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어체로 씁니다.

내가 아크로에 가입하게 된 이유는 다른 곳에서는 차마 할 수 없었던 안철수 욕을 실컷 하고 싶어서였다. 아크로를 대나무숲 삼아 안철수 욕을 실컷 했다. 하고나니 어느정도 욕구도 해소되어 속은 시원했다. 그러나 정작 내가 지지했던 문재인은 대선에서 떨어졌고 멘붕으로 한달간 방송도 인터넷도 정치관련뉴스는 철저히 외면했다. 지인과의 만남에서도 정치관련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피했다. 당시 내가 스마트폰으로 하는 게임에 빠지지 않았다면 정말 멘붕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시간은 약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박근혜가 인수위 시절부터 욕을 먹으면서 나는 다시 뉴스를 볼 수 있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문재인을 복기하면서 새삼 김한길이 다시보였다. 김한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친노인 홍익표의 귀태발언을 수습하고 사과한 것도 김한길이었고 문재인으로 인해 민주당이 다시 힘들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문재인을 포용하고 문재인이 끝까지 하지않은 사과를 대신 한 것도 김한길이었다. 그런 김한길이 내일은 NLL 논란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백령도 주민을 위해 백령도에서 NLL 사수선언을 한단다. 

새누리당이 민주당에게 요구한 NLL 사수공동선언은 새누리당에게는 무조건 유리하고 민주당에게 무조건 불리한 방식이었다. 그것을 김한길은 민주당 단독으로 백령도에서 NLL 사수선언을 하는 우아한 방식으로 정면돌파하기로 결심했다. 귀태발언과 같은 친노의 막가파식 망언이 아닌 아주 품격있는 방식으로 김한길은 새누리당에게 영토주권과 국가안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조용한 경고를 우회적으로 던진 것이다.  

문재인이 올린 트윗을 보면서 오랫동안 생각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일까. 컴플렉스 덩어리인 친노에게 문제가 많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은 그런 친노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수치를 모르는 친노와는 다르게 노무현의 서거이후 이제 잃을 것이 없는 문재인은 부끄러움을 알고 수치를 알고 책임의 무게를 알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믿었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 나는 박근혜를 지지하는 분께도 내가 문재인을 지지하는 건 민주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문재인이 좋아서 민주당 후보인 문재인을 찍어주는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을 선택했다.

책임 책임 책임  나는 문재인이 올린 트윗을 보면서 책임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아이를 둔 많은 가정에서는 이제 말문이 터진 세살 애기에게도 자신이 어지른 장난감은 자기가 정리하도록 시킨다.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게 아니라고 말하면 세살짜리 애기도 다 알아듣고 어른들의 눈치를 보면서 자기가 다 치운다. 

김한길은 문재인의 부모가 아니다. 문재인도 문재인이 앞에서 사고치면 김한길이 뒤에서 문재인 대신 사과하고 문재인이 친 사고를 대신 수습해주는 식으로 김한길이 보살펴줘야 할 세살짜리 코흘리개 애기가 아니다. 문재인은 지금 책임을 떠넘기고 싶은 생각인가. 문재인은 대체 언제까지 국민들에게 나이값도 못한다는 조롱을 들어야 할까.

문재인이 왜 그랬을까. 문재인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민주당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창조적 파괴로 새로 태어날 수 있을까. 누구나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법이다. 그것이 문재인에게는 노무현이었다. 그러나 맹신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 노무현이란 한계가 문재인을 시험하고 있다. 노무현은 성역이 아니다. 그런데도 마치 성역을 침범당한 제사장의 상처받은 반응에 가까운 히스테릭을 보여주는 문재인에게 나는 문재인의 트라우마는 노무현이고 문재인은 결코 노무현 없이는 혼자 설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새누리당은 문재인의 아킬레스건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죽은 노무현을 궁지에 모는 것으로 문재인을 시험에 빠트렸고 문재인은 결국 대형사고를 쳤다. 강용석이 새누리당에게 끼친 해악보다 문재인이 민주당에 끼친 해악이 더 크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강용석을 단번에 내쳤고 문재인은 되려 친노를 통해 민주당에게 큰소리를 친다.

민주당과 새누리당은 힘의 크기가 다르다. 지역기반부터 호남을 기반으로 한 민주당과 영남을 기반으로 한 새누리당은 가진 힘의 크기가 다르다. 영남패권주의라는 말은 있어도 호남과 패권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언제나 호남은 패권보다는 저항이라는 단어가 더 가까운 곳이었다. 그렇기때문에 김대중은 언제나 김대중이 가진 정치적 사회적 시대적 명분을 통해 정서적인 유대감과 공감대 확산이라는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고나서야 과거의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상대로 겨우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지금처럼 민주당이 새누리당에게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명분에서 새누리당의 명분을 민주당의 명분이 압도적으로 제압해야 한다.

지금 나는 그 누구에게도 적극적인 지지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당연히 문재인 지지자도 아니다. 그러나 안희정에게는 상당한 호감이 있다. 이것이 안희정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현재 내가 가진 안희정에 대한 호감도는 언제든지 사소한 사건 하나로도 철회할 수 있는 수준의 미약한 것이다. 내가 보는 안희정은 흠이 참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안희정은 책임을 질줄 아는 사람이다. 흠결이 있지만 그건 안희정이 끝까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안희정이 무책임하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안희정에게 많은 점수를 주고싶다. 

