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의 어깨 위에서 서울을 보다 (곽영훈-김대호 대담)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국에서 도시 디자인(계획)은 주로 건축학과, 도시공학과, 조경학과에서 다룬다. 이 학과(특히 조경학과)들은 대학에 따라 속한 단과대가 다르다. 어떤 곳은 농대, 어떤 곳은 공대, 어떤 곳은 미대 소속이다. 그만큼 종합(복합) 학문이라는 얘기다. 종합 학문이라는 것은 ‘종합의 정수(최고봉)’인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실 역사적으로 정치가(단적으로 알렉산더, 카이사르, 정조 대왕 등)는 도시 디자이너였다. 요즈음은 거꾸로 가는 케이스도 좀 있다. 서울의 버스 중앙차로의 모델이자,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꿈의 도시로 불리는 브라질의 꾸리찌바 시장들이 대표적이다.

 

 

큰 토목‧건축 공사가 주요하게 포함된 도시 디자인(계획)은 압도적으로, 재정과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정부에 의존한다. 이는 토목건설 업체나 도시 디자인 전문가들의 명줄을 사실상 정부가 쥐고 흔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도시 디자인 전문가가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가 의욕적으로 밀어붙인 사업을 전문가적 식견으로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만 하더라도 거대 토목건설회사는 말할 것도 없고, 언론의 주류도, 사학 재단의 대부분도, 서울시와 경기도의 수장도 하나같이 보수 층(반참여정부 층)이었기에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주도한 도시(국토) 디자인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가혹한 폄하의 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는 전문가들의 묵직하고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쉽지 않다. 귀에 거슬리는 얘기를 했다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때론 상상을 초월하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고 느낀다고, 나는 평소 도시 디자인의 대가들이 서울과 역대 서울 시장들이 주도한 서울 도시계획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세계적인 도시건축가인 곽영훈 박사와 인연이 닿아 그의 어깨 위에서, 서울과 오세훈이 주도한 서울 디자인을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대담은 2009년 12월 중순께 이뤄졌다. 발언 요지만 전달하기 위해 경어는 생략했다.

 

가의 어깨 위에서 서울을 보다 (곽영훈-김대호 대담)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국에서 도시 디자인(계획)은 주로 건축학과, 도시공학과, 조경학과에서 다룬다. 이 학과(특히 조경학과)들은 대학에 따라 속한 단과대가 다르다. 어떤 곳은 농대, 어떤 곳은 공대, 어떤 곳은 미대 소속이다. 그만큼 종합(복합) 학문이라는 얘기다. 종합 학문이라는 것은 ‘종합의 정수(최고봉)’인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얘기다. 사실 역사적으로 정치가(단적으로 알렉산더, 카이사르, 정조 대왕 등)는 도시 디자이너였다. 요즈음은 거꾸로 가는 케이스도 좀 있다. 서울의 버스 중앙차로의 모델이자,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꿈의 도시로 불리는 브라질의 꾸리찌바 시장들이 대표적이다.

 

 

큰 토목‧건축 공사가 주요하게 포함된 도시 디자인(계획)은 압도적으로, 재정과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정부에 의존한다. 이는 토목건설 업체나 도시 디자인 전문가들의 명줄을 사실상 정부가 쥐고 흔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도시 디자인 전문가가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가 의욕적으로 밀어붙인 사업을 전문가적 식견으로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만 하더라도 거대 토목건설회사는 말할 것도 없고, 언론의 주류도, 사학 재단의 대부분도, 서울시와 경기도의 수장도 하나같이 보수 층(반참여정부 층)이었기에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주도한 도시(국토) 디자인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가혹한 폄하의 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는 전문가들의 묵직하고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쉽지 않다. 귀에 거슬리는 얘기를 했다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때론 상상을 초월하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고 느낀다고, 나는 평소 도시 디자인의 대가들이 서울과 역대 서울 시장들이 주도한 서울 도시계획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세계적인 도시건축가인 곽영훈 박사와 인연이 닿아 그의 어깨 위에서, 서울과 오세훈이 주도한 서울 디자인을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대담은 2009년 12월 중순께 이뤄졌다. 발언 요지만 전달하기 위해 경어는 생략했다.

