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초중고교 미술 시간에 '피카소'를 얼마나 배우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을 극우의 천국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하는 진영의 언행을 기준으로 한다면, 피카소의 일생과 그 그림들은 미술 교과서들에서 삭제되어야 마땅하다. 왜? 피카소는 빨갱이니까.....


아니, 이미 피카소는 초중고교 미술 교과서에서 삭제되어 잊혀진 인물 또는 알아서는 안되는 인물로 자리매김되었는지도 모르지. 왜냐하면 친애하는 조갑제옹이 이명박 정권 때 신천군 학살을 그린 피카소의 그림이 교과서에 실리자 격정을 토로한지도 2년이 지났으니 말이다.



프랑스 공산당원의 열성당원이던 피카소가 미군의 한국전 개입을 반대하던 프랑스 공산당의 주문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는 게 서양에선 定說(정설)이다. 세계의 좌익들이 反美 선동에 이 그림을 악용하였다.  이런 연유로 국내전시조차 하지 못하였던 그림을 교과서에 넣고 학생들을 가르치려는 李明博 정부의 의도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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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몰랐다. 이명박이 좌파였구나. 그런데 이명박은 좌파라고 이야기한 적 없으니 '간첩임이 확실한데' 조갑제 옹은 격정을 토로했을 뿐 왜 '이명박을 간첩으로 고발하지 않았을까?' 조갑제 옹도 한국의 작금에 가장 유행하는 버젼인 '착나 시리즈'에 오염된 탓일까? 



'김대중/노무현은 나쁜 빨갱이, 이명박은 착한 빨갱이?'




6.25 동란 중 가장 참혹한 학살극은 남한에서는 노근리 사건, 그리고 북한에서는 신천군 학살이었을 것이다. '이었을 것이다'...라고 추정으로 쓴 이유는 아직도 6.25 동란 중 발생한 학살극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3만 5천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신천군 학살을 반추하면 전쟁에서 '정의의 편이 누구냐?'라는 것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전쟁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지 않게 만드는, 아니 인간 감정의 가장 밑바닥에 있다는, 그래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들 중에서 유전자로 전해진다는 '공포'... 죽음에의 공포에 몸부림치는 인간의 나약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면 너무 시적인 표현일까?



신천리 학살에 대하여는 남한과 북한의 주장이 엇갈린다. 우선, 지금은 사이트가 없어졌지만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사이트에 올라왔던 기록을 아래에 적는다.


미군점령 45일 동안 북한의 황해도 신천군에서는 전체 인구 14만 2,786명의 약 25%에 달하는 3만 5,383명이 학살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신천군 양장리에서는 모든 남자들이 학살되는 참극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신천군 사건은 한국 전쟁중 일어난 사건으로 1950년 10월, 황해도 신천군에서 신천군 주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만5천여명의 민간인들이 학살되었던 사건을 말한다. 신천 학살 혹은 신천 학살 사건이라고도 불리며, 북한에서는 신천대학살이라고 부른다.


이 사건은 북한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남한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극명하게 상반되어 있어서 민감한 부분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아직 정확한 사실 관계조차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일설에는 미군의 학살개입과는 상관없고, 신천군내의 기독교세력과 북한 정부지지세력간의 싸움이 토지개혁을 매개로 파멸적으로 일어난 좌-우 대립 격화속에 일어난 비극으로 일어난 일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측에서는 미군이 좌파 성향의 민간인 3만여명을 학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남한에서는 1950년 10월,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이 되었을때, 패퇴하는 인민군이 황해도 신천군에 있는 지주,자본가 세력등 우파 성향의 민간인들을 대량학살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우파 민간인들이 인민군에 대항하여 봉기를 일으켰다는것이 주장이다.

   (출처는 여기를 클릭. 파란색 마킹을 한 부분은 동일 출처에서 문단을 수정한 것임)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년 10월 25일 ~ 1973년 4월 8일)


피카소를 빼고 현대미술사를 논할 수 있을까? 스페인에서 출생하였고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피카소는 1만 3500여점의 그림과 700여점의 조각품을 만들었고 작품수가 3만여점이 된다고 한다.



