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억의 대작에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라는 영화 외적 요소만으로도 기대감이 들어 지난 주말 극장을 찾았다.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아쉽다는 생각은 많이 든다. 400억의 돈이 아까운 것은 아니다. 블록버스터 영화로는 그런대로 잘 만든 영화이나 봉준호의 역량이나 영화철학에는 좀 못 미치는 감이 있다. 너무 주제의식을 강조, 아니 강요하다보니 힘이 들어 가긴 했으나 엉뚱한데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지 못하고 주입식 교육을 받는 불편함을 느꼈다면 내가 오버한 것일까? 윌포드를 찬양하고 설국열차와 그 시스템에 복종하는 교육을 받는 어린이와 내가 오버랩되는 것을 느끼는 이 역설을 봉준호는 생각했을까? 이 영화는 이런 주제의식의 강요에 오는 불편함 외에도 몇가지 문제를 노정한다. 


1. 감정이입도 공감도 잘 되지 않아 몰입이 되지 않는다.

영화는 각 인물들에 감정이입이 되고 관객이 영화 속 인물들에 투사되며 대리되는 순간에 몰입하게 된다. 이 감정이입이나 공감이 설혹 초반부터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중간에라도 서서히 일어나야 하는데 이 영화는 끝날 때까지 그렇지 못하다.

이 영화는 주인공 커티스가 왜 반란을 모의하는지, 어떻게 꼴찌 칸의 지도자가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없이 시작한다. 꼴찌 칸의 사람들이 맨 앞칸 엔진부로 쳐들어가야 할 이유가 절실해 보이지 않는다. 꼬리 칸의 사람들 간의 내부 갈등도 없다. 반란의 계기도 어린아이 두 명이 맨 앞칸으로 잡혀가는 것인데 그리 절실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앞 칸으로 전진하면서 다른 계층(계급)간의 충돌이나 갈등이 있어 관객들로 하여금 꼬리 칸 사람들의 편에 서게 하는 것도 아니다. 도끼를 들고 싸우는 물리적인 충돌은 있으나 내면의 심적 갈등이나 충돌은 없다. 그래서 감흥도 없고 여전히 관객은 제3자의 객관적 입장을 유지하게 된다. 국대간의 경기가 아니라 동네 조기 축구라도 니 편, 네 편이 되어 관전해야 재미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끝까지 제3자의 자리를 지키게 만든다. 영화가 다의적, 중첩적이라서 관객으로 하여금 제3자적 관점이 필요한 영화라면 몰라도 이 영화는 주제의 성격상 제3자적 관점은 걸림돌이다.

마지막에 커티스와 윌포드의 독백이나 대화로 영화 전체를 설명하고 그 때서야 커티스가 왜 엔진부로 돌진해야 했는지를 관객에게 이야기하면서 공감을 유도하지만 관객들은 이미 영화의 거의 전부를 제3자적 관점에서 보아 버린 뒤이다. 견학한 학생이 안내원의 설명을 듣는 꼴이랄까? 사실을 인지하는 것 뿐 거기에는 감흥이 따르지 않는다.

마지막의 커티스나 윌포드의 독백이나 대화는 영화의 특성이나 장점을 포기한 것이다. 영화는 showing이지 telling이 아니다. telling을 showing으로 감흥을 배가하는 것이 영화의 장점이고 감독의 특권이다.



2. 캐릭터가 없다.

젊은 지도자 커티스, 커티스를 보조하는 에드가, 늙은 성자 길리엄, 티냐의 어머니 옥타비아, 또 다른 아이의 아빠 앤드류, 이 꼴찌칸의 주인공들은 캐릭터가 분명하지 않다. 아니 캐릭터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배우의 역량이 모자란다기 보다 영화의 구성이 원인이라 본다. 1항에서 보듯이 반란의 이유와 계기가 명확하지 않고 반란의 준비도 거의 생략되다시피 해서 각 인물들이 캐릭터를 형성할 기회가 없다. 각 인물들의 성향이 비슷한데다 반란에 모두 한결같이 헌신적이다. 이러다 보니 각 인물들간의 차별성도 사라져 더욱 캐릭터는 실종이 된다. 웃기는 놈, 비열한 놈, 바보같지만 우직한 사람, 기회만 보는 놈, 하다못해 반란에 동의하지만 방법을 달리 제시하는 인물도 있어야 하는데 모두가 한결같고 밋밋하다.

설국열차 보안전문가 낭궁민수(송강호 분)도 마찬가지다. 영안실 시체 보관소 같은 감옥에서 나오지만 보안전문가로서 역할은 제로다. 맨 앞칸 엔진부로 가기 위해 열차칸의 문을 여는데 꼭 필요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지만 고작 하는 것이 각 칸마다 배선을 연결해서 문을 여는 것이다. 보안전문가 느낌은 커녕 동네 수선집 무대뽀 아저씨일 뿐이다. 그나마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튼 분)는 악역으로, 비열함으로 그 캐릭터가 살아있는 편이고.

