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인간 성차의 진화 심리학에 대해 궁금한 사람은 David C. Geary의 『Male, Female: The Evolution of Human Sex Differences(2009, 2판)』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David M. Buss의 『욕망의 진화(The Evolution Of Desire: Strategies of Human Mating, 2003, 2판)』에서는 성, 사랑, 질투와 관련된 성차를 깊이 다룬다. Simon Baron-cohen의 『그 남자의 뇌, 그 여자의 뇌: 뇌과학과 심리 실험으로 알아보는 남녀의 근본적 차이(The Essential Difference: Male And Female Brains And The Truth About Autism, 2003)』에서는 주로 인지 능력과 관련된 성차를 다루는 것 같다.

 

나중에 『Male, Female』을 다 읽은 다음에 이 주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써 볼 생각이다. 이 글은 그런 글을 위한 예비 작업이다.

 

 

 

 

 

부모 투자
 

포유류의 경우 암컷이 상당히 긴 기간 동안 임신과 수유를 도맡아 한다. 분유와 이유식이 있는 현대인의 경우 남자가 “수유”를 할 수도 있지만 과거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보통 암컷이 수컷보다 자식을 위해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게 마련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흔히 쓰는 투자(investment)라는 개념을 빌어서 이야기하자면 암컷이 수컷보다 자식에게 더 많이 투자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식 사랑에 투자라는 개념을 쓰는 것에 기분이 상할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에서 하는 투자와 자식을 사랑해서 하는 자식 돌보기에는 중요한 유사성이 있다. 사람들이 기업, 주식, 부동산 등에 투자를 해서 얻으려고 하는 것은 이윤(profit)이다(한국에서는 부동산 투자로 얻는 이득을 보통 이윤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도 될 것이다). 진화 생물학자는 동물이 자식에게 투자를 하는 이유는 포괄 적응도(inclusive fitness) 또는 유전자 복제라는 이득을 얻기 위해서라고 본다. 동물이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목적을 염두에 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근접 메커니즘(proximate mechanism)의 수준에서 그런 목적이 있을 필요는 없으며 실제로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궁극 원인(ultimate cause) 즉 자연 선택이라는 진화 과정에서는 그런 ‘목적’이 개입되는 것이다.

 

부모 투자(parental investment)에 커다란 차이가 생기면 그 자체가 중요한 선택압(selection pressure)이 된다. 포유류의 경우 대체로 암컷이 수컷보다 더 많이 투자한다. 특히 최소 부모 투자의 경우 그 차이가 극단적이다. 암컷은 최소한 몇 개월 동안 임신을 하고 또 오랜 기간 동안 수유를 해야 자식이 번식할 때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수컷의 경우 정자만 달랑 제공해도 통할 때가 많다.

 

 

 

 

 

짝짓기에 쏟는 노력
 

포유류의 경우 임신과 수유를 암컷이 도맡아 한다. 따라서 수컷이 여러 암컷과 성교를 해서 얻는 것에 비해 암컷이 여러 수컷과 성교를 해서 얻는 것은 별로 없다. 만약 수컷이 며칠 동안 100 명의 암컷과 성교를 한다면 최대 100 명의 암컷을 임신시킬 수 있다. 반면 암컷이 며칠 동안 100 명의 수컷과 성교를 한다고 해서 100 배 더 많은 자식을 낳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암컷이 낳아서 기를 수 있는 자식은 정해져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수컷은 상대적으로 기를 쓰고 최대한 많은 암컷과 성교를 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으며 암컷은 상대적으로 그런 노력을 별로 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만약 성교를 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갈등이 벌어졌을 때 성교를 하고자 하는 쪽은 수컷이고, 하지 않고자 하는 쪽은 암컷일 가능성이 크다고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인간의 경우 성교 여부를 두고 갈등이 벌어지면 보통 남자가 성교를 하자는 쪽이고 여자가 성교를 하지 말자는 쪽이다. 나는 이런 경향에 대한 예외를 본 적이 없다. 부부의 경우 여자 쪽에서는 원하는데 남자가 피곤하다고 피하는 장면이 대중 매체에서 흔히 묘사되는데 대규모 설문 조사를 해 보면 그런 경우는 상대적으로 소수다.

