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제가 지역차별문제를 언급하면서 동시에 이에 대한 좀 특별한 대책까지 제시한 바 있으나, 본문의 설득력 부족과 일부 유저분들의 과잉반응으로 더이상 발전적인 토론으로 이어지진 못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다만 msye neg님을 비롯한, 논객님들의 보석같은 관련 글들을 이끌어 낸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 주제가 좀더 심도있게 진행되지 못한 것은 주제 자체가 태생적으로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성적 판단이 앞설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었고 또 아크로 유저분들의 과잉반응을 확인한 이상 더이상 진행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봉합한 느낌은 지울 수 없으나, 진실로 지역차별 해결에 대한 관심과 학문적 이해가 있으신 분들은 이 과정에서 제시된 주장들을 동기로 삼아 보다 심도있는 연구의 기회를 삼아 주실것을 당부드려 봅니다.

이 연구의 범위는 단순한 지역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의 본문에서도 언급하였듯 지방분권화 또는 약한 연방제 등에 대한 연구와도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단 전술한 바와 같은 과정을 거쳐 지역차별에 대한 해결의 근원을 찾는 과정에서 필히 마주칠 수 밖에 없는 문제가 또하나 있는데, 바로 이것이 바로 인종차별문제입니다.
기본적으로 지역차별과 인종차별은 별개의 개념일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차별을 반대하는 것이 바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일 것이며, 적어도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상 이설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역차별을 반대한다면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당연히 반대해야 옳습니다.

그러나 많은 지역차별 반대론자가 세계적 보편적 관점에서의 인종차별이 아닌 국내에 한정된 상황과 관련한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기도합니다.
국내의 일부 극우성향을 가진 사이트에서는 극악한 지역차별적 발언을 유머처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인종차별에 대해선 반대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확실한 모순입니다.
또한 일부 좌파성향 또는 중도성향을 가진 사이트에서는 지역차별에 대해선 단호히 반대를 하면서도 반대로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알고 이에 극악한 발언도 서슴치 않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언급하였으나 지역차별과 인종차별은 결코 다른 개념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가지의 개념에 대해 같은 공간 같은 집단 내에서도 서로 다른 자세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전 극우성향의 사이트에서 지역차별 발언은 당연시 하면서 인종차별에 대해선 자제하자고 주장하는 모습에 대해서는 이들의 성향이 극우이기에 특별히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나마 인종차별에 대해서만은 나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선은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좌파성향 또는 중도성향의 사이트에서 지역차별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도 인종차별을 당연시 하는 모습에서는 보다 심각한 모순을 느낍니다. 일부분이라도 긍정적으로 봐줄 수 있는 구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명백한 자기 부정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런 모순된 현상은 특정한 사이트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며 국내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현상입니다.
전 이런 사이트가 어디이며 또 누가 어떤 집단이 이런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는가를 고발하고자 이 본문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특히 스스로 진보성향이라 자부하시는 분이라면 더더욱 저의 비판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 글을 쓰는 저 자신조차 이에 포함될 수도 있습니다.

결론을 내리기 전에 국내의 진보적 상황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다수의 정치적 성향은 진보적 성향에 가깝습니다. 실제 국내 정치구조를 봐도 분류상 좌파 우파 또는 보수 진보라고 구분하고는 있으나, 이론이 아닌 실제 생활에서는, 미국 등의 정통적 우파성향의 국가에 비해 좌우 공히 상당한 수준으로 좌편향 돼 있다 할 것입니다.
중국의 경우, 비록 유명무실해지긴 하였으나 그래도 아직은 공산주의 체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데, 중국의 한 고위인사가 노무현집권시절 한국을 둘러보고 나서 한국은 자신의 나라인 공산주의 중국보다 더 사회주의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말이 쉽게 믿어지지 않는 분들을 위해 제가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드리자면, 중국 베이징에 사는 주민은 타지역 주민에 비해 오로지 주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고시 지급되는 보험료가 다릅니다. 지역차별현상은 단순히 경제적 측면 뿐 아니라 거리에서도 발견되는데 한 베이징 시민이 외지에서 전입해온 주민에게 딱 이 한마디면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수도 있습니다. "나 베이징 시민이야."
만일 이 주장에 승복하지 않아 큰싸움이라도 벌어진다면 경찰이 출동하고 났을 때 외지인은 비로소 현실을 실감하게 될 것이며, 이런 원리는 모든 행정절차에 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의 경우는 굳이 예를 들지않아도 될 것으로 보이므로 그냥 통과하겠습니다.

이들 나라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진보적 가치가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이는 대부분의 야권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우파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미 신성불가침한 가치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일전에 다른 글에서 블런델-고스초크 모델에 의거해서 그려진 자료를 보여드리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대부분의 정치적 성향은 사민주의에 가깝다고 말씀드린 적도 있었습니다.