각 인물들의 캐릭터가 보이지 않다보니 이들이 앞칸으로 전진하는 과정에 죽어가도 아쉬움도 없고 감흥도 없다. 길리엄이 죽어도 에드가가 죽어도 옥타비아나 앤드류가 죽어나가도 다시 살아오기를 기대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메이슨이 인질로 잡힐 때 바로 죽이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총(도끼?)으로 죽임을 당할 때도 맨 앞칸까지 가서 죽었으면 좋을텐데 좀 빨리 죽는다고 생각하거나 나중에 다시 살아오기를 은근히 기대한 것은 내가 악인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현실은 영화처럼 인물들의 캐릭터가 밋밋할지 모르지만, 영화는 저래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3. 막판 반전이 생뚱맞다. 복선이 없어도 너무 없다.

영화는 반전이 묘미다. 하지만 반전이 생뚱 맞으면 허탈해진다. 설국열차가 그렇다. 윌포드와 길리엄의 내통, 두 사람이 커티스를 설국열차의 지도자로 키우고 반란(혁명)을 주도하게 계획했다는 사실, 설국열차의 질서와 균형을 위해 윌포드와 길리엄이 모의해 반란과 진압과정에서 인간의 희생을 계획했다는 것을 윌포드의 독백(대화)으로 이야기함으로써 반전을 꾀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저건 뭔밍?”하는 반응이다. 반전은 반전인데 관객들은 공감하지 못한다. 이는 반전을 위한 사전 복선이 없어도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반전의 복선 하나를 굳이 찾는다면 반란의 중반부에 상호간의 살생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시점에 길리엄이 전진을 멈추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그것도 커티스가 윌포드의 이야기를 듣고 반추하는 장면이 아니라면 관객들은 길리엄의 말이 복선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윌포드와 길리엄이 같은 목적으로 내통하는 것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꼴찌칸의 사람 중에 윌포드의 지시를 받는 사람이 있었고, 이것을 커티스가 눈치 채고 처단하려 할 때 길리엄이 자비를 내세워 살려주자고 하는 장면이 초두에 있었으면 어떠 했을까? 앞칸의 동조자의 메시지(사실은 윌포드의 메시지)를 커티스가 받는 것이 아니라 길리엄이 받게 했더라도 관객은 복선일지 모른다는 의심으로 영화에 조금 더 몰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캐릭터가 분명하지 않은 것도 관객의 몰입을 방해했지만 이런 복선의 배치가 없었던 것도 몰입 방해의 요소였다고 나는 본다.

커티스가 막판에 반란을 일으키게 된 과거의 사건을 말하는 것도 관객이 반전이라기보다 의외라 느꼈을 것이다. 설국열차 초기 마지막 칸의 사람들은 윌포드가 음식을 제공하지 않아 서로를 잡아먹는 아비규환의 상황이었고, 어린아이의 고기 맛이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아기인 에드가를 잡아 먹으려 할 때 길리엄이 자기의 팔을 잘라 내어놓았다고 하는 커티스 말은 충격적이고 반전이긴한데 생뚱맞다는 느낌도 함께 든다. 항의하다 벌칙으로 열차 밖으로 팔을 내밀어 얼게 되는 벌칙을 받은 앤드류의 팔이 망치로 떨어져 나간 것을 양갱을 만드는 바퀴벌레와 함께 통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사전에 들어갔더라면 커티스의 독백이 좀 덜 생뚱맞았을 것이다.

봉준호는 왜 마지막 반전을 위해 사전의 복선 배치를 전혀 하지 않았을까? 이런 부분은 진짜 아쉬웠다. 복선은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는 장치이기도 한데 말이다.


4. 주제의식은 강한데 치열하지 못하고 개연성이 적다

봉준호는 설국열차가 현실의 모순된 세계라는 것을 보여주고 그 해법을 새로운 시스템으로 찾아야겠다는 주제의식은 강했지만, 현실 세계의 모순을 보여주고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함을 보여주려는 치열함이 없었다. 너무 쉽게 다음 칸의 문이 열려 계층(계급)간의 갈등을 보여주지 못했고 꼴찌칸의 사람들이 맨 앞칸을 가야하는 절실한 이유도 찾기 힘들었다. 꼴찌칸의 인물들이 계층(계급)간의 모순과 갈등으로 고뇌하는 적나라한 모습도 없었다. 영화는 수십칸의 열차로 표현되어 현실의 복잡다단한 사회구조와 다양한 계층과 인물군이 있을 것으로 기대케 하였으나, 막상 앞칸으로 전진하면서 본 모습은 상층부의 화려함 뿐으로 꼬리 칸의 하천민과 부유층이라는 19세기의 단순한 구도로 만들어 놓아 현실감이 떨어졌다. 열차가 상층부의 삶을 보여주는 것(온실, 찜질방, 클럽, 아쿠아리움)으로만 채워졌을 뿐, 중간의 다양한 계급은 생략되고 또 계급간의 모순이나 갈등,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지 못하니 관객들은 개연성에 의문을 갖게 되고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즉, 당위는 강조되는데 설득력은 없었다.

