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박스 인용은 현대적 사민주의 조류에 대한 최장집 교수의 견해. 저는 이게 가장 정확한 견해라고 봅니다. 차칸노르님처럼 사민주의를 애써 사회주의로 규정지으려는 분들이 있지만, 정통성있는 견해는 아닙니다. 최초 사민주의가 등장했을 때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부정하는) 사회주의가 맞았지만, 이후 많은 변화를 거쳤고 지금은 사민주의를 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소수의 견해이죠. 현재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운영하는 특수한 자유주의적 방식중의 하나라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사회적 시장경제(Sozialmarktwirtschaft)든, 사민주의적 시장경제든, 뭐라고 부르든 간에, 사회의 공동체성과 복지의 가치를 시장을 규율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삼는 내용을 포괄한다. 현실에서는 이를 대표하는 나라들을 독일, 프랑스, 스칸디나비아국가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사민주의 또는 복지국가라고 할 때, 이들을 사회주의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이들은 엄연히 자유주의 국가다. 하지만 경제체제는 영미처럼 규제되지 않은 시장자유를 중심으로 한 경제체제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가 들어온 규제된 시장경제체제를 말한다.

http://www.redian.org/archive/39290


원래 사민주의라는 별개의 이념체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혁명 밖에 없다고 주장하던 마르크스등과 달리 합법적 정당활동과 선거를 통해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라살레가 그 시작이죠. 그리고 그런 라살레주의가 실제 현실에서 시도된 것은 사민주의의 원조 유럽이 아니라 칠레의 아연데 정권이었습니다. 결과는 뭐 아다시피 얼마 못가고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무너졌구요. 

그와는 별도로 마르크스 사후,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부에 거대한 논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른바 자본주의 고도화 논쟁이죠. 레닌처럼 자본주의 고도화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장 폭력적 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게 가능하다는 쪽과 멘셰비키나 수정주의처럼 자본주의가 고도화된 상태에서만 혁명은 물론 사회주의 실현도 가능하다는 쪽으로 갈리게 되죠. 그런데 사실 논쟁 초기에는 레닌등이 마르크스의 이론을 일부 부정하는 수정주의였고 오히려 멘셰비키등이 정통파 마르크스주의였습니다. 그러나 레닌이 러시아혁명을 성공시키자 전세가 역전되고 정통주의와 수정주의가 뒤바뀌게 됩니다.

이후 수정주의파의 이론에 라살레주의가 결합하여 본격적인 사민주의가 태동을 하게 되죠. 요약하면 합법적 정당활동과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도록 자본가들의 경제활동에 최대한 협조하되, 자본주의적 발전단계에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노동자 농민들의 고통 (착취) 를 최소화한다가 바로 그것이죠. 그리고 마르크스의 이론이 맞다면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면 저절로 사회주의사회로 이행할 텐데 굳이 미리부터 애써서 실현하려고 하느냐는 입장이 대세를 이루게 됩니다. 이게 바로 현대적 사민주의죠.

그래서 그런 사민주의의 이론적 입장에서는 필연적으로 자본가들의 경제활동 최대한 보장, 주요기간산업의 국유화,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실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선거를 통해 집권을 해야만 하니까 민주주의와 인권 등에 굉장한 노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구요. 솔까말 박정희의 경제정책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국유화 등등) 에 복지와 민주주의 인권까지 더해지면 매우 근사한 사민주의가 됩니다. 박근혜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들고 나올 때 솔깃해서 기대를 했던 것도 그래서이구요. 그걸 누가 하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모로 가든 서울만 가면 되는거고, 그걸 사민주의라고 부르든 진보적 자유주의라고 부르든 학술적 명칭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흐강님이 며칠전 한국의 점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사민주의밖에 없다고 주장하시던데 적극 동감합니다. 오래전부터 아크로에서 외로이 사민주의를 떠들어 댄 제 입장에서는 장족의 발전입니다^^
http://theacro.com/zbxe/891585

현대적 사민주의는 더 이상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차칸노르님께서 사민주의와 사회주의를 어떻게 정의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주의와 여타 체제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특징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폐지와 사회화' 입니다. 이걸 포기하면 더 이상 사회주의로 볼 수 없는거죠. 그리고 과거에는 사회화와 국유화가 동일한 것으로 취급되었지만,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면서 그런 입장도 많이 수정이 되었습니다. 생산수단이 국유화되었더라도 사적인 지배를 당하면 그것은 사회화가 아닙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없는 곳에서는 사회화도 불가능하고 필수조건인 것이죠. 북한의 현실이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구요. 저는 경제민주화가 초보적인 사회화 시도가 아니겠나 그런 입장입니다.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는 사실 부차적인 문제일 뿐인거죠. 생산력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그 혜택이 얼마나 골고루 전해지느냐도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덧) 차칸노르님은 대통령제 아래에서 사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데, 프랑스는 대통령제 국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