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박근혜가 취임 이후 일방적으로 판을 주도해온 게 사실입니다. 문재인 김한길 박지원 등등 민주당 유력 정치인들은 거의 떡실신 상태입니다. 하지만 보통 정치인이 아닌 대통령의 정치적 성과는 정치게임이 아니라 결국 국정 운영지표에 의해서 판가름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결정적인 것은 경제 문제지요. 모든 국정 변수는 결국 하나로 수렴됩니다. 광범위한 국민 대중을 얼마나 먹고살기 편하게 해주느냐 하는 점이지요.


 

이런 점에서 보자면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심각한 불안요소를 안고 있습니다. 이런 불안요소가 현실화할 때 현재 정치판의 승승장구는 낙하의 충격을 몇십 몇백 배 키우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금 경제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 은행들이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는 것은 사실 1997년 IMF 체제의 효력이 다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부동산 취득세 영구인하 얘기도 나오는데 경기부양에 대한 이 정부의 부담감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줍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부족한 세수를 채우기 위해 담배값 인상부터 온갖 임시 처방전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정치 분야에서 표정 관리를 걱정해야 할 새누리당에서 유일하게 격앙된 쇳소리가 나오는 영역이 바로 경제 쪽입니다. 현오석 부총리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이 심각해지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신임' 사실을 대외적으로 확인하는 제스처를 동원했을 정도입니다.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 원인이 뭘까요? 이런 소리 하면 싫어하실 분들 많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어설픈 경제민주화 공약 때문입니다. 경제민주화라는 정책 방향의 당위와 명분은 인정한다 해도 구체적인 액션플랜에 있어서는 도무지 실체가 없어 보입니다. 그냥 기업체들 손발 묶고 복지 지출은 늘리자는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정책이라는 게 이렇게 단순한 워딩으로 끝나면 결론은 뻔합니다. 기업체 투자는 줄고, 정부 등 공공분야 재정은 바닥납니다. 그런데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은 저 단순한 워딩에서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대선 당시 선거공약보다 더 단순하고, 더 투박하죠. 이래서야 답이 보이질 않습니다.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치권의 양상 역시 내실을 들여다보면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어요. 집권 초기인 지금은 사실 야당 등 반대세력까지 가급적 포용하여 향후 5년의 국정지표와 추진방향에 대한 국가적 컨센서스를 만들어가야 하는 시점입니다. 야당이나 반대세력은 여기에도 당연히 딴지를 걸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과정에서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일종의 합의라는 성과물이 생겨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정부에서는 이런 프로세스가 실종된 상태에요. 이거, 굉장히 위험합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내년 내후년에는 후유증이 나타납니다. 대통령의 지지층을 지나치게 안하무인으로 만드는 것은 더 심각한 불안요소입니다. 나중에 대통령이 야당과 일정한 정치적 합의를 시도할 때 매우 강력한 방해세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우리니라 보수세력과 영남 지역의 성향을 고려해볼 때 더욱 우려해야 할 지점입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야당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충격적인 대선 패배 이후 야권은 내부 정비과정의 후유증을 쉽게 극복하지 못했고,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는 데에도 실패했습니다. 5년 뒤 10년 뒤의 집권플랜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은 박근혜정권과 각을 세우고 진흙탕 싸움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리더십이 없기 때문에 할 싸움과 하지 말아야 할 싸움을 구분하기도 어려웠고 집권세력과 유연하게 대화하기도 어려웠다는 겁니다. 문재인 등 친노의 삽질도 결국 여기에서 연유하는 겁니다. 역설적으로 야당의 지리멸렬이 갓 출범한 박근혜 정권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비록 유례를 찾기 어려운 꼴불견을 노정하는 것으로 귀결되긴 했지만, 이번 민주당의 NLL 및 대화록 파문은 좋은 계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과 김한길이 어떻게 보면 적반하장이고 어떻게 보면 비굴하게 구명도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박근혜정권도 이번 기회에 적당한 수준에서 합의점을 찾고 야권과 대화를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솔까말, 지금 문재인 죽여봐야 향후 정치구도는 말할 것도 없고 5년 뒤 정권연장이라는 차원에서도 별로 유리할 게 없습니다. 어떤 분야, 어떤 상황일지라도 선택 가능한 경우의 수를 줄이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여당이 자신들의 카운터파트너로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 등 다양한 카드를 쥐고 있어야지, 어느 한쪽을 너무 일찍 폐기해버리면 나중에 오히려 아쉬워질 수도 있거든요.


 

물론 개인적으로는 이번 기회에 문재인을 포함한 친노 세력이 아주 박살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감정적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문재인 죽이고 친노가 박살난다고 해서 현재의 야권이 뭔가 닝구들의 기대수준에 접근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닝구만의 대안을 갖는 것이지요. 쉽지 않은 숙제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지금은 대한민국호가 거대한 정치경제사회적 파랑을 벗어나 침로를 잡는 것이 시급합니다. 진정한 진보라면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짓은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