한때 손석희가 차기 대선에 꼭 나왔으면 하면서 손석희를 지지할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최근 손석희의 논문표절논란 과정에서 문대성의 논문표절에는 시선집중을 통해 추상같던 손석희가 자신의 논문표절논란에 대해서는 정치적 음모론을 들먹이며 당당하지 못한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의 만들어진 이미지만 가지고 그 사람을 지지하는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되었다.

안희정을 생각하니 다시 문재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내게 정치적 편향성은 있을지언정 기계적인 균형감각은 없다. 어지간하면 나도 문재인을 편들어주고 싶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 것처럼 내게도 고무줄같은 잣대가 있고 가능하면 문재인에게는 고무줄로 늘릴 수 있을만큼은 이해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아무리 생각해도 문재인을 이해할 수가 없다. 

문재인을 복기하면서 내가 애써 외면했던 부분을 다시 생각했다. 문재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노무현의 생각이 아니라 문재인의 생각이 궁금했다. 나는 노무현의 목소리가 아니라 문재인의 목소리를 듣고싶었다. 적어도 나는 노무현의 생각과 노무현의 목소리의 해석본을 문재인을 통해 다시 듣고싶진 않았다.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노무현의 발언을 왜 문재인이 책임져야 하는가. 그냥 NLL 영토수호의지를 문재인의 약속으로 공약하면 그뿐이었다. 노무현이 정말 새누리당이 주장하는대로 북한에 NLL을 팔아먹었다면 그건 노무현의 잘못이라고 노무현과의 차별화전략을 쓰면 되는 문제였다. 문재인이 먼저 나서서 노무현이 그랬을리 없다면서 스스로 NLL 진흙탕 싸움에 들어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랬던 문재인이 이제는 새누리당과 과거 이명박 정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싶은 모양이다. 문재인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책임을 지겠다고 국민들 앞에서 공언했지만 이제와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책임을 지지않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지금 문재인은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가 아니다. 스스로 책임을 질줄도 모르고 오히려 책임을 남에게 전가한다. 문재인은 책임을 물을 주체가 아니라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다. 

NLL 사초폐기의혹의 시발점이 바로 문재인이다. 노무현 정부의 사초폐기와 관련해서 모든 의혹의 중심에 서서 민주당을 위기에 몰아넣은 사람이 바로 문재인이다. 문재인은 책임을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 책임을 지겠다고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도리어 책임을 묻는 것이 바로 주어가 없는 전형적인 유체이탈화법이다. 나는 그걸 지난 5년간 이명박에게서 너무 많이 봤다.

책임의 무게를 알거라고 믿었던 문재인이 보여주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이젠 과연 문재인이 책임의 방식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책임의 기본은 가장 먼저 책임소재를 규명하고 책임귀속을 통해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은 지금 책임의 방식에서 남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 스스로 책임을 지는 방식을 고민할 때다. 

물론 그건 무한책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이 책임질 수 있는 책임능력 한도 안에서 문재인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책임정치의 측면에서 문재인의 책임능력과 문재인이 책임져야 할 범위는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가 문재인 스스로 자초한 면이 있고 결국엔 문재인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

지금 문재인은 작게는 민주당내 책임론과 크게는 대한민국 국가안보의 책임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안에는 정치적 책임을 지고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사안에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을 분리해서 법적 책임은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내려지기전까지 무죄를 추정한다고 해도 정치적 책임에 대해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문재인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

이제는 문재인의 책임을 논하기전에 문재인의 원칙이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대선에서 기득권 버리기 명분으로 문재인 스스로 먼저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한다고 했을때 문재인은 지역구민에 대한 책임을 명분으로 국회의원직 사퇴를 끝까지 거부했다. 그런 문재인의 원칙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내심 문재인이 질 것 같으니깐 사퇴 안한다는 인식을 가졌다. 

어차피 대통령 되면 겸직불가라는 사실을 이미 많은 국민들은 다들 알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아마 문재인의 그런 원칙이 비겁한 변명이나 졸렬한 이유로 들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문재인의 원칙을 끝까지 지지했다. 문재인의 지역구민에 대한 책임의식이 그만큼 멋있어 보였다. 

그랬던 문재인이 고작 노무현의 NLL 발언 따위에 지난 대선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국회의원직을 걸었다. 지금 문재인은 노무현의 그림자이자 노무현의 비서로 자기 목소리가 아닌 노무현의 목소리에 도박의 판돈처럼 자리를 걸었다. 문재인이 NLL 도박의 판돈으로 건 것은 단순히 국회의원직이 아니라 지역구민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던 문재인의 원칙을 건 것이었다. 도대체 이쯤되면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나 국회의원직 못해먹겠다와의 차이를 모르겠다. 

과거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논란이 검역주권의 문제였다면 NLL 문제는 영토주권의 문제였다. 당장 서해5도와 영종도, 김포, 강화, 인천, 한강하구, 서울로 연결되는 국가안보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무리 문재인이 NLL 포기발언에 대해 직접적 명시적인 포기발언이 없었다고 주장해도 이걸 단순히 서해평화협력지대에 대한 해석차이라고 넘기기에는 NLL 무력화가 곧 NLL 포기이며 이는 곧 영토주권의 침해와 국가안보의 위기라는 새누리당의 명분이 차라리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