 

 

광화문광장에 대하여

 

김대호: 광화문 광장은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교통량을 우회시킬 주변 도로가 없다 해도 도로 중앙에 그리 넓지 않은 섬 같은 광장을 만든 것은 이해가 안 된다. 백보 양보해도 광장은 최소한 세종문화회관과 연결되어야 제 기능을 할 것 같다. 도대체 거리 중앙에 공원을 만든 곳이 있긴 있나?

 

곽영훈: 보스턴 마라톤을 잘 알텐데, 결승구간 가기 직전에 ‘Commonwealth Avenue’ 라는 큰길이 있다. 그 중앙에 대형가로수로 조성된 띠 모양의 거리 중앙공원이 있다. 이 거리 중앙공원은 동상이나 조각물 이외에 다른 지저분한 시설이 전혀 없이 보스턴 중심공원과 연결되어 있으며 보행자 도로가 끊김 없이 띠 중간에 설치되어 도시 녹지네트워크의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사례로 일본의 나고야에 가면 100m 정도 넓이의 중심 거리가 도시 중앙에 길고 넓게 공원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중심 가로공원은 지하의 많은 통로와 연결되어 있고 횡단보도를 통해서 도로 위로도 연결되어 있다. 이 중앙 가로공원은 워낙 넓어서 여러 가지 형태로 도시공간이 꾸며져 있다. 지표광장으로 쓰이는 곳도 있고 어떤 부분은 지하공간이 크게 뚫려 있어 시민들의 입체적 사용이 가능하다. 특이하게 눈에 띄는 것은 이곳 지하공간에서 국제회의 같은 큰 모임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 국제회의는 호텔 안의 보이지 않는 연회장에서 하고 심지어 시민의 세금으로 열리는 회의조차도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가 없다. 바로 이런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나고야는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때론 우연스럽게 회의를 방청하거나 참여할 수 있게 열린 지하광장도 만들고 지표면과의 연결은 물론 지상 5층 정도까지 연결되어 다이내믹한 보행공간이 연출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라는 거리는 보스턴과 나고야 같은 공원형태는 아니고 쇼핑과 보행중심의 공간이다. 우리 황영조 마라토너가 뛴 몬주익 언덕 옆에 콜럼버스 광장이 있는 지중해와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길다란 람블라스 광장에는 말린 생선가게, 꽃가게, 카페, 일상용품 가게, 채소 가게 등이 있어서,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재미와 활기를 불어 넣는다. 보스턴의 Commonwealth Avenue와 달리 보행자 중심의 활발한 가로광장으로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관광객들이 즐겨 찾았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같이 각광을 받았던 거리이다.

 

쿠리치바 도심의 중심도로는 명동거리가 좀 넓게 펼쳐 있는듯한데 완전히 보행자 천국이다. 이런 가로공원은 유럽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도심 가로광장은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보행공간과 그 연변 도시기능과 잘 어우러져야 한다. 광화문광장 주변에 무엇이 있나? 세종문화회관, 미대사관, 정부종합청사 등 인간 척도와 거리가 먼 거대한 건물들이 주로 있어 미리 약속하고 검열을 받고 들어가는 곳들이라 도시민의 흐름이 끊기는 역기능을 하고 있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연변은 극장, 카페, 자동차 매장, 호텔, 음식점, 패션 매점 등으로 시민들이 쉽게 사용하는 건물들로 형성되어 있다. 이점에서 우리 광화문 거리와 확연히 대조된다.

 

지금 조성된 광화문 거리와 광장은 세종문화회관을 제외하고는 연변의 관청기능과 별로 관계가 없다. 또 은행나무를 뽑아내고 무슨 박쥐 날개모양의 파라솔을 설치한 것을 보고 분개하는 시민들이 많다. 도시 미학이 있는 유능한 디자이너들이 공공 공간의 조형물에 대한 좋은 안들을 분명히 냈을텐데 ⋯

 

김대호: 오 시장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볼거리를 만든다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은데?

