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과학 게시판
출발날자가 임박했기 때문에 나는 곧 여행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등산 및 장거리 보행용 스포츠화 한 켤레,
방풍이 되는 점퍼 한벌, 그리고 아무리 공짜라지만 개인용 달러 약간 등을 준비했지요. 내게 여행을 주선한 사무
총장에게서 들은 얘긴데 이 행사에는 북의 금강산 온정각과 고성군 명파 해수욕장 일대에서 약 10킬로의 도보행군
프로그램이 잡혀있다는 것입니다. 나에겐 이 도보행군 프로그램이 무엇보다 매력점이었습니다. 가상의 세계에
서만 아물거리던 북의 땅을 내 발로 마음껏 밟아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갑자기 여행 떠난다고 들떠서 이것저것 준비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의 표정이 몹시 굳어 있습니
다. 한참 말 없이 지켜보던 아내가 드디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한 마디 했습니다.
" 흥, 당신은 좋은 데 갈 때는 꼭 혼자 말도 없이 가드구만. 나도 금강산 좋다는 건 알거든요. 그런 데를 꼭 당신 혼
자 가야지만 당신 인품이 서는 거요?"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 사실 대꾸할 면목도 없구요. 이웃집 이서방도 옆 집 김서방도 부인 동반 금강산 관광을
모두 다녀왔고 강남 사는 아내 친구들은 금강산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유럽으로 동남아로 가족여행을 뻔질
나게 다닌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그간 아내와 외국 나들이는 그만두고라도 국내 피서지 한번 동행한 기억이
없는 '죄 많은 인생'이니까요.
그렇다고 아내도 대학생 800명의 지도위원으로 함께 가게 해달라고-내가 무슨 서울시 의회 의원이라고- 요구
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그 무렵에 서울시 의회 의원 나리 어떤 분이 남아메리카 시찰여행을 가면서 자기
부인을 보좌관으로 임시 직함을 만들어 여행에 동반해서 애처가의 전범을 보여준 게 잠시 화제가 된 일이 있
습니다. 나는 화가 잔뜩 난 아내에게 이런 사정 저런 사정 구차하게 설명하고 해명한 끝에 겨우 아내의 양해
와 이해를 얻어냈습니다.
" 기왕 가는 거니까 구경이나 잘 하고 오세요. 내 몫까지요. 또 게으름 피우다 정작 봐야 할 곳 빠뜨리지 말고
요."
아내가 시원시원하게 격려의 말까지 해주었습니다. 아내가 말하는 '정작 봐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여행이
끝났을 때 나는 아내의 이 한마디가 이 여행의 맹점을 꼭 찍어낸 거란 걸 늦게 깨달았습니다. 사실 내 머리 속
에 금강산의 천하절경은 그다지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북으로 출발하기 전 날 나는 방북교육을 받기 위해 길가 좌판에서 염가로 구입한 '아식스' 등산화를 신고 휘
경동 경희대학으로 갔습니다. 다음날 새벽 버스가 그 대학에서 출발하는데 집에서 그곳까지 거리가 멀어서
나는 방북교육을 받고 그 대학 부근에서 일박 할 예정이었습니다.
대학의 큰 강당에서 출발 전날 오후 몇시간의 교육이 있었습니다. 남성과 여성, 두 사람의 강사가 그간 남북
교류 내역과 복쪽에 가서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요지의 강의를 했는데 성격이 활달한 젊은 여성 강
사는 성공회 대학 강사로 자신을 소개하더군요. 서른 안팎으로 보이는 여성 강사의 북에 대한 시각이 매우
관대하고 호의적인 점이 흥미로왔습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진보적 좌파라고나 할까요.