 

이런 경향은 성매매와 강간의 경우에도 나타난다. 성판매자는 대체로 여자고 성구매자는 대체로 남자다. 이것은 남자가 성교를 더 하고 싶어하도록 진화했다는 가설과 부합한다. 남자는 원하고 여자는 원하지 않기 때문에 남자 쪽에서 뭔가를 제공하는 것이다. 데이트할 때에도 보통 남자가 돈을 더 많이 낸다. 아마 성교를 위해 여관을 잡을 때 여관비를 누가 내는지를 따져보면 남자가 내는 비율이 보통 데이트의 경우보다 더 높을 것 같다(이런 연구를 본 적은 없다). 한쪽은 성교를 원하는데 다른 쪽이 거부할 때 쓸 수 있는 전략 중 하나가 강간이다. 보통 남자가 여자를 강간한다. 물론 이 문제에는 근력의 차이, 생식기의 구조라는 또 다른 요소도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상황은 복잡하다. 성매매와 강간의 패턴은 동물계에서도 대체로 비슷하다. 보통 수컷이 성교의 대가로 무언가를 제공하고 보통 수컷이 암컷을 강간한다.

 

 

 

 

 

자식 사랑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남자는 바람을 피움으로써 얻는 것이 여자보다 많다. 따라서 바람 피우기에 더 많은 노력을 쏟도록 진화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자식 돌보기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즉 남자가 여자보다 자식을 덜 사랑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포유류의 경우 또 다른 요인도 작동한다. 암컷은 자신의 자식이 자신의 유전적 자식임을 ‘확신’할 수 있다. 반면 수컷의 경우에는 어떤 암컷 예컨대 자신의 아내의 자식이 자신의 유전적 자식인지 여부를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자신의 유전적 자식인지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수컷이 암컷보다 자식으로 추정되는 동물을 덜 사랑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인간의 경우 아빠의 사랑보다 엄마의 사랑이 더 크다. 나는 이런 경향에 반대되는 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소수의 부부의 경우에는 부정이 모정보다 더 클 수 있지만 해당 문화권 전체의 경향이 그런 경우는 없어 보인다.

 

 

 

 

 

결혼의 여파 – 여자는 무작위적 성교를 꺼리게 된다
 

인간은 결혼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도 최근 만 년 동안에 일어난 문화적 구성물 중 하나라고 주장하지만 온갖 증거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결혼은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으며 따라서 오랜 기간 동안 선택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여기서 결혼은 국가에서 인정하는 과정까지 포함하는 개념이 아니다. 결혼 개념을 다른 식으로 정의해서 갈매기와 같은 조류의 짝짓기 방식까지로 포함되게 할 수 있다. 암컷과 수컷이 어느 정도 성교를 독점하고 힘을 합쳐 자식을 키우는 것을 결혼이라고 정의하면 된다. 암컷은 대체로 남편하고만 성교함으로써 자신의 자식이 남편의 유전적 자식일 가능성을 높인다. 그리고 수컷은 그렇게 해서 태어난 자식을 돌본다.

 

결혼이 있는 종의 경우 혼자 자식을 키우는 암컷에 비해 결혼해서 수컷과 함께 자식을 키우는 암컷이 더 성공할 것이다. 현대 복지 사회에서는 혼자 자식을 키워도 생존률에는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과거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암컷이 아무 수컷하고나 성교를 해서 임신하는 것을 피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러다가는 혼자 자식을 키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암컷은 성교를 하기 전에 수컷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이 유리하다.

 

실제로 인간의 경우 여자는 쉽게 성교에 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판단하면 성교에 응할 가능성이 커진다.

 

 

 

 

 

질투의 양상
 

수컷은 자신의 짝의 자식이 자신의 유전적 자식인지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 현대 사회에서는 유전자 검사를 해서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이것은 백 년도 안 된 기술이다.

 

만약 자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워서 남의 자식을 임신하게 되면 남편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손실을 입는다. 남의 자식을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반면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 하더라도 아내는 자신의 자식이 자신의 유전적 자식임을 ‘확신’할 수 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남자가 여자에 비해 삽입 성교를 했느냐 여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설문 조사나 거짓말 탐지기와 같은 도구를 이용한 실험을 해 보면 남자가 삽입 성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공격성과 경쟁심
 