 

곽영훈: 뉴욕, 파리, 로마 등 관광객이 많이 찾는 대도시를 가보라. 관광객에게만 보여주기 위해 만든 시설이 어디에 있는가? 그 도시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편리하고 즐기게 하기 위한 시설뿐이다. 그런 시설들이 그 도시의 명물이기에 관광객도 보러오고, 같이 이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케이블카 같은 시설은 관광을 위한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이탈리아 나폴리 에는 산위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관광객용이 아니라 나폴리 시의 산동네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이 도시를 찾는 관광객들은 도시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 이 케이블카를 재미있게 이용한다.

 

홍콩의 산위로 가는 철길도 산 위에 사는 시민들을 위한 것이고 관광객도 함께 즐기는 것이다. 서울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무관하게 관광시설을 별도로 외국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만드는 것은 기본적으로 넌센스다. 서울시민들의 일상생활을 위한 시설을 잘 만들면 관광객이 저절로 보러, 체험하러 오는 것이다.

 

도시를 쾌적하게 잘 만들고 오래가게하면 문명도 꽃피게 된다. 무슨 철학을 가지고 지금 서울시에 꼭해야 될 일이 무슨 개념으로 출발해야 되는지 분명해야 한다. 장난이 아니다.

 

김대호: 광화문 광장을 제대로 만들려면 지하차도를 만들어 차를 지하로 넣어야 할 것 같은데…..가능할까? 5호선이 교보문고 앞을 지나가고, 3호선이 광화문 앞을 지나가는데 ⋯

 

곽영훈: 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가능하게 해야 한다. 처음부터 입체적으로 보고 도시 기본계획을 하지 않아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광화문광장의 일부 구간이나마 지하차도를 만들 공간은 있다고 본다. 세종문화회관 옆 차도는 지하로 보내고 생겨난 지표면을 광화문광장과 하나로 연접시키도록 처리해야 한다. 구상만 잘하면 광화문 광장과 보도와의 안전한 연결성이나 보행자들의 이용 편의도가 훨씬 높아지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명실상부한 시민광장이 생길 것이다. 워싱턴의 펜실베니아 애브뉴처럼, 의전 차들의 안전통행 문제가 있어 지하계획을 무산시킨 경우도 있지만 광화문의 경우는 가끔 있을 수 있는 의전 차들에 한해서 지하 차도가 아니라 광장의 일부분을 잠시 거치도록 하면 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것 없다.

 

서울광장에 대하여

 

김대호: 서울광장은 2가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애초 당선작인 서현 교수의 안을 뭉개어) 잔디광장으로 조성한 것이다. 이 때문에 잔디 보호를 명목으로 이를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는 관리자=서울시장의 광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바로 옆 덕수궁과의 연결성이다. 굳이 덕수궁과 서울광장이 차단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곽영훈: 지금의 서울광장의 모습은 과거 자동차 통로로 되어 있던 것을 고쳐서 그래도 다행인 셈이다. 오랜 숙원이었는데 어렵게 해낸 것에 먼저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런데 시장이 광장을 쓸 수 있게 했다가, 못쓰게 했다가 한다면 공공 공간의 본래 취지를 어긋나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덕수궁 돌담은 여러 번 헐렸다 다시 축조했다를 반복했는데 서울광장과 시각적인 연결을 꾀하고자 했던 사람들과 조용하게 옛 모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 간에 의견이 아직도 분분하기 때문이었다. 덕수궁 내로 시각적인 열림과 닫힘의 문제보다는 질문한 바대로 덕수궁 담 옆의 보행도로와 어렵게 이루어 논 서울광장을, 광화문광장과 세종문화회관이 서로 넓은 차도로 차단되지 말아야 하듯이, 연결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생각이다.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 응원단들이 모였을 때를 보면 그때 이미 연결되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지 쉽게 알지 않겠는가?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김대호: 박사님의 구상은 동대문운동장이나 야구장을 보존하자는 것이었다고 알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이었나?

