해 통제되고 [업스트림] 판매해야 하는 독점시장에 의해 통제됩니다 [다운 스트림]. 유럽과 미국의 자본주의적 농부들은 일반화된 자본주의의 그러한 하도급업자들의 한 형태일 뿐입니다. 그들은 이윤으로가 아니라 국가 보조금으로 생활해 나갑니다. 즉 그들은 일반 시민들의 세금으로 살아갑니다.


The law of value in this case is the law of globalised generalised value, and this is what's described in my latest book translated into Arabic, The Law of World Value.


이 경우 가치법칙은 전지구화된 일반화된 가치법칙인데, 이것이 아랍어로 번역된 저의 최근 저서 <세계가치법칙>에 기술되어 있는 것입니다.


Accompanying this phenomenon, we see a unifying of the centres into one triangle headed by the USA. However, the new rising powers may end up as new centres that force capitalism to make concessions.


우리는 이 현상이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하나의 삼각형으로의 중심의 통일을 수반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렇지만,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강국들이 자본주의에게 양보를 강제하는 새로운 중심들로서 자리 잡게 될지도 모릅니다.


AO: Would you say that this current capitalist system is collapsing?


아흐람 온라인: 당신은 이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있다고 말하고 싶으신가요?


SA: This neo-liberal phase is in state of collapse. It doesn't mean that capitalism is collapsing; but that its current form is collapsing and we're entering a new phase. It has to adapt, and whether the new system will be biased to the ruling class or the masses, is still be revealed.


사미르 아민: 신자유주의 단계는 붕괴 상태에 있습니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현재 형태가 붕괴하고 있고 우리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순응해야만 하며, 새로운 체제가 지배계급 편향일지 대중 편향일지는 두고 보아야 합니다.


The collapse can be seen through a number of phenomenon: the Euro zone challenges and its eminent collapse, which is also likely to overthrow the entire European Union; the crisis of the banking and global financial markets; the 'rising countries', or rather the 'rising societies' such as China, India, Brazil and others, are starting to force new rules to the global imperialist model developing new technologies both military and civil thus breaking the monopolization of technology and control over natural resources on the planet; the spread of the nuclear technology and weapons, although I'm against these weapons for sure, but there's no sense that it should be monopolised at the centres only!


그 붕괴는 많은 현상들을 통해 투시될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 전체의 전복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도전받는 유로존과 그것의 임박한 붕괴; 은행업과 전지구적 금융시장들의 위기; 군사용과 민간용 양면에서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기술과 지구의 자연자원에 대한 통제의 독점을 깨 전지구적 제국주의 모델에 새로운 규칙들을 강제하기 시작하고 있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등의 부상하는 나라들’, 또는 차라리 부상하는 사회들’; 핵기술과 핵무기들의 보급 - 저는 절대적으로 이 무기에 반대하지만 그것을 중심이 독점해야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We're witnessing the autumn of the current capitalist model, but it's not yet the spring of the people, since the alternative isn't developed yet. The global movements and protests are at a stage of chaos, and it could lead to extremist movements, to fascist systems, to collapsed state or to something totally new.


우리는 현 자본주의 모델의 가을을 목도하고 있지만 민중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대안이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지구적 운동들과 시위들은 혼돈 상태에 있는데, 그것은 극단적 운동들에도, 파시스트 체제들로도, 붕괴된 국가나 전적으로 새로운 어떤 것에도 이를 수 있습니다.


AO: How do you see the rise of Islamists to power and the withdrawal of the military?


아흐람 온라인: 이슬람주의자들의 권력 장악과 군부의 위축을 어떻게 보십니까?


SA: If we look at the policies of Nasser, there was a large gap in politics created by lack of democracy, and this vacuum was filled by the Islamists. In addition, the start of the 'liberalisation', the collapse of the state infrastructure and the deepening and widening of poverty, left Egypt in dire need and opened the wide doors to the control by the west, thus leading to our trap in the triangle held at the top by the west and in the base by the military leadership together with the backward Islamist power that worked hand in hand throughout the past decades. What we're seeing now is a simple switch of roles from one to the other: instead of a soft Islamist discourse, which by the way was the only opposition allowed the entire time, there's now a stronger voice versus a lower military one. The military officers and generals benefits are undoubtedly kept safe.


사미르 아민: 나세르의 정책에는 민주주의의의 결여에 의해 발생된 정치상의 커다란 간극이 있었고 이슬람주의자들이 이 공백을 채웠습니다. 게다가, ‘자유화의 시작, 국가 하부구조의 붕괴 그리고 빈곤의 심화 및 확대는 이집트를 절박한 결핍 상태에 이르게 했고 서구에 의한 통제를 용이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꼭지 점에는 서구, 양 밑점에는 지난 10여년 내내 협력했던 군사 지도부와 반동적인 이슬람주의 권력이 자리 잡은 삼각형으로 된 함정에 빠졌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의 단순한 역할 교체입니다: 전 시기에 걸쳐 허락된 유일한 반대 목소리였던 온건한 이슬람 담론 대신 이제 더 강해진 이슬람주의 목소리와 더 낮아진 군부의 목소리가 마주하고 있습니다. 장교들과 장군들이 얻은 이익은 확실하게 유지되는 안전입니다.


