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관련 질문님의 주장인....

1948년 이승만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대한민국 건국은 없었을 거라고 봄.

1950년 이승만이 인민군 포로가 되었다면 대한민국은 그냥 망했을 거라고 봄.

1953년 이승만이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없었을 거라고 봄.


글쎄요.... 질문님이 '봄, 봄, 봄'이라시는데 정답은? 春來不似春

예를 들어,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형식적으로 제 2의 을사늑약이라고 내가 주장하면 질문님이 나를 '주사파, 빨갱이 좌빨'이라고 비난하시려나? ㅋㅋㅋ


그리고.... 5.18 관련하여

질문님의 주장 중

전두환과 김대중은 서로 주고 받은 관계였다고 봄.

전두환이 김대중을 처형했더라면 김대중이 전두환을 사면할 일도 없었을 터...

전두환이 김대중에게 돈을 주지 않았더라면 4자필승론도 없었을 터...



질문님의 헛소리에 대하여 특별히 코멘트는 하지 않고.... 제가 모은 518 관련 기록들과 작성된 코멘트 중 몇 개를 발췌하여 올립니다. 그리고 김대중이 왜 전두환을 사면했는지는 제가 예전에 쓴 글인 '케네디의 516쿠테타 묵인'과 'DJ의 전두환 용서'라는 역사적 사실의 공통점'을 클릭


그러니까 질문님..... 님의 지식은 인정하는데 쪽글타기 타잔놀이 하지 마시고 다이다이 한번 붙어보자니까요? 발제는 님이 원하시는대로.. ^^

(상략)

 1980년 4월 14일자 동아일보 신문.png


맨 오른쪽에 전두환이 정보부장서리 및 국가보안사령관을 겸직한다는 기사가 실렸네요.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시나요? 바로 기사의 배치입니다. 당시 신문은 현재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페이지를 넘깁니다. 그리고 대부분 신문사의 로고 바로 옆에 그 날의 가장 중요한 뉴스를 올립니다.

 

물론, 헤드라인의 배치, 또한 기사의 종류, 기사별로 중요도에 따라서 지면 배치에 따라 바뀔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전두환의 정보부장서리 취임이 당시 대통령이었던 최규하의 담화보다 더 중요한 것일까요? 당시 학내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이슈였는데 말입니다.

 

 

, 신문 배치에 대하여 왈가왈부하고 싶은 생각 없으니 신문 배치 문제는 그냥 넘어갑시다. 그런데 정보부장서리에 취임한 전두환은 아래와 같이 인터뷰를 하고 있군요.

 1980년 4월 15일 동아일보.png

(1980 4 15일 동아일보 3면 왼쪽 중앙)

 

에휴~ 정치를 모르니 광주에서 학살극을 벌렸지….. 아니, 정치를 알았으면 대한민국 국민의 반을 때려 잡으셨을려나?

 

 

그런데 전두환 정보부장서리 취임에 대하여 당시 3김 중 DJ만 경고를 했다.

 

DJ가 회고록에서 주장한 역사적 근거를 아래 신문을 발췌하여 올린다.

 

 DJ 자서전 발췌.png

(출처는 여기를 클릭 : http://www.keywordguide.co.kr/site/article/guide_view.asp?guide_idx=8510) 

 

전두환이 중앙정부부장서리 임명한 다음 날, YS는 뜬금없이 선거권을 18세로 낮추고 신민당은 당시 족벌 학원 문제 때문에 학원의 소요가 끊이지 않자 학원조사단을 구성한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DJ만이 전두환의 중앙정보부장서리 임명에 대하여 염려하는 발언을 했다.

 1980년 4월 15일 동아일보-002.png

 

이제 역사적 맥락이 이해가 가시는가?

 (하략)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