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사회 게시판
일베충중 일부가 우파독재를 찬양한다면, 그건 그들이 어려서 독재가 뭔지 민주주의가 뭔지 잘 모르기때문이든가, 아니면 독재에도 불구하고 업적이 과오를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평가의 결과일 겁니다. 그들중 대부분이 독재를 자기 몸으로 경험한 적이 없으니 독재의 직접적 폐해란 뜬구름잡는 소리일 터이나, 독재의 결과물은 지금 당장 누리고 있으니 호의어린 척도를 가질 수밖에 없죠.
자공이 정치의 요체를 묻자, 공자는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이라면 가히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답합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족식(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족병(한미상호방위조약), 민신(자유민주주의)이라는 세 개의 기둥위에 놓여 있는데, 이 세 기둥을 놓은 사람은 다름 아닌 이승만입니다. 3.15 부정선거와 4.19 발포의 책임을 지고 새 임기 시작하기 전날 스스로 하야한 사람입니다. 제맘대로 상원(참의원)을 열지 않았고, 초대 대통령에 대한 연임제한 폐지라든가, 대통령 경쟁자인 조봉암을 별 증거없이 처형하는 등 독재를 하였으나, 그 공적은 과오를 훨씬 뛰어넘죠. 그를 마냥 독재자라고 욕할 수만은 없는 까닭입니다.
그의 최대 공적중 하나가 "전국민 의무교육"이며, 4.19는 자신의 성취가 자신의 목을 죈, 소위 "적대적 소외"의 사례라고나 할지...
경향신문 폐간을 독재의 사례로 꼽는 사람도 있는데, 일단 이승만때는 그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을만큼의 언론의 자유(와 책임 강조)는 있었으나, 박정희때는 아예 그런 사건 자체가 일어날 수 없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의 외피가 보존된 경우와 그나마도 없었다는 차이이죠. 선거로 집권한 사람과 쿠데타로 집권한 사람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국민학교만이 아니라 고등학교까지 모두 무상교육 시켰고요 대학도 무상인데 다만 아무나 못간다는 것만 빼고
1970년 중반까지 남한보다 잘 살게 했고요
이승만은 합법적인 반민특위 해산이라는 무법행위를 저지르고
친일파를 앞장세워 민족정기를 훼손했고
전쟁때는 자신은 이미 대전으로 피난 가놓고 거짓 방송으로 서울사수를 외쳐 정부를 믿은 서울시민을 공산치하에 살게 만들고
대구로 갔다가 다시 대전으로 목포로 갔다 배로 부산으로 도망친 우왕좌왕이고
한갖 만주군 중위출신을 30살 약관에 참모총장을 시키는 웃기는 인간입니다
도데체 중위 출신이 어떻게 하면 8년정도 되는 시간에 ( 아무리 전시라지만) 별을 네개나 답니까?
더욱 광복군 이나 중국군 출신 백전 노장도 있고 김홍일도 있는데
게다가 부산에서 그 난리통에 사사오입 개헌으로 권력이나 탐하고 국민방위군 사건이 발생하게 만든 무능과 아첨군에게 속아넘어가고
무엇보다 실제 능력은 하나도 없고 준비도 안되어 있으면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고 큰소리치면서 신성모나 최병덕 같은 무능한 인사를 총애하고 6.25라는 엄청난 피해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김일성 못지 않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자기의 거짓말 때문에 피난 못간 서울시민을 부역자 색출이라고 해서 잡아다 고문하고 징역살렸지요
임진왜란의 선조나 병자호란때 인조와 다를바가 없는 인간입니다
항상그렇지만, 현학적으로 설명하려고 무척 애를 쓰시는 것은 알겠는데.. 형식이 폼난다고 해서 의미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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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대한민국은 족식(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족병(한미상호방위조약),
민신(자유민주주의)이라는 세 개의 기둥위에 놓여 있는데, 이 세 기둥을 놓은 사람은 다름 아닌 이승만입니다.
