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 교과서를 보면 정치를 "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정의합니다. 호남이 자원 배분에서의 소외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에 매달린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무슨 총칼을 든것도 아니고, 정당 만들고 투표해서 정치 과정에 영향력을 끼치고자 한건데, 그게 무슨 잘못이라는 논리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전라도도 대한민국의 구성원이고, 자원 배분에서 차별을 받았다면 거기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수 있는 겁니다. 세종시 원안 수정에 반대하는 충청도민의 목소리를 이기주의라고 욕하는게 의미가 있습니까? 제한된 자원을 좀더 많이 배분 받고자 하는 욕망은 직능, 계급, 지역등 이익을 공유하는 인간 집단에는 언제나 존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욕구가 공정한 통로와 원칙을 통해 해소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불공정한 방식으로 국가의 자원을 배분받았던 영남 패권이, 호남이 평화로운 정치적 방법으로 파이를 추구하는걸 보고, 정치적 수단에 호소하지 말고 순수하게 자력 갱생 하라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개소리입니까? 정치적인 차원을 넘어 "불의한" 정치적 방법으로 패권을 독식했던 자들이, 겨우 피해와 손해를 메꾸고자 하는 차원에서 평화적 방법으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을 비판한다? 저는 이 부분에 이르면 정말이지 이 "영남 패권주의자"들과 같은 국민이라는게 역겨울 지경입니다. (의식있는 영남인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윤리와 도덕이 이렇게까지 전도될수가 있는 겁니까?

영남 패권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정치적"방법으로  배정받은 막대한 시초 자본을 바탕으로 민주화 이후의 "자유시장"에서 승승장구 한것입니다. 애초에 정치가 개입하지 않고 무규칙 격투를 했으면 지금같은 지역간 불균형이 있었겠습니까? 서울대 입학생, 고시합격생 비율을 보면 호남이 인구수에 비해 비율이 높다면서요? 순수한 유전적 개인 능력으로 봤을때 호남이 무슨 미국 흑인이나 히스패닉 같이 놀기 좋아하고 공부 안하는 그런 국민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지요. 대한민국은 "역 어퍼머티브 액션"이 작동하는 희한한 나라라는거 아닙니까.

그래서 정말 순수한 자력갱생이라면 오히려 호남은 불리할게 없습니다. 문제는 대한민국에서 "판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고급 일자리에서 호남이 불리한 위치에 놓여있다는 겁니다. 영남이 형성한 배타적 인적 커넥션과 호남 편견은 호남이 시장 경제에서 정당하게 경쟁하는 것을 방해하지요. 자력갱생론은 과거의 자원 배분이라는 문제를 제쳐두고 순수하게 시장에서 경쟁하자는 얘기인데, 그 자력갱생론이 온전하기 위해서는 시장 경쟁에서 호남이 당하는 차별과 영남의 배타적 인적 커넥션에 대한 비판이 있어야지요. 그런데 지금 말씨가 말하는 자력갱생론이 그겁니까? 찍소리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햇볕이 들거라는 근거없는 낙관론(?) 이죠.

왜 자력갱생론이 허구인지 생각해 봅시다. 첫째, 시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일단 영남 자본은 시장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시장 경쟁이 자본 형성과정을 캐묻는것도 아니고, 과거에 정치적 방법으로 자원이 배분되었던 말던, 일단 더 크고 힘쎈놈이 이기게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호남이 지면 그게 정당한 시장 경쟁에 따른 우승열패의 결과입니까? .

소위 말하는 "인맥"이라는 부분을 봅시다.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사회적 커넥션과 자본을 형성하는게 무슨 불법이나 의도된 차별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게 동향이라는 기준으로 헤쳐모여가 진행되면 호남은 결과적으로 배제되곤 하죠.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크게 영향력을 발휘하는건 그런 보이지 않는 무선의 연결망이라는건 공공연한 사실아닙니까?

마지막으로 제일 심각한건, 개인에 대한 차별이 있다는 겁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고시에 붙은 서울대 동기생인데, 누구는 재경부에서 승승장구해 차관, 장관까지 올라가고, 누구는 한미한 변방에서 돌아다닐수 밖에 없는것,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대한민국 최대의 모 기업에 들어가기가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 대기업에 들어가봤자 높은 자리에는 올라갈수 없다는 것, 이런 개인들(특히 고급 인력)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누적되어 집단화되고, 사회화 되고, 세대간에 재생산되는 것입니다. 개인만 놓고 보면 그렇게 결정적인 차별은 아니겠지만, 이런 차별이 수십만, 수백만에게 적용된다고 생각해 본다면, 그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시장"과 "인맥"이라는 부분까지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 세트된 일종의 경로 의존성의 결과입니다. 이 과정에 참여하는 개인들이 딱히 호남 차별의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호남이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호남의 불리함이 이 수준까지만 되도 자력갱생론을 받아들일수 있습니다.

문제는 선진국의 어퍼머티브 액션과는 달리 사회적 약자인 호남에게 더 불리한 잣대를 들이대는 한국의 역 어퍼머티브 액션이 존재하고, 이것이 호남이 자력갱생이라는 허울좋은 구호에 부응할수 없는 이유인 것입니다. 역 어퍼머티브 액션만 해소되면 호남은 얼마던지 자력갱생할수 있습니다. 영남 재벌이 난리를 치던, 자기들끼리 끼리끼리 모이던 말던,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 결과물에 대해서 정당하게 평가만 해주면, 괜찮다는 얘기입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자원 배분에서 손해 받은것은 따지지 않을테니, 지금 당장의 경쟁에서 불이익만 안당하도록 배려해도 호남은 감지덕지 입니다. 근데 지금 그렇습니까?

게다가 지금도 영남 패권이 정치적 방법으로 영남 패권을 살찌우고 살가죽밖에 안남은 호남의 피를 빨아먹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수단에 호소하지 말고 자력갱생하라? 정말 내가 대한민국에 태어난것, 호남인이라는것이, 슬퍼지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