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은 마땅히 권장해야할 덕목이죠. 특히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에게는 더욱 그럴테구요. 만약 그들이 겉과 속이 다르거나 사익을 더 앞세우거나 한다면 그 피해는 심각할 것입니다. 이처럼 진정성은 그 사회의 도덕시스템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죠. 그러나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른바 진정성의 함정 때문입니다. 특히나 한국처럼 오랜 세월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실시해온 나라에서는 정치인들의 진정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다뤄질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진정성의 함정과 역기능도 더욱 깊고 넓을 수 밖에 없습니다. 


첫번째 함정은 우선 대개의 사람들은 진정성을 느끼는 대상에게 보다 쉽게 설득을 당하거나 신뢰를 보내기 마련이라는 것 때문에 발생합니다. 사실 그건 당연한 심리적 반응이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을 설득하고 신뢰를 얻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써 자신의 진정성을 증명하려 노력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여기에는 커다란 맹점이 있습니다. 진정성이 있다는 것과 그 사람의 의견이 올바르다는 것은 전혀 별개인데도, 같은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본인이 신뢰하고 있는 대상을 틀렸다라고 생각하기는 어렵거든요.

사실 진정성을 증명하는 방법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기 희생을 보여주는 것이죠. 사람들은 손해를 감수하는 쪽을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에게 진정성 있다 여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보다 쉽게 설득을 당하고 신뢰를 보내게 되는데, 그 사람이 옳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여기면서 비극이 시작되는거죠. 하지만 자기 희생과 올바름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진성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기희생적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합니다. 당선이 불리한 지역에 일부러 출마를 해서 장렬하게 전사를 하거나, 거액의 재산을 사회에 헌납을 하거나, 아름다운 양보를 하거나, 정치안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걸 어필하거나, 과감하게 기득권을 포기하거나, 민생투어라는 이름으로 일부러 생고생을 하거나 기타 등등. 그 자체는 감동스럽고 좋은 일이고 권장해야만 하고, 사람됨이 괜찮으니 한번 믿고 맡겨볼까? 라는 고민 정도는 할 수 있을겁니다. 그러나 정치인의 그런 자기 희생을 올바름의 증거라고 여기는 순간 멀쩡한 유권자가 광적인 지지자가 되어 소통 불능의 또라이가 되는 것은 삽시간입니다. 그렇게 정치인의 진정성에 매혹된 집단적 심리상태의 부작용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사람들이 이른바 노빠들일거구요. 

 
두번째 함정은 무능한 정치인들이 보다 쉽게 지지를 얻고 걸맞지 않는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경우입니다. 그런 정치인들의 대표격이 바로 486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자기 희생적 진정성의 화신들이죠. 명문대학생의 기득권과 청춘을 내던지고 험난한 가시밭길을 선택했으니 그들 이상의 자기희생을 보여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그들의 희생이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신장에 크게 기여했고, 특히 그 누구도 감히 말하지 못했던 광주의 학살을 가장 앞장서서 맹렬하게 폭로하고 그 결과 갖은 고초를 겪었다는 점은 제 자신 닝구로써 높은 평가를 해줘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희생적 투쟁 경력과 정치인으로서의 유능함 역시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냉정하고 합리적인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에 어설프고 아마추어적인 운동가적 감상주의를 개입시킨 결과 많은 병폐와 부작용을 야기한 것이 사실이죠. 그 결과 어느 사이에 486 운동권 출신이라는 것이 명예가 아니라 오히려 무능과 위선의 대명사가 되어 공격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구요.


세번째 함정은 자기희생적 진정성을 보여주기 어려운 정치인들이 부당한 역차별을 당한다는 점입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이 자기 희생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돕거나 좌파정당에서 활동하면 쉽게 주목을 받고 세간의 칭찬을 듣습니다. 그러나 가진게 없어서 자기 희생할 것도 없는 원래부터 서민인 사람은 그러기가 어렵죠. 영남출신 정치인이 새누리당보다 야당에서 활동하면 보다 쉽게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구요. 똑같은 정치행위를 하는데도 영남출신 정치인들은 각광을 받고 타 지역 출신 정치인들은 그럴 수 없다면, 굉장히 심각한 불공평이죠.


현재 야권 정치세력이 지리멸렬한 사면초가의 지경에 빠진 이유가 여러가지 있겠지만, 저는 야권 특유의 진정성에 기대는 정치, 감동에 기대는 정치도 크게 한 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진정성을 어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어보이는 정치인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서 좌지우지 하는 걸 해결하지 못하면 출구는 쉽사리 보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