평가를 하려면 그 사람이 그 일을 하는데 필요충분조건이 되어야 가치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승만이었기 때문에 <국민학교 의무교육> <삼천명 유학> 이 가능했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서당을 확장했을 것이다.. 이런 가능성이 실증적으로 증명이 되야 이승만 국민학교론이
의미를 받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 당시 왕정주의를 꿈꾼 사람이 있습니까 ?
또는 이승만을 쉴드치려면 누가 되었어도 <4.3같은 진압은 불가피했으며> <반님특위해체는 불가피했으며>
누가되었어도 <한강다리 폭파는 불가피 했으며> <국민방위군 사건> <김구암살>은 불가피했었것이라고 해야
그 과오가 이해되고 공으로 감안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비열하고 교활하고
과대평가된 인간이 이승만이라고 생각합니다. 돌벼게에서 나온 <국가폭력의 기원>을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어슬픈 이승만의 에피소드로 그를 이해주고자 하는 보수지의 생각을 엄청난 영향이 있는 대통령이라는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을 혼합하여 감성팔이하는 전형적인 악질의 수법입니다.
이승만과 그 일파의 악행이 얼마나 대한민국을 파괴시켰고, 지금도 그 피해가 이어지고 있는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를 이해한다는 것은 또 이런 인간이 나온다면 지지한다는 말인가요 ? 다시는 이런 인간은 나타나지 않아야 합니다.
독일공업의 기반을 만든 아우토반을 닦은 사람은 히틀러죠. 그리고 당시 동물보호법을 만든 사람도 히틀러고요.
흐르는 강물, 코블렌츠/ 공과 과를 따져 보자는 것일 뿐.
1948년 이승만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대한민국 건국은 없었을 거라고 봄.
1950년 이승만이 인민군 포로가 되었다면 대한민국은 그냥 망했을 거라고 봄.
1953년 이승만이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없었을 거라고 봄.
김일성은 족식(足食)에서 실패. 일제가 남기고 간 북선의 중화학공업 토대에도 불구하고 족식에 실패하였음. 뿐 아니라 김씨 조선 왕조 건설로 시대착오. 공화국 체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던 이승만과 대비.
재작년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 연재된 백선엽 회고록을 읽어보면, 6.25 남침 당시 백선엽의 혁혁한 공훈을 알 수 있으며, "꿩 잡는 것이 매"라고 젊은 나이라도 출중한 무공을 세우면 신상필벌은 당연한 것임. 이기는 장군이 옳은 장군이며, "영웅은 소년에서 난다."는 옛말도 있음.
이승만이 독재자 아니라는 것 아니고, 그가 친일파를 자기 휘하에서 사용하지 않은 바도 아님. 통치의 도구로 쓸 인적 자원이 마침 그들밖에 없어서 다른 선택이 없었을 뿐, 초대 내각의 명단을 보면 전부 독립 운동 하던 사람들임.
이승만에 대하여 편향적인 시각을 가진 운동권 서적이 아니라 중립적이고 자세한 역사를 찾아 보면, 이승만이라는 당대 조선이 낳은 천재가 건국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 신생 대한민국에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었는지 알 수 있음. "하느님이 이 나라, 이 겨레를 버리지 않으셨구나!" 라는 느낌이 들 정도.
당시 남한 땅에서 미국의 국력을 제대로 알고, 미국을 알뜰히 이용할 생각을 하고, 실제로 미국을 적절히 이용할 능력, 카리스마를 가진 이는 이승만 단 한 명뿐이었다고 장담할 수 있음. 뿐 아니라 이승만과 맥아더의 친분이 없었다면 6.25 남침은 북한의 초전 승리로 끝났을 가능성 다대.
흐르는 강물님은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을 혼동하고 있음.
