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수준과 몸매에 대한 선호
 

기근의 시기에는 굶주림의 위협이 크다. 반면 풍요의 시기에는 비만의 위협이 크다. 따라서 기근의 시기에는 풍만한 여자를 선호하고 풍요의 시기에는 날씬한 여자를 선호하는 것이 적응적이다. 남자의 몸매 선호 메커니즘이 이런 식으로 설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가설은 20세기 내내 전세계적으로 대체로 점점 더 날씬한 여자가 선호되고 있다는 사실과 부합한다. 20세기 내내 전세계적으로 대체로 물질적 풍요가 늘어났다.

 

문화 결정론자들은 보통 대중 매체의 영향력을 중시한다. 서양 선진 산업국의 문화가 전세계에 침투하면서 서양 선진 산업국의 몸매 선호까지 수출되었다는 것이다. 이 가설도 20세기 내내 전세계적으로 대체로 점점 더 날씬한 여자가 선호되고 있다는 사실과 부합한다. 하지만 이 가설에는 한 가지 난점이 있는데 왜 서양 선진 산업국에서 이전보다 날씬한 몸매를 선호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가설 중 어느 쪽이 옳은지, 모두 옳다면 두 요인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가릴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있다.

 

첫째, 서양의 문화에 거의 또는 전혀 노출되지 않은 문화권을 연구해 보면 된다. 만약 그런 문화권에서도 풍요가 늘어나면서 점점 날씬한 몸매가 선호되고 있다면 진화 심리학의 가설이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서양 문화에 전혀 노출되지 않은 사냥-채집 사회들, 목축 사회들, 농경 사회들을 비교 분석하는 방법도 있다. 만약 풍요의 정도와 몸매 선호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다면 진화 심리학 가설들이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둘째, 20세기 내내 대체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점점 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일시적인 경제 침체가 아니라 장기적인 영향을 끼친 대규모 경제 붕괴가 일어난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진화 심리학 가설이 맞다면 그런 나라에서는 몸매 선호 경향이 역전되어 다시 풍만한 몸매를 선호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을 것이다.

 

예컨대 북조선은 폐쇄적인 나라로 유명하다. 북조선에는 서양 문화가 상대적으로 덜 침투했다. 또한 북조선은 한국 전쟁 이후로 1980년대까지 고속 성장하다가 그 후 경제가 붕괴하여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만약 진화 심리학 가설이 옳다면 북조선에서는 1980년대까지는 점점 더 날씬한 몸매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다가 그 이후로 방향이 역전되었을 것이다. 비슷한 나라들을 연구해 보면 상당히 그럴 듯한 증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의상 디자이너는 왜 빼빼 마른 모델을 선호하나?
 

여자 패션 모델은 여자의 평균 몸매보다 훨씬 말랐다. 게다가 패션 모델의 몸매는 남자들이 선호하는 몸매도 아니다. 당구장, 맥주집, 도색 잡지, 야동 등에서 볼 수 있는 헐벗은 여자들은 패션 모델에 비해 상당히 살이 찐 편이다. 인기 여자 연예인들도 패션 모델에 비해서는 상당히 살이 찐 편이다. 대규모 설문 조사를 해 봐도 남자들이 패션 모델 같이 빼빼 마른 몸매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난다.

 

대체로 의상 디자이너들은 마른 여자가 입어야 옷의 맵시가 산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하지만 도대체 왜 마른 여자가 옷을 입어야 맵시가 산다고 그들은 느끼는 것일까? 맵시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나는 디자이너들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 상당히 궁금하다. 두 가지 가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가설: 무슨 이유 때문인지 패션업계에서 마른 모델을 위한 옷을 만드는 것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그 이후 디자이너들이 관성에 빠져서 남들이 하는 것을 모방하기만 한 것이다. 즉 마른 모델을 위한 옷만 주로 만들게 된 것이다. 마치 어떤 종교의 교리가 일단 자리를 잡으면 그 교리에 어떤 합리적인 이유가 없어도 계속 지속되는 것처럼 패션업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거의 아무도 풍만한 여자를 위한 옷을 만드는 것을 별로 시도하지 않아서 풍만한 여자 모델을 위한 맵시 있는 옷 자체가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풍만한 여자가 옷을 입으면 맵시가 없다는 편견이 패션업계에서 지속된다.

 

둘째 가설: 인간의 몸매 선호 메커니즘은 옷을 전혀 입지 않았을 때 진화했다. 옷을 입으면 조금 더 뚱뚱해 보인다. 특히 바지를 입었을 때보다 치마를 입었을 때 더 뚱뚱해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여자가 치마를 입는다. 만약 의상 디자이너가 치마 입었을 때 이상적인 몸매를 보려고 한다면 상당히 마른 여자를 모델을 써야 한다. 이 가설은 남자 패션 모델에 비해 여자 패션 모델이 더 말랐다는 점과 부합한다. 여자 모델만 치마를 입는다. 또한 여자 모델이 입는 옷은 장식이 많다. 이 두 요인 때문에 여자 모델은 벌거벗었을 때보다 옷을 입었을 때 많이 뚱뚱해 보인다.

 

 

 

 

 

거식증
 

David C. Geary의 『Male, Female: The Evolution of Human Sex Differences(2009, 2판)』에서는 여자가 거식증에 걸리는 이유 중 하나는 대중 매체에서 패션 모델을 보고 여자가 그것을 이상적 몸매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이 설명이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패션 모델은 평균 몸매, 남자들이 선호하는 몸매, 최고 인기 연예인들의 몸매보다 훨씬 말랐다.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여자라면 다를 수 있겠지만, 여자들은 보통 패션 모델보다는 인기 연예인들을 훨씬 더 많이 접한다. 패션 모델보다 다른 연예인들이 대체로 인기가 높다. 또한 남자들은 빼빼 마른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가 빼빼 마른 몸매를 이상형으로 생각한다는 점은 상당히 이상하다.

 

거식증에 걸린 여자가 패션 모델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설명보다는 ‘날씬함’, ‘다이어트’에 대한 담론(discourse, 담화)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차라리 더 그럴 듯해 보인다. 많은 여자들이 남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몸매보다 살이 더 쪘기 때문에 날씬함과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 그리고 강박증과 같은 문제가 있는 일부 여자들이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서 이미 빼빼 말랐음에도 불구하고 살을 더 빼려고 하는 것 같다.

 

이런 설명에도 문제는 있다. 거식증 환자들은 대체로 자신이 살이 쪘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도 그렇게 믿는 것 같다. 패션 모델보다 더 마른 거식증 환자도 살이 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패션 모델 모방 가설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2010-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