 

곽영훈: 운동장과 야구장을 전혀 손대지 말고 그대로 두자는 얘기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구자춘 시장 때부터 진행되어온 성곽복원이야말로 이 번 기회에 동대문 구간에 꼭 복원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성곽을 복원하려면 운동장과 야구장을 부분적으로 허물어 낼 수밖에 없다. 다 알다시피 로마에 가면 콜로세움이 부분이라도 기념비적으로 잘 존치되어 있는 것처럼 될 수 있지 않겠나? 성곽을 연결하는 것이 우선적이라 보았고 그래서 야구장과 축구장의 중요한 부분을 어떻게든지 남겨 보존하자는 제안을 했던 것이다. 야구협회와 축구협회도 그런 정도라도 역사를 남기자는 뜻에 동의했었고 ⋯ 제1차 경‧평 축구대회도 있었던 서울운동장이, 그 역사적 흔적이 남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도시행정과 결정은 관계된 시민과 조직들의 생각 있는 분들과 대화를 해서 합의된 모습으로 결과가 나타나야 한다.

 

또한 인근에 이순신 장군이 말 타고 훈련하던 사적도 있다고 하므로 정확히 찾아내 복원하는 것이 보행이나 녹지네트워크를 전 시가지에 확대해 나간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이다. 그리고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명동까지도 보행전용도로를 연결하는 구상도 있었는데 지금 계획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떤 건축가의 말로 종합해보면 디자인 수도 건물이라고 운동장을 모두 허물어 버리고 지금같이 국적 불명의 비싼 건축으로 새롭게 짓는 일을 ‘터무니’ 없는 짓이라고 하더라. 시민 세금 낭비하고 운동장의 역사적 흔적이 영원히 사라지고, 나중에 또 허물 수 있게 지으면 되겠는가? 그래서 도시행정은 공익성의 승화에서만 정당성을 찾을 수 있고 유난히 윤리의식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김대호: 내 느낌에 오세훈은 20세기 서울의 역사는 역사로 취급하지 않는 것 같다. 동대문운동장과 야구장은 20세기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자, 40대 이상인 세대에게는 청춘의 추억의 장소이다. 일본은 1924년 고시엔(甲子園)구장을 만들었는데 기본 틀을 바꾸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 고시엔구장은(일본 전역 4,119개 고교 야구팀 가운데 각 지역의 49개 우승팀만이 고시엔의 흙을 밟을 수 있기에) 일본 고교생들의 꿈의 장소라고 한다. 한국의 20세기는 선진국의 200~300년을 압축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은 근대문명의 유입 통로이자, 식민통치-좌우갈등-분단, 산업화, 민주화의 진원지다. 이런 역사의 현장들을 애정을 가지고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용산공원

 

김대호: (용산공원 관련 기본 설계가 벽면에 붙어 있어서) 용산 공원 관련 박사님의 구상을 자세히 들어 보고 싶다.

 

곽영훈: 1970년대 원래 서울 녹지와 공원의 구상은 동서 한강녹지축과 더불어 남북 산악녹지축을 열십자로 만드는 것이 기본 골격이었다. 그래서 남산과 용산공원을 연결해야 하는데 해방촌이 있기 때문에 진지하게 합의를 보아야 할 과제가 있었다. 해방촌 사람들에게는 현재 정든 위치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러나 노력해서 그 보다 더 좋은 지역으로 인정받고 합의해줄 대체 부지의 대안들을 마련해 주는 시도가 필요하다. 도시계획에서 시민참여는 마땅히 있어야 하고, 도시 재생사업을 할 때 원주민이 억울하게 진행되는 것은 계획분야의 존재가치가 없다는 것이므로 절대 있어서는 않된다.