일본이 3개면당 하나씩 다음에는 1개면에 하나씩 서당대신 소학교도 만들어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요
극동군 사령관에 불과한 맥아더가 미국이나 유엔의 참전을 결정할 직위에 있는 듯이 말하는군요
미국의 한국전 참전과정은 다 아는 내용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백선엽은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정일권이 벼락출세할 수 있던 전공이 뭔가요
애초에 이승만이 아니었으면 6.25도 안일어 났을 가능성이 많아요
그리고 이승만 아니라도 미국은 한미 상호 방위조약했을 거고요
한국이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으면 한국전쟁에 개입을 안했겠지요
피흘려 지킨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키는데 당연히 방위조약 체결하지요
뭔 말이 되는 소릴해야지요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는 한국군의 군세를 돌아보고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이 '허세가 높은 반면 실속이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간파하여 채병덕의 면전에서는 채병덕을 극찬한 반면 이승만 당시 대통령과 단 둘이 있을 때 채병덕의 보직을 해임시키라고 건의한다.[8] 이승만은 맥아더의 이러한 건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채병덕을 육군참모총장에서 해임시키고 그 후임으로 정일권을 임명했으며 채병덕에게는 1개 연대의 병력만 부여하여 부산 방어의 임무를 맡겼으나 채병덕은 지휘경험 부족으로 인하여 전사하고 만다.
1950년 6월 30일~: 조지프 굴든, 김쾌상 옮김,《한국전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일월서각, 1982),112쪽.
http://ko.wikipedia.org/wiki/%EB%8D%94%EA%B8%80%EB%9F%AC%EC%8A%A4_%EB%A7%A5%EC%95%84%EB%8D%94
미국이 쌍무 방위조약을 체결한 나라는 전세계에 필리핀, 일본, 남한, 스페인(지금은 NATO에 가입)밖에 없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이 소위 천조국에서 거저 떨어졌다는 생각은 사실과 다름. 이승만의 온갖 협박, 안달복달, 회유, 읍소, 탄원, 반공포로 석방 끝에 이루어진 일임.
2차대전 이후 소련이 유럽에서 폴란드 등 위성국가들을 세우며 세를 넓혀나간 것이 미국의 극동정책을 강경성향으로 나아가게끔 결정적인 영향을 준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따라서 당시 이승만, 김구 등이 뭘 하건 분단은 피하기 어려웠고 남한은 미국진영에 속하게 될 운명이었습니다.
님이 세 개의 기둥으로 일컬은 그 큰 틀은 남한이 어느 진영에 속하는 가에 따라 정해졌고, 이승만은 그저 현지 집행자 역할 정도를 한 겁니다.
결국, 족식, 족병, 민신 이걸 어떻게 평가하건 그 공을 이승만에게 돌릴 순 없어요.
그러나 소련과 달리 미국은 전통적 해양국가이며, ICBM이 개발되기 전이므로 FEBA A, B, C의 개념이 엄존해 있었는데, 당시 미국의 FEBA A가 이른바 "애치슨 라인"임.
(FEBA: front end of battle area, 전투선단지역, FEBA 앞에 GOP를 설치함.)
즉, 한반도 남부는 "있으면 좋지만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땅은 아님" 수준이었고, 이 사실은 중국 공산화 후에도 마찬가지. 지금도 여전히 남한 땅은 미국 관점에서는 GOP임. 그래서 주한 미군은 가족 동반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음.
월남전 참전에 대한 미국내의 평가가 "The wrong war, at the wrong place, at the wrong time"인데, 6.25남침 참전에 대하여도 완전히 똑같았고, 그래서 "잊혀진 전쟁"이라고 불렸음. (지금은 달라졌음.)
"이승만, 김구들이 뭘 하건 분단은 피하기 어려웠"다고 보지 않음. 이승만이 없었다면 공산주의 혹는 영세중립 (오스트리아의 예) 단일국가가 섰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고 봄. 현재의 남한 정치 상황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일임.
이승만은 범인이 범접하고 평가할 수 없는 거인이자, 천재이자,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영웅임. 3천만 내지 7천만 명의 사람을 죽인 모택동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공식 평가가 功七過三임을 볼 때, 이승만에 대한 야박한 평가에 동의할 수 없음. 이승만에 대하여 왈가왈부함은 群盲推象이라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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