3만여점....


3만여점..... 100년 동안 하루도 쉬지않고 하루에 하나씩 '작품을 만들어 내야지만 가능한 수치'이다. 그가 90세 넘게 살았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태어난 날부터 죽는 그 날까지 하루에 한번 작품을 만들었어야 가능한 숫치이다.



그러나 피카소의 작품이 3만여점이라는 주장은 그나마 '그림과 조각'에 한해서이다. 판화, 데생, 콜라주 그리고 도자기까지 포함시킨다면 4만 4천여점. 이 정도면 작품들의 '수준'을 떠나 천재 이전에 광인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니, 천재의 다른 표현이 광인이기도 하니까 그는 천재임이 확실하긴 하다.



"피카소는 천재다, 그는 미치광이다. 피카소의 그림은 난센스다, 어린애도 그보다 잘 그릴 수 있다. 피카소는 공산주의자다."


여기에 몇 가지 말들을 덧붙이자면 그는 호색한이기도 했고, 동시에 휴머니스트, 무정부주의자였다. 오죽했으면 그의 그런 편력에 기댄 SF소설까지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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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는 이렇게 말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예술가는 당대 시대정신을 선구적으로 보여준다. 파시즘에 항거했던 스페인시민전쟁은 피카소의 생애에서 ‘위대한 예외’였다. 하지만 부르주아 세계에 투항했을 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빵이 아니라 돌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영혼을 의탁할 민중이었으나 정작 그를 둘러싼 것은 아첨꾼들 뿐이었다. 예술가가 자신의 개인적인 천재성 안으로 도피했을 때 그는 무기력과 정체에 직면한다.” 비판의 주안점이 피카소의 반 사회성에 있었던 것이다. 


버거가 피카소를 마냥 깎아내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입체주의의 선구자였고,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냉소적이지도 않았고, 우리 시대의 중요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기여한 휴머니스트였다는 게 버거의 평가다. 


그렇다면 무엇이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인가. “그는 혁명가일 때 성공했으나 천재로 남았을 때는 실패했다.” 이것이 버거가 바라보는 피카소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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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으로서 피카소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도 버겁지만 피카소의 일생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천재였지만 일상의 에피소드에서는 '독특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되는' 에디슨이나 아이쉬타인에 비하여 피카소의 일상은 그의 그림만큼이나 내 두뇌를 인상쓰게 만든다. 그래서 피카소를 인상파 화가로 분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피카소가 학살을 주제로 그린 그림은 신천군 학살이 처음은 아니다. 피카소의 명작 중 대표적인 것으로 꼽히는 게로니카는 스페인 내전 시에 일어났던 학살극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게로니카.gif

In 1937 the Spain was at war; a civil war between the Republic Government and Francisco Franco’s Francoist army. Franco led a rebellion army to overturn the government and bring communism to the Spanish people. The Francoist army had the support of Nazi Germany and Fascist Italy. On April 26, 1937, 24 planes bombed the Basque town of Guernica. The town held no military significants, the objective; to send a mes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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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로니카의 학살은 설명처럼 '어떤 군사적인 상징성'도 있지 않았다. 아니, 인류가 점철시킨 모든 학살극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것이 아닐까?



역사에 나타난 학살의 장면은 아주 단순하다.


"학살을 하는 자, 그리고 학살 당하는자.......... 왜 죽여야 하는지 모르는 채 죽이는 자와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는 채 죽임을 당하는 자"의 어처구니 없음만이 학살의 기록에 나타날 뿐이다. 단지, 6.25 동란 당시 한 미군 병사가 자기 고향의 신문에 보낸 편지만이 '왜 학살을 하는지'에 대한 심리적 배경을 희미하게나마 이해시킬 뿐이다.



