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퇴직 언론인 P씨의 수기입니다. 그의 동의를 얻어 여기 게재합니다.

그간 폭염, 치과질환 등으로 <나는 왜 니나...> 후반을 잇지 못했는데  이 글을 끝내고

바로 <니나..>의 후속을 잇도록 할 예정입니다.

 

 

  나는 금강산에 한번 다녀왔습니다. 참 대단한 경험이지요. 노무현 전대통령의 탄핵이 거론될 때 일이니

벌써 8~9년이 흘러갔군요.

 남북 경계선을 넘어 또 하나의 조국 땅인 북쪽 땅을 내 발로 한번 밟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해 왔습니다. 그렇다고 어느 작가처럼 보안법을 공공연하게 위반하며 평양으로 날아가 주석님을 만나

는 그런 배포도 나에겐 없고 또 어느 작가처럼 술 한잔 마시고 압록강 기슭을 어슬렁거리다가 취중 실

수한척 북쪽 땅으로 슬쩍 넘어가는, 치기도 나에겐 없습니다.

 내가 북쪽 땅을 가보고 싶어하는 이유를 한 두 마디 말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군요. 저 경계선 너머에는

실재하지만 현실에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가상의 반쪽 짜리 조국이 있다. 나와 같은 세대들은 평

생 그 가상의 반쪽을 의식하며 살아 왔습니다.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반쪽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

이런 욕구와 호기심은 시정의 범부라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생각입니다.

 

 DJ 정권이 들어서고 남북은 드디어 화해의 길로 급속하게 접어듭니다. 사실 나는 92년 대선 시기에 어

느 출판사가 기획한 선거전망 책자에서 DJ를 지지하는 글을 쓰면서 그 첫째 이유로 그가 집권해야만 남

북관계의 숨통이 트일 거라고 적은 바가 있습니다. 몇사람 언론인과 작가들이 각자 지지하는 후보를 위

해 지지의 당위성을 펼치는 내용인데 나는 언론계 논객으로 그 당의 요청으로 거기 참여했습니다._92년

풀빛 출판사 간행-<大選氣像圖>_

 DJ 집권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 정회장이 소떼를 몰고 분단선을 통과하는 이벤트가 벌어지고 그리고

곧 꿈에서나 그리던 금강산 관광이 시작됩니다. 남북 화해 기류에 맟춰 수많은 유. 무명 인사들이 버스

를 타고, 혹은 비행기를 타고 북의 수도 평양을 왕래하는 모습이 텔레비 화면에 비칠 때마다 나는 그들

이 너무나 부럽고 한편 질투심까지 생겼습니다.

DJ가 그다지 가망없는 야권 후보일 때는 곁에 얼찐거리지도 않던 사람들이 그가 권력자가 되자, 구름떼

처럼 주위에 모여들었고 심지어 과거 그를 반대했던 인사들조차 언제 그랬냐는듯 시치미를 뚝 떼고

그가 방북하는데 만면에 웃음을 띠고 동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권력의 속성이란 걸 다시 느꼈습니다.

 

'그렇게 부러웠다면 돈 몇 푼 지불하고 금강산 관광 고객으로 가면 될 것 아닌가?'

이렇게 말 할 수도 있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나는 이미 퇴직 신분으로 일정 수입이

끊긴 상태였고 집안 생활도 근근이 꾸려가는 처지에 가족은 젖혀두고 나 혼자 금강산 구경 가겠다고

나설 형편도 아니었어요. 게다가 IMF 후유증이 여전하던 때라 과거 저서 몇권에서 이따금 나오던 인

세 수입마져 뚝 끊긴 상태였습니다. 출판사들은 종적을 감추고 연락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같은 언론계 퇴직자들 몇이 만난 술자리에서

'북에 아직 한번 다녀오지 못한 사람은 팔불출' 이란 말을 누군가로부터 들었습니다. 그게 내 심정을 꼭

찝어서 한 말처럼 들리더군요.

'바보 멍텅구리 같으니라고. DJ를 그렇게나 열성적으로 지지하더니, 그리고 그가 되어야만 남북관계

길이 열린다고 그렇게 열변을 토하더니 그래... 막상 길이 열리니까 거기 끼지도 못해?'

그 자리에 있는 퇴직 동료들이 겉으로 내색은 안 해도 모두들 내 처지를 비웃는 것만 같았어요.

내가 혼자 이렇게 끙끙거리고만 있을 때 어느날 '작가회의'라는 단체의 신임 사무총장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어요.

그는 다짜고짜 내게

"금강산에 한번 다녀오지 않겠느냐?" 고 물었습니다. 대학생 800명이 통일운동 단체 주선으로 버스

여러대를 동원하여 대거 방북하는데 '지도위원' 자격으로 다녀오라는 것입니다. 돈 한푼 들이지 않

고 맨 몸으로 가도 좋다는 것입니다.

나는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맨 몸으로'라는 이 말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이거 괜찮구나! 지지리도 운 없는 나에게도 드디어 팔불출을 면할 기회가 오는구나.

생각해볼 것도 없이 나는 담박에 시인인 그 신임사무총장의 권유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통일운동

단체 이름이 참 재미있습니다.

<지우다우>=지금 우리가 다음 우리를..

09년까지 이 단체가 활동했던 걸 기억하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