차기 대권주자로서 안철수도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하였고, 지금 집권 중인 현정부 조차 비록 우파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 근본은 상당한 부분 좌파적 이념을 고려하여 정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상징적으로 다문화정책을 들 수 있는데, 이 다문화정책은 외국 이주민에 대해 각종 혜택을 주는 것은 기본 골자로 하고 있고 구체적으로 모두 적시할 필요는 없겠으나 방대한 분야에 걸쳐 많은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다문화정책과 밀접한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정책 또한 우리의 진보적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부분에서 진보의 가치에 대한 궁극적인 의문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거주하는 외국인 수는 약 150만명 수준이고 이는 전체 약 3%에 해당하지만, 이 가운데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약 30만명이며 한국 국적이 아닌 외국인은 약 110만명~120만명 수준인데, 문제는 이 인구는 단순한 인구가 아니라 거의 노동력을 가진 인구란 점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야할 진보적 가치에 의해 다문화정책 또는 외국인노동자유입정책 등이 시행되고 있는데, 정작 이 정책으로 가장 보호받아야할 위치에 있는 국내의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력 공급과잉으로 임금이 현저하게 낮게 책정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 하지 않습니까?
독자분들도 위와 같은 외국 노동자의 유입으로 우리의 일자리가 빼앗기고 있다는 하소연을 한번쯤은 들어본 적 있으실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최저 임금은 현재 시간당 5000원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인데, 각 언론에 소개되는 내용을 보면 이 금액으론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또하나 우리가 진보적 가치에 의해 보호해야할 대상인 중소기업은 이 임금수준으론 경영이 어렵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도 꾸준히 외국인 노동자는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으며,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노동자 유입 외 다문화정책에 까지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입이 벌어질 정도로 많은 지원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같은 진보적 가치의 충돌에 대해서 대기업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기업에 속한 노동자들까지 스스로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비정규적 상황을 예로 들지 않아도 바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죠.

이쯤에서 우리의 진보적 가치는 어디까지 적용돼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가진 빵을 다 내주고도 행복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우린 부처님이나 법정스님처럼 극도의 절식을 해가며 살 수 있도록 비범하게 태어나지도 않은 이상 내 손에 든 빵을 얼마나 떼어서 진보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외국인과 더불어 함께 지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변명같지만, 전 결론적으로 "진보의 가치는 인류가 추구해야할 보편적 가치이긴 하나 우리의 현실을 무시할 정도로 만능의 가치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는 결국 행복추구론자로서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 가치추구란 결국 위선일 수도 있다는 의문을 지울수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안철수가 진보적 자유주의 기반한 정치를 실현하겠다고 합니다. 이 주장은 정치인으로서 안철수가 처음은 아니죠. 이미 유시민도 그같은 주장을 한 바 있습니다. 그만큼 미래 정치를 준비하는 정치인들도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진보의 가치'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과연 얼마나 적절하게 자유주의와 조화롭게 진행하느냐가 진정한 관건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미래의 정치는 전부 아니면 전무인 생각은 버려야 할것으로 봅니다.
더이상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선동적 정치는 필요없습니다. 바둑에서 미세한 반집을 두고 다투고 또 이것을 궁극적 승리의 길로 생각하는 프로들의 바둑세계처럼 우리의 정치도 미세한 부분으로서 향방이 정해지고 우위를 다투는 시대에 접하였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겨레 신문, 고명섭 오피니언부장이 주장 중 한 구절을 소개해드리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최장집 교수가 제안한 ‘진보적 자유주의’는 이 정치적 자유주의를 한 축으로 삼고 있다. 민주주의를 키우려면 자유주의 가치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 축은 경제 영역에서 나타난다. 바로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지점에 진보적 자유주의가 서 있는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진보’의 강도이다. 진보에 얼마나 힘이 실리느냐에 따라 자유주의는 중도에 머무를 수도 있고 사회민주주의로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제 글에 대해 오독을 즐기시는 분들을 위한 한줄 요약:

"진보의 가치를 따지기 전에 당신 손에 든 빵 부터 이웃(외국인 이주자 또는 노동자 포함)에게 나눠줄 각오가 돼 있는가부터 먼저 물어보라."

ps. 
제가 이런류의 글을 쓸때마다 구체적인 자료(이 글의 경우, 다문화정책의 실태 또는 외국인노동자의 유입 상황, 노동현장의 상황 등에 대한 각 자료)의 제시는 생략하고 있는데, 이는 가급적 배가 산으로 가는 현상 즉, 본 토론의 목적과는 다른, 자료입증 논쟁으로 발전하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 뻔하기에, 내용이 부실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내용을 단순화시켜 제 입장만을 밝히고 있습니다.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