 

어쨌든 용산부지가 일부 팔려나갈 수 있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그 지역의 진영 의원과 여러 차례 협의를 거쳐 한 평의 땅도 팔지 못하게 입법화된 것은 다행이다. 용산과 남산을 북악산과 관악산으로 남북녹지축이 형성되고 동서를 한강의 수변녹지축이 연결되는 구상이 이 도면에서 볼 수 있다. 도면에서 보듯이 이 열십자의 녹지축은 사실상 먼 훗날 내사산과 외사산으로까지 모두 연결되도록 계획되어 있어 언제고 그렇게 하므로서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도시 환경조경의 사례를 이루어내기를 소망한다.

 

 

 

 

 

 

 

노들섬과 주변

 

김대호: 서울의 상징이 한강이기에, 노들섬에 멋진 건물을 짓고, 접근성도 좋게 만들면 굉장한 명물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제 머리로는 접근성을 어떻게 좋게 할지 상상이 안 된다. 북으로는 강변북로, 남으로는 올림픽대로와 노들길이 차단하고, 전철역이나 버스정류장을 만들기에는 좀 좁다. 게다가 제1한강교가 노들섬을 두 동강내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노들섬에 오페라 하우스를 짓는다면 이건 광화문광장처럼 또 하나의 보기만 좋은 조각품 비슷한 것이 될텐데⋯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곽영훈: 무엇보다도 노들섬 디자인은 한강변 용산 지역과 흑석동 재개발과 같이 처리해야 접근성도 그렇고 걸작품이 태어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88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88도로와 강변북로를 입체적으로 처리하도록 했었는데 많은 시간을 놓쳐 그냥 지금처럼 양안이 모두 접근성이 완전히 봉쇄된 상태로 건설되었다. 두 동강 난 노들섬은 다시 붙여 원래 모습을 찾아 놓은 자리에, 세계 어느 도시에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시대의 가장 기념비적으로, 의미 있는 걸작품을 꼭 만들어야 한다. 철교가 거창한 수직요소로 되어있어 완전히 없애는 대안부터 시작해서 전혀 새로운 구상을 해내야 한다.

 

이렇게 주옥같은 노들섬에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처럼 또 터무니없는 짓을 하면 가만히 두는 것보다 죄를 후손들에게 크게 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건축건설 기술이 세계에서 으뜸가게 성장했기 때문에, 파리의 에펠탑,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런던의 의사당을 능가하는 건축안이 만들어진다면, 멋지게 건설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단지 하드웨어와 이미지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동북아의 중심, 글로벌 도시로서의 문명 컨텐츠를 가지고 창안을 해서 서울시민들의 영혼의 빛이 천년 이상 가게 했으면 좋겠다.

 

김대호: 한강과 더불어 서울의 매력은 내사산과 야트막한 야산, 언덕이다. 자전거를 타고 반포와 여의도를 오가다 보면 흑석동(명수대 아파트) 주변은 꽤 수려할 수도 있는 절벽이 이어지는데 이것을 올림픽대로가 다 가려버린 것 같다. 꼭 이렇게 했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곽영훈: 물론 그렇지 않다. 흑석동 주변 한강변은 노들강변이라고 부르는데 올림픽대로를 놓고, 대단위 명수대 아파트를 지으면서 매력 있는 아까운 풍광을 망쳐버렸다. 과거 올림픽대로 기본계획을 할 때는 흑석동 길을 지하와 지표를 입체적으로 처리해서 지역간 간선도로와 일반도로를 구분 시켰었다. 그 목적은 노들강변을 살리는 것이었는데, 공사기간, 비용, 미관에 대한 시간 부족과 미학 부족으로 지금처럼 되어 버렸다.

 

원래 계획구상대로 설계를 발전시켰으면 지금 명수대 아파트 단지와 인근 언덕부지는 한강변을 내다보는 유일한 화랑과 음악실을 비롯한 예술인들의 아기자기한 공간이 생겨 세계적 명소가 될 수 있었다. 파리의 언덕은 오로지 몽마르뜨 언덕 하나이고 그것도 쎄느강과는 멀리 있다. 이 하나 가지고 구경 가느라고 난리인데 ⋯ 서울은 그보다 훨씬 아름다운 자연 조건이 수백 곳은 되는데 거의 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누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나? 철학의 빈곤이 이렇게 무서운 차이를 가져온다.