수강자는 대부분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대학생들입니다.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는 이십대 젊은이들 가운
데 장년기를 이미 훌쩍 넘긴 나이 많은 남자가 한사람 끼어앉아 강의를 듣고 있는 모습이 그 젊은이들 눈
에는 어떻게 보였을까요? 그러나 구김살 없고 활달한 젊은이들 가운데 내게 의심 가는 눈길을 보내는
친구는 한사람도 없습니다. 나는 그들 속에 끼어있는 게 아주 맘이 편했어요. 나는 방북교육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미 주위가 어두워졌습니다. 나는 휘경동 거리를 지나 이웃에 있는 이문동 쪽으로 갔습니다. 그곳은
아주 오래 전 내가 다니던 대학이 있는 거리입니다. 기왕이면 기억이 서린 곳에서 밤을 보내고 싶은 것
입니다. 나는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가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그리고 하룻밤 묵을 숙소를 찾아 나섰
습니다. 여관과 여인숙 간판을 내건 곳은 골목마다 셀 수 없을만큼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시끌벅
적한 골목을 끼고 있어 조용히 쉴 수 있을 것 같은 곳이 좀처럼 눈에 띠지 않았어요. 대학가 주변에는
늦은 밤에 웬 술꾼들과 주정꾼들이 그렇게 많은지!
눈 앞에 있는 여인숙 간판을 바라보면서 곰곰 따져보니 젊은 날 이래 여인숙을 다시 찾게 된 게 얼마
만인가? 감회가 깊었습니다. 나는 여인숙과는 조금 깊은 인연을 갖고 있습니다. 한때는 여인숙을
잠시잠시 빌려 그곳에서 글을 쓰곤 했으니까요. 마레크 후라스코의 <제8요일>을 보면 연인들이 하
룻밤 묵을 장소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나는 한시절 글을 쓸만한 방이 없어서
원고 보따리를 옆구리에 끼고 가급적 싸고 조용한 여인숙을 찾아 이곳 저곳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오래 전 그 기억들이 떠올라 나는 여인숙 간판 앞에서 잠시 멈칬하고 서 있다가 다시 발길을 돌렸
습니다. 그런데 몇 걸음 옮기지 않았을 때 뜻밖의 돌발사고가 생겼습니다.
조용히 쉴 곳을 찾는다고 너무 돌아다닌 후유증인지 갑자기 내 무르팍이 콱 꺽이고 나는 그 자리
에 그만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폐품 처리된 신발을 구입한 게 문제였을까?
한쪽 다리가 신경이 죽어버린 것처럼 꿈쩍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금상산 가는 건 내겐 무리인가? 겨우 몇십년만에 기회가 찾아와서 북행을 하는데 이게
무슨 재앙인가? 걸을 수 없다면 거길 가서 무엇하나?"
내게 신앙이 있다면 나는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없는 나는 가방을 땅 바닥에 내려놓
고 두 손으로 움직이지 않는 한쪽 다리의 근육을 힘을 다 해 주물르고 또 주물렀습니다.
"어떻게든 가야지. 무리가 되더라도 가야지."
나는 조금 신경이 돌아온듯한 다리로 앉은채 예비동작을 몇 번 하다가 이윽고 다시 일어설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눈 앞에 내가 조금 전 바라보던 여인숙 간판이 나를 손짓해 부릅니다.
'그래. 다리도 아픈데 찾는다고 더 헤맬것 없이 저곳으로 가자.'
나는 코 앞에 있는 그 허름한 여인숙 문을 두드렸습니다. 여인숙은 3층에 있는데 환갑은 지난듯
한 뚱보 여인이 손님을 맞았습니다. 계속)
60년대 그 소설은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독자들을 끌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연히 영화가 나왔겠지만
저는 영화는 못 봤습니다. 연인들이 첫날밤?을 누릴 방을 찾는 일과 글 쓸 방이 없어 방을 찾는 일,
두가지 모두 절실하고 엄숙한 일들이란 점에서 대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8요일>. 워낙 어렸을 때 읽은 작품이라 디테일은 거의 기억이 나질 않지만, 2차대전 끝나고 사회적 인프라가 거의 다 파괴된 동유럽 어느 나라가 배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고픈 젊은 연인들인데, 그렇게 할만한 공간- 4개의 벽과 하나의 천장을 갖춘 공간-을 단 몇 시간도 확보하지 못해 방황하죠. 인간 존엄성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건드리는 실존이랄까... 어려서 그랬는지 그 연인들의 절박한 갈망이 잘 이해되지는 않더군요. 제일 마지막에 여자가 포격으로 무너진 길거리 폐허에 드러누워 연인에게 와서 자기를 가지라고 울부짖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제가 기억하는 게 <제8요일> 맞나 모르겠군요. 자신은 못하겠습니다.