한 명의 수컷이 여러 명의 암컷을 임신시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수컷끼리의 경쟁이 암컷끼리의 경쟁보다 더 치열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수컷이 정자만 제공하는 짝짓기 체계의 경우 수컷끼리의 경쟁이 가장 심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이 때에는 암컷의 부모 투자와 수컷의 부모 투자 사이의 차이가 극단적이다. 바다 코끼리의 하렘(harem) 체제가 이런 극단에 해당한다. 바다 코끼리의 경우 수컷이 암컷보다 훨씬 크며 서로 치열하게 싸운다. 그리고 싸움에서 이긴 으뜸 수컷(alpha male)이 사실상 모든 암컷을 차지한다. 공작의 경우에도 이런 극단적인 사례지만 수컷 공작은 다른 식으로 경쟁을 벌인다. 그들은 더 예뻐 보임으로써 암컷들에게 선택되려고 한다. 어쨌든 이 경우에도 화려함의 정도라는 형태로 암수 차이가 매우 크게 나타난다.

 

반면 극단적인 일부일처제의 경우에는 암수의 부모 투자에 별 차이가 없다. 이럴 경우 공격성이나 경쟁심의 성차가 별로 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갈매기와 같이 극단적인 일부일처제에 가까운 종의 경우 암수의 크기도 비슷하고 생긴 것도 비슷하고 공격성 정도도 비슷하다.

 

인간은 결혼을 하지만 극단적인 일부일처제와는 거리가 있다. 가끔 바람을 피우기도 하고, 이혼을 하기도 하고, 공식적 일부다처제가 존재하는 경우도 있고, 비공식적 두 집 살림이 있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남녀의 크기 차이와 공격성의 성차가 바다 코끼리보다는 훨씬 적지만 약간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나이의 문제 – 연상 연하
 

인간에게는 폐경이라는 현상이 있다. 여자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더 이상 임신을 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남자의 수정 능력은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남자가 상대적으로 여자의 나이에 집착하도록 설계되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왜냐하면 폐경이 지난 여자와 결혼한 남자는 번식의 관점에서 망하게 되지만 50살이 넘은 남자가 결혼한 여자는 상대적으로 덜 망하기 때문이다.

 

폐경 이전이라 하더라도 여자의 임신, 수유 능력은 뚜렷한 하향 곡선을 그린다. 반면 남자의 경우 50살이 될 때까지 가족 부양 능력이 그런 뚜렷한 하향 곡선을 그리지 않는다. 30세에 이르기까지는 오히려 상향 곡선을 그리는 것 같다. 왜냐하면 20세 이후로 체력은 저하되지만 경험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자의 경우 임신 경험을 많이 한다고 해서 임신을 위한 생리적 능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여자의 입장에서 남편감의 최적 나이는 30세 전후인 반면 남자의 입장에서 아내감의 최적 나이는 20세 전후일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20, 30 대에 결혼하는 쌍의 경우 남자 쪽이 나이가 조금 많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두려움
 

자식의 생존은 아빠보다는 엄마의 생존에 더 의존한다. 현대 복지 사회라는 예외를 무시한다면 아빠 없는 자식보다 엄마 없는 자식이 생존 확률이 떨어진다. 따라서 암컷에게는 생존해야 할 이유가 더 크다.

 

더 많은 암컷과 성교할수록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수컷의 입장에서는 모험을 해야 할 이유가 더 크다. 암컷과 성교하기 위해 다른 수컷과 싸우거나 해서 얻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암컷은 모험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상대적으로 작다.

 

극단적인 경우 수컷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수 많은 암컷과 성교하는 것에 성공한 후에 곧바로 죽어도 뭔가 남길 수 있다. 반면 암컷은 성교 후에 곧바로 죽으면 아무 것도 남길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배 속에 있을 수 있는 자식도 같이 죽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요인을 결합해 보자. 그러면 수컷이 상대적으로 겁이 적도록 설계되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도 남자가 여자에 비해 겁이 없다. 여자는 자신의 자식이 걸렸을 때 빼고는 수컷보다 상대적으로 목숨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한다. 남자끼리 싸울 때에는 주먹을 휘두르는 경우가 많지만 여자끼리 싸울 때에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한다. 예컨대 머리채를 잡는 식이다.

 

 

 

 

 

예쁜 여자만 보면 환장하는 남자
 

상대적으로 남자가 상대의 외모를 더 따지는 것은 인류 보편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동물계에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다. 암수의 화려함의 차이가 심하게 나는 종들 중 절대다수가 수컷 쪽이 더 화려하며 암컷들은 수컷을 품평한다. 이런 면에서 인간은 상당히 예외적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런 예외적인 현상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왜 남자는 예쁜 여자만 보면 환장하는 것일까?」에서 이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2010-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