 

서울의 5대 흉물

 

김대호: 과거 서울 도시계획의 5대 흉물로 널리 회자되는 것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3.1고가도로, 세운상가, 남산 외인아파트, 여의도광장, 국회의사당(불확실함) 이는 대체로 천박한 과시욕이 느껴진다. 세운상가는 그에 해당되는지 모르지만, 3.1고가도로, 남산 외인아파트, 여의도광장은 확실히 천박한 과시욕의 산물이 맞는 것 같다. 도시 디자인은 그 시대 돈과 권력을 쥔 사람들의 심리랄까 영혼이 드러난다는 느낌이다. 요즈음 지어지는 빽빽하게 지은 고층 아파트를 볼 때, 그리고 뉴타운,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광화문광장,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차원에서 지어진 건축물을 볼 때 오시장의 천박한 과시욕, 낮은 미적 감각과 건설 회사들의 앞뒤 가리지 않는 이윤 추구 욕망이 물씬 풍겨나온다. 몇 십년 후에는 또 남산 외인아파트나 여의도광장처럼 흉물로 되어 철거되지 않을까 한다.

 

곽영훈: 서울에 지어진 많은 고층 아파트들을 닭장이나 비둘기 집에 비유하며 계획된(?) 막개발이라고 부르는 전문가들이 최근에 들어 부쩍 많아졌다. 공산주의 나라가 몰락하기 이전에 건설해놓은 흉물스러운 도시주택건설을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아무데나 빽빽하게 고층 아파트를 마구 짓고 있는데 방위, 에너지, 환경은 물론이고, 사회계층의 적절한 혼합이나 여러 가족이 같이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봐도 도시 공동생활에 대한 본질적인 욕구에 반한다. 이런 것들을 건설해서 과시욕이라면 코미디이고 인간 경시의 산물로 보이는데 가까운 미래에 철거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물론 역세권 같은 곳에는 고밀도 고층도 필요 하겠지만 그로부터 먼 곳에는 기본적으로는 산세와 지형도 감안해서 어울리게 지어야 한다. 여러 세대(노인세대, 1인 가구, 2인 가구 포함)가 같이 살아 가족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주택양식이 개발되어야하고 불필요한 복지제도에만 의지하게 되거나 여러 계층이 비슷한 평수에서 살아 同而不和처럼 천박하게 경쟁하지 않도록 계획해야 할 것이다. 자주 철거해야 되는 식으로 도시가 만들어지면 문화가 생성될 수 있는 시간까지 모두 잃어버린다.

 

한강 하구둑 개방

 

김대호: 한강 하구둑(신곡보)을 개방하자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임진강과 만나는 교동도 등과 교통을 터자고 한다. 그래도 될까?

 

곽영훈: 신곡보는 트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 같다. 바닷물이 제법 많이 들어오니까 ⋯ 한강종합계획을 구상했을 때 한강은 갈수기에 온통 바닥이 드러나고 마치 작은 개천 같았기 때문에 서울 중심부에 호반화를 위해 행주산성 근처에 보를 제안하였던 것이다. 파리, 테임즈, 캔버라, 비쉬, 보스턴 등 도시중심의 강들은 모두 넓은 수면을 확보하기 위해하구에 보를 만들었다.

 

김대호: 오 시장은 용산에 5천톤급 국제 크루즈선이 들어오게 하여 그 배로 중국을 가겠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곽영훈: 용산과 여의도 근방에서 어디를 통과해서 황해로 운항이 되는지 좀 더 내용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신곡보가 있고 교하리 쪽으로 해서 황해로 간다면 가능하겠나? 굴포천 운하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잘 밝혀지지 않아 혹시 그 곳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몇 노트로 황해를 건너 가나?