아마 저 작품을 읽은 게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넘어가던 무렵 아닌가 싶은데, 어리다는 게 위의 댓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남녀의 정념을 이해하기에는 어렸다는 얘기지 무슨 초등이었다는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초등 때 저런 작품을 읽었다면 대단한 것이었겠지만, 그런 수준은 아니구요... 실제로 작품의 내용이나 표현에 특별히 어려운 것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소재나 줄거리, 분위기 등이 2차대전 이후의 암울한 분위기를 적절하게 형상화해서 히트한 것 아닌가, 그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마 저 작품에 대해서는 대학생이 된 뒤에도 문예지 등에서 한두번 누군가 언급한 것을 봤을 겁니다. 그러니 저 작품의 제목과 내용이 동기화(synchronized)될 수 있었겠지요. 다만, 주인공들이 이리저리 방을 구하러 다니는데, 구해질 듯하다가 못 구하고... 그런 좌절이 되풀이되면서 여주인공이 막판에 저런 폭발을 했던 모습만은 분명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사실 집에 책이 좀 많았습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별 것 아니겠지만 60년대의 기준으로 보자면 좀 특이한 편이었습니다. 누가 독서 지도해주는 일도 없어서 집에 있던 책을 이것저것 잡다하게 읽었고, 그러니 사람들이 잘 모르는 책도 읽었는가 하면 남들이 대부분 읽는 책은 또 안 읽은 경우도 많구요.
중고등학교 때 신구문화사(확실치는 않은데)에서 나온 [전후세계문제작품집]이라는 작품집에서 저 <제8요일>을 읽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한데, 기억이 분명치는 않구요. 세계 여러 나라의 2차대전 이후 문제작들을 소개해놓은 저 책에서 몇 개 기억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특히 佛蘭西(당시에는 프랑스를 이렇게 썼죠^^) 작품집이 재미있었던 것 같은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가 어느날 벽을 뚫고 지나가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사나이... 온갖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내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이 재능을 일종의 병으로 여기고 의사와 상담합니다. 의사가 약을 조제해주지만 이 친구는 너무 바빠서 그 약을 먹는 걸 잊어먹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어떤 여인을 사랑하게 되죠. 그 여인을 만나기로 한 날인데 몸이 좀 찌뿌드드해서 감기약이라고 먹었는데 그게 하필이면 의사가 지어준 '벽을 통과하는 병'의 치료약을 잘못 먹은 것이었죠. 이 친구가 여인을 만나려고 신나게 벽을 통과하는 순간, 그 약의 효력이 발동되어 이 사나이는 영원히 벽속에 갇히게 되었다는... 그리고 사람들이 그 근처에 가면 지금도 그 가련한 사나이가 벽속에서 신음하며 토해내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들린다나 뭐라나... ^^ 하여튼 이 비슷한 스토리였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우리나라 어느 극단이 저 스토리를 극화해서 공연한다는 얘기도 본 것 같기도 하구요.
또 하나 기억나는 건, 역시 프랑스 작품인데 어느날 정부가 법률을 개정, 사람에 따라서 한 달을 마음대로 늘려서 살 수 있게 한다는 내용입니다. 가령 세금을 많이 내거나 국가에 기여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달이 30일이 아니고 35일 40일 60일 이렇게 막 늘어나는 거에요. 기억이 분명치는 않지만 별볼일 없는 사람들에게는 한 달이 20일로 줄어들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대혼란이 일어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제도(?)의 혜택을 적극 활용하는 사람도 생겨나고 심지어는 이 늘어나는 시간을 거래하는 암시장까지 형성이 됩니다. 주인공(아마 소설가였던가 그랬던 것 같은데)은 처음 이 제도에 대해서 시큰둥하다가 누군가의 꾀임에 빠져 자신도 다른 사람의 시간을 사들입니다. 그리고 8월(가령)의 마지막 날(31일) 자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보니 8월 32일이 되어있는 거에요. 말 그대로 여분의 삶을 살게 되는 거죠.