그러나 환각물질 클로론의 배치는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송강호와 고아성이 클로론의 환각에 취해 있지만 이 물질은 열차의 문을 여는 폭파물로 사용되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는 기존 질서를 깨고 새로운 판을 짜는데는 현실의 수단과 사고로는 힘들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나마 반전 중에 의미 있었던 것은 클로론이 환각제가 아니라 문을 여는 폭파물로 기능하는 것이었다. 또 송강호와 고아성이 필요 이상의 클로론을 모을 때에 관객은 그것이 복선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게 해서 클로론의 반전은 생뚱 맞지도 않고 자연스러웠다.


5. 베르나르의 파피용과 봉준호의 설국열차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문득 떠오르는 소설이 있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이다. 설국열차와는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많아 묘한 대비를 이루는 소설이다. 설국열차처럼 파피용은 현재의 오염된 지구를 떠나 새로운 지구를 찾아 떠나는 우주선이다. 설국열차나 파피용은 외부세계와 차단된 닫힌 계라는 것은 같지만, 그 안의 구성원과 시스템은 상반된다. 파피용 설계자 이브가 세운 원칙은 “지구에서 행해지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로 파피용에는 정치, 경찰, 사유재산, 범죄 없는 유토피아다. 그리고 순수만을 간직한 착한 사람만 태웠다. 반면에 윌포드의 설국열차에는 현실의 일반군상들을 모두 태우고 기존의 시스템(자본주의?)으로 운영한다. 시스템 온존을 위해 균형과 질서를 유지하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계급과 차별이 존재한다.

설국열차는 기존 시스템으로 열차를 보존하려 하지만 기존 시스템을 탈출하면서 새로운 시스템의 건설을 꿈꾸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파피용은 현실 시스템을 거부한 채 새로운 시스템으로 운행을 시작하지만 종국엔 기존의 세계로 돌아와 버린다. 설국열차와 파피용은 시작과 결말이 서로 상반되면서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된 듯한 묘한 느낌이다.

파피용이 엘리자베트15와 아드리앵이라는 백인을 최후의 인물로 남기지만, 설국열차는 요나와 티나라는 황인종과 흑인을 마지막으로 남겨 새로운 시작을 하려 한다. 파피용이 성경의 창세기와 같이 아드리앵의 뼈를 살려 여자애를 만들고 후세를 기약하고, 아무리 순수한 인간 집단이라 하더라도 인간은 원죄에 의해 혼탁해 진다는 메시지를 남기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묻어난다면, 설국열차는 윤회하는(1년에 지구를 1 바퀴 일주하는) 설국열차를 탈출하면서 희망을 본다는 점에서 윤회의 사슬과 카르마로부터 벗어나는 해탈을 목적으로 하는 불교와 닿아 있는 듯하다.


6. 17년, 그리고 백곰

나는 봉준호가 설국열차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시점을 달린지 17년으로 잡은 것에 나름 의미 부여를 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17년, 내가 좀 엉뚱하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17년은 박정희의 재임기간(1962~1979)이고 윌포드는 박정희로 묘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만화원작을 읽어보지 못해서 거기에는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봉준호의 이런 설정이 단순히 우연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봉준호는 박정희의 17년은 우리나라의 자본주의(산업화)의 모순이 축척되고 임계점에 도달한 시점으로 보았고 그 탈출구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시스템)이어야 한다고 본 것이 아닐까? 그 구체적 방식은 제시하지 않지만 백곰을 보여줌으로서 가능성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런데 봉준호는 그 17년의 또 다른 의미는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그 백곰을 볼 수 있었던 것은 17년이 지난 뒤였다. 만약 17년 동안 설국열차로 생존하지 않았으면 그 백곰을 볼 수 있었을까? 17년이 지나니 눈이 그치고 온도가 올라가고 인간이 생존할 환경이 조성되어 가는 것이었지 만약 17년 전에 설국열차가 운행을 멈추거나 설국열차를 파괴하고 탈출했다면 백곰을 볼 수 있었을까?

앞서 파피용과의 비교에서 봉준호는 기존의 서구의 세계관이나 종교관이 아니라 동양의 그것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구상하려 한다고 말했지만, 백곰의 등장이 단군신화의 곰 이야기를 연상케 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의 중심이 동양, 우리나라에서 시작되려한다는 것을 보여주려한 것 아닐까라는 과도한 상상도 해 보았다. (6항은 나의 과도한 오버라는 생각은 든다. ^*^)


7. 그러나 볼만한 영화다

내가 기대한 것에 못미쳐 조금 혹평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설국열차가 돈 들여 보기 아까운 영화는 아니다. CG 처리도 잘 했고, 400억을 들인 블록버스터로 볼거리는 많아 시간과 돈이 아깝지는 않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을 도출할 수 있는 점도 있다. 그렇게 지루한 영화도 아니고...

우리도 블록버스터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이 영화는 봐 줄만 하다. 적어도 예전의 심형래의 디워 논쟁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한번 보시라.


<등장인물>

남궁민수 - 송강호

요나 -고아성

윌포드 - 에드 해리스

길리엄 - 존 허튼

커티스 - 크리스 에반스

앤드류 - 이완 브렘더

에드가 - 제이미벨

옥타비아 - 스펜서

메이슨 - 틸다 스윈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