 

김대호: 일단 바다로 나가면 어느 정도 속도를 내겠지만, 강과 운하에서는 결코 빠른 속도를 낼 수가 없다. 한 전문가의 예측으로는 용산에서 경인운하를 거쳐서 인천까지 가는데 5시간 가량 걸린다고 한다. 그리고 관광용 크루즈선은 각종 편의시설 때문에 10만톤 내외이다. 황해를 오가는 국제 여객선은 가장 작은 것이 1만 6천톤, 큰 것은 3만톤 가까운 것으로 알고 있다. 용산에 들어오는 5천톤급 크루즈선은 강과 운하를 할행하기에는 너무 크고, 황해를 오가기에는 너무 작지 않나?

 

곽영훈: 인천항에서 서울까지 열차로 오면 1시간이 안되는데, 무엇하러 배를 타고 인천을 가나?

 

김대호: 세종시 문제로 시끄럽다. 행정기관의 분리로 인한 비효율이 세종시 수정의 주요 논거다. 박사님 생각을 듣고 싶다.

 

곽영훈: 임시행정수도 도시설계를 했고 5공 초에도 계룡대와 둔산 정부청사지구를 설계한 사람으로 지금 이 세종시 현상을 보면 간단치 않아, 다른 기회를 가지고 별도로 이야기 하는 것이 좋겠다. 도시는 문명을 담는 그릇이다. 그릇 자체도 문명이고. 그래서 말을 하면 길어진다. 무슨 문명을 담아 세종시를 성장 발전시키려고 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무슨 문명을 융성시키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도시설계 도면이 너무 짧은 시간에 그려내져서 그런지 문명이야기와 우리 국민에게 무슨 희망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하기에는 자료가 충분치 않다. 무엇보다 본질을 떠난 정치 갈등으로 국론분열과 국민의 세금이 낭비될까봐 걱정된다. –끝-



영훈 박사는 2008년 가을, 사회디자인연구소 포럼에 오셔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 인연으로 나는 도시 디자인이나 국토 디자인 관련 의문 사항이 있으면 종종 전화로 여쭈어 본다.
1943년생인 곽영훈 박사는 경기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미하여 MIT공대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하버드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그는 이미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서울의 대동맥이라고 할 수 있는 88 올림픽대로 기본계획(설계), 한강종합개발, 지금의 서울지하철 2호선, 3호선, 9호선 기본계획을 했다. KTX도 그의 정책 작품이다. 대학로와 88 서울올림픽공원 마스터플랜을 짰고, 대전 계룡대 종합계획과 대전 EXPO 마스터플랜을, 여수 여천 신도시 계획, 제주도 종합개발계획 및 관광개발 계획을 했고 지금은 제주대학교의 석좌교수이다. 북한쪽에서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두만강개발계획과 백두산 환경보존계획을, 해외에서는 나이지리아 新수도 아부자 계획, 이집트 시나이반도 유역도시계획, 알제리 신도시 시디 압둘라 마스터플랜, 네팔 룸비니 평화시 구상을 했다.

2012년 여수 EXPO 여수시 유치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비단길세계연맹 Silk Road Global Alliance 의장이자 [사람과 환경] 그룹의 회장이다. 1962년에는 케네디 대통령과 미국 적십자사의 초청을 받고 한국대표 단장으로 반기문 현 유엔사무총장을 대동하였으며 미국을 함께 방문한 인연으로 지금껏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꼬마 민주당을 같이 했고(당시 국가경영기획단장), 1997년에 꼬마 민주당이 양분될 때 이부영, 제정구 등과 함께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1998년 4월 20일자‘시민의 신문’에는 노무현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와 나란히 서울시장 출마 인터뷰가 실려 있다. 물론 둘 다 비주류였기에 본선에는 나가지 못했다. 노무현 부총재는 고건에게, 곽영훈 박사는 최병렬에게 밀려서 주저앉았다. (관련 기사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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