신기한 경험도 하지만, 곧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자신이 8월 40일쯤에 만난 사람을 9월 1일에 만나보면 그 사람은 그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그냥 8월 31일까지만 살았거든요. ㅎㅎㅎ 뭐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정작 심각한 일은 이 주인공이 9월 50일쯤에 어떤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는 거에요. 불타는 사랑을 나누고 10월 1일에 이 여인을 만나러 가보니 이 여인은 "이 뭐 병?" 이러는 상황이 된 겁니다. 이 여인은 9월 30일까지만 생활했으니까요. 좌절과 절망에 몸부림치는 이 주인공에게 뉴스는 "정부가 새로운 달력법을 여러 부작용 때문에 폐지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줍니다. 하지만 그런 소식 따위가 뭐란 말인가, 나에게는 그따위 소식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독백하는 것으로 소설이 끝납니다(그런 것 같습니다^^).
로자한나님 덕분에 정말 저로서도 거의 40여년 전의 기억을 되살려봅니다. 나름대로 재미도 있네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시간과 체력만 허용하면 옛날 읽었던 책들을 하나씩 풀어보고 싶기도 한데, 그것도 쉽지가 않군요.
미투라고라 님...
양해랄 게 뭐 있습니까? 되레 환영입니다. 그런데 정말 기억력이 대단하시네요. 마르셀 에이메의 <생명제한> 이야기 아닌가요?
그 소설 저도 재미있게 읽었고 어떤점에선 영향까지...? 그러나 줄거리는 하나도 생각 안나는데 미투님은 엇그제 읽은듯 생생하
게 되살리네요. 그 프랑스 작품집에 이오네스코의 <대령의 사진>이란 짧은 작품도 있지요.
당시 신구문화사 전후작품집, 그게 참 좋았고 작가지망생들 치고 그 책 안 봤다면 아마 삼류일 겁니다. 일본작품도 요즘 하루끼다
뭐다 하는데 오오헤까 쇼헤이 같은 휴머니스트의 좋은 작품이 있었고.
거기서 나온 <전후시집>은 지금도 갖고 있는데 한국 소설 가운데 이 시집에서 제목 따온 것들이 열손가락으로 셀 수 없어요.
추락하는 것은 날개 운운. 서른 잔치는 운운, 북망 멀고도 고적 운운.. 이런 것들이 모두 <전후시집>에 나오는 시의 한 귀절들
입니다. 저는 지금도 오오헤까를 일본 최고 작가로 보고 있는데 <야화>,<부로기> 같은 반전 휴머니스트 소설이 백미들이지요.
오오에도 상 받으면서 '오오헤까 같은 더 좋은 작가가 받았어야 하는데..'라고 립서비스지만 한마디 한 걸로 알고 있어요.
로자한나님 말씀 듣고보니 마르셀 에이메라는 작가 이름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한때 꽤 유명한, 프랑스의 재기 넘치는 신예 작가였던가 그랬던 것 같은데... 그런데 정작 소설 제목은 기억이 나질 않네여 ㅎㅎ
저 댓글 달면서도 이오네스코라는 이름은 머릿속을 맴돌았는데 소설 제목은 이제야 떠오릅니다. 그런데 또 내용은 기억나질 않습니다. ㅎ
전후문제시집은 제 형님이 특히 아끼시던 책인데, 저는 시에는 별무 관심이라 패스...ㅎㅎㅎ 당시에는 시에 대해서 묘한 적대감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오헤까 쇼헤이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집에 일본문제소설집이던가 하는 5권짜리 작품집이 있었는데, 거기에 <열쇠>던가 하는, 요즘으로 치자면 어마어마하게 노골적으로 색정에 가득찬 스토리를 전개하던 작품이 기억나는데, 그 작가가 아마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였을 겁니다. 그런데 오오헤까라는 분은 잘 모르겠네요. 한번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시 제목의 표절을 말씀하셨는데, 저로서는 정말 괘씸하게 느껴지는 표절이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입니다. 그게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던가를 표절한 것이라고 하는 의견도 있던데, 제가 보기에는 일본의 다이쇼 시대 작가였던 아리시마 다케오(有島武郎)였던가 하는 작가의 단편에 스토리 구조가 판박이인 작품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는 누가 지적하는 사람이 없더군요.
하긴 지금 아리시마 다케오 검색해보니 대표작에 <카인의 후예>라는 작품도 있군요. 갑자기 황순원 선생님을 좀 다시 보게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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