We should not just look at the Muslim Brotherhood as a political Islamist power but as a backward movement that rejects workers movements and social justice, preferring to talk about charity as a form to ensure their control over the people.


우리는 무슬림 형제단을 하나의 정치적 이슬람주의 권력체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노동자 운동과 사회정의를 거부하고 민중에 대한 통제를 확고히 하기 위한 한 형식으로서 자애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선호하는 하나의 반동적인 운동체로도 보아야 합니다.


The Islamists accept the policies of dependency under the guise of open market and private ownership rights; they openly accepted the American role in the region and the USA support for Israel, including the Camp David agreements.


이슬람주의자들은 개방되어 있는 시장과 사적 소유권이라는 미명 아래 종속 정책을 승인합니다; 그들은 중동에서의 미국의 역할, 그리고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포함해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을 공개적으로 승인했습니다.


The electoral success was expected but so is their eminent fall. The minority (even if those were a few million) sometimes pulls the majority behind it, and this was the case of the Egyptian revolution minority that pulled the masses against the regime. The strategy of the speedy elections, however, offers better chances for the more organised and well-funded power, which is the Brotherhood, versus the scattered forces of unions, coalitions, movements etc. Legitimacy was transferred from the street to the ballot. Had the revolutionary movement united, we would have seen a different map today, for example if Hamdeen Sabbahi and Abdel-Moniem Abul-Fotouh had united. It's a condition for Egypt to have a political alternative to become a 'rising state'.


선거 승리는 예상되었지만 그들의 임박한 몰락 또한 예상됩니다. (몇 백만에 불과하더라도) 소수가 때로 자신 뒤의 다수를 견인하는데, 대중을 체제의 반대편으로 견인했던 이집트의 혁명적 소수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신속한 선거들이라는 전략은 노조들, 연맹들, 운동들 등등 흩어져 있는 세력에 대비해 더 잘 조직되어 있고 자금지원도 잘 받는 권력체, 즉 형제단에게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정당성은 거리에서 투표로 이전되었습니다. 혁명 운동이 단일화 되었었다면, 예를 들어 함딘 사바히와 압델-모니엠 아불-포터프가 단일화 되었었다면, 우리는 오늘 다른 판세를 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집트가 부상하는 나라가 되는 정치적 대안을 갖기 위한 조건입니다.


The Gulf plays a role against the 'rising Egypt', for it isn't working directly for its own benefit but rather supporting the US role in the region, helping keep Egypt just above total failure, but never up to success. The IMF loan and other Gulf money can only add to this condition.


걸프 지역은 부상하는 이집트에 맞서는 역할을 하는데, 직접적으로 그것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지 않고 오히려 중동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집트가 총체적 실패는 간신히 면해도 결코 성공은 하지 못하게 합니다. IMF 차관과 다른 걸프국 대부금은 이 처지를 연장시킬 수만 있을 따름입니다.


The current non-Islamist powers aren't offering a proper economic agenda, partly because their knowledge is limited about the challenges of the Egyptian state, but they really have to formulate a real roadmap in case there's a 'slightly better' government someday.


현재 이슬람주의적이지 않은 정치세력들은, 부분적으로는 이집트가 맞서야 하는 도전들에 관한 그것들의 지식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적절한 경제 정책안을 제시하고 있지 않은데, 정말이지 그것들은 언젠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정부가 들어설 경우를 대비해 제대로 된 로드맵을 작성해 두어야 합니다.


AO: Is there a chance for leftwing Islamism?


아흐람 온라인: 좌익 이슬람주의에게 기회가 있을까요?


SA: The extreme-right backward Islamists currently in power will not allow any alternative interpretation of Islam that risks standing against its interests. We must also note that nobody today claims to stand against social justice or against democracy, but we can no longer count on slogans but on actual behaviours.


사미르 아민: 현재 권력을 잡고 있는 극우 반동 이슬람주의자들은 어떤 대안적 이슬람 해석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의 이해관심들이 위태롭게 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또한 오늘날 누구도 사회정의나 민주주의의 반대편에 있다고 자처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구호들이 아니라 실제 행동들만을 믿어야 합니다.


Look at the condition of Islamist leftist thinker in Sudan, Mohamed Mahmoud Taha, who attempted a new interpretation of Islam, and nobody defended him but seculars. Meanwhile other Islamists stand fiercely against him, although the social conditions would easily lend themselves to it [his ideas].


새로운 이슬람 해석을 시도했던 수단의 이슬람 좌익 사상가 모하메드 마모우드 타하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보십시오. 종교인이 아닌 이들 말고는 아무도 그를 옹호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다른 이슬람주의자들은 격렬하게 그에게 반대했습니다. 비록 그의 생각들이 사회적 조건에 더 부합하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