'나를 쳐다보는 부상자를 목표로 겨냥해서 방아쇠를 당기면 두개골이 날아가고 눈에서는 눈동자가 뽀르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나야말로 명사수가 아닌가?' 

    (출처는 없습니다. 예전에 맥아더 관련 기록들을 모을 때 한 사이트에서 발췌한 것인데 출처 링크는 사라져 없어져 버렸네요...)



그 부상자가 '적군'이었다면 전쟁의 참혹함.... 그리고 그 부상자가 민간인이었다면 전쟁의 잔인함을 너머... 어처구니 없음....이라는 건조한 감정만을 느끼는 것은 인류 역사에 학살극이라는 것이 너무도 자주, 그리고 당연하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명작 중 명작으로 손꼽히는 게로니카는 그 학살극의 어처구니 없음 만큼이나 이 작품의 탄생 배경 역시 어처구니 없다


거대한 벽화의 형상을 띤 이 그림은 사실 1937년 파리 세계 박람회의 스페인 전용관에 설치되도록 스페인 정부가 피카소에게 의뢰한 작품이었다. 그림은 사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수년 전에 의뢰된 것이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게르니카의 참상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폭격의 공포와 피카소가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이 근본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프랑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의 독재 체제에 대해 엘리트로서 느꼈던 비애도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크기는 349.3 X 776.6 c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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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시대적 배경을 한 작품인 피카소의 게로니카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비교하면서 느끼는 이질감은 단지 '그림'과 '소설'이라는 예술의 쟝르의 차이로 이해하면 될까?




게로니카의 학살극에서 죽은 민간인은 1600명(추정, 최대)라고 한다. 그리고 20배가 넘는 3만5천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신천군 학살은 단지 숫자의 엄청남을 넘어 아직도 그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에 학살의 참혹함을 더해준다. 단지, 정치적 프로파겐다만 무성할 뿐, 학살 당한 영혼은 그 누구도 위로하지 않는다.



신천군 학살....... 피카소의 작품 명은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


300px-Picasso_Massacre_in_Korea.jpg

(출처는 여기를 클릭)



빨갱이였던 피카소와 북한은 신천군 학살을 '미군의 소행'이라고 단정을 짓고 있지만 신천군 학살 발생 배경은 의외로 복잡해 보인다. 아무리 군대가 '학살에 미쳤다'고 하더라도 단기간 내에 넓은 지역에서 3만 5천명을 학살하기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학살극의 배경이 황석영의 <손님>이라는 소설에서 기술한 내용이 더 '사실'에 가깝다라고 생각한다.



소설 <손님>의 증언자인 유영태 목사의 증언 내용이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경축 국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9월 서울을 방문한 유영태 목사는 어느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신천대학살과 관련해 "친형을 비롯해 황해도 신천에 살던 교회 청년지도자들이 청년치안대를 조직해 일시적으로 후퇴하던 인민군들을 잡아죽이고 가족들을 모두 잔인하게 학살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들 대부분이 지금 한국에서 목사가 되어 있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다"

    (출처는 여기를 클릭 - 아래에 기술한 한국감리교회 사이트의 신천리 학살에 대한 기록임)


유영태 목사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한국 개신교의 '권력에의 탐닉'이 이해가 된다.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고 아직도 우리 사회의 메인스트림을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목사들이 한국 메가처치의 근본이라면 말이다.(파란색 마킹 부분은 한국 메가처치의 인맥을 살펴가면서 그 목사들 중 북한에서 월남한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의 과거 행적을 추적하여 틈틈히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중이니.... 아직은 추정일 뿐이다. 당연히, 한국 개신교를 의도적으로 폄훼할 목적은 전혀 없다.)



자기 반성일까....................? 아니면 발뺌일까?



한국 감리교회 사이트의 신천리 학살에 대한 기록들은 아무리 읽어도 그 주장하는 목적을 이해 못하겠는 포스팅이...... 자기 반성이기를 빌며 이 글을 마친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