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이냐, 4년이냐, 숫자 놀음이 문제가 아니다. 비정규직 보호법의 핵심인 기간제한의 한계를 직시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 정부와 한나라당, 보수·경제지들이 만든 기간제한 프레임에 빠져서 비정규직의 일상적 대량해고 문제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

10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주최 토론회에서 김성희 소장의 이야기다. 김 소장은 "840만에 이르는 비정규직 대다수는 비정규법 이전에도, 2년 기간제한 하에서도, 4년 기간제한으로 바뀌더라도 계속 해고에 직면한다"면서 "이들 모두가 직업을 잃는 건 아니지만 비슷한 조건의 일로 수평 이동하거나 더 열악한 간접고용이나 특수고용으로 떨어지고, 일부는 정규직으로 상향 이동하지만 그 수가 매우 적다"고 지적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

김 소장은 "기간제한 중심의 비정규 해법은 한국 사회에 만연된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을 제어하는 데 역부족"이라면서 "싼 임금으로 쉽게 해고 가능한 인력을 쓰는 걸 어느 기업이 마다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소장은 "기간제한이 4년으로 연장되거나 2년 유예되면 일부는 해고되지 않고 더 오래 고용을 유지할 수도 있겠지만 그 기간 동안 정규직 채용 대신 비정규직으로 대체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문제는 기간 연장이나 유예를 하더라도 그 대상이 한정돼 있다는 사실이다. 2006년 8월 기준으로 전체 비정규직 841만명 가운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2년 이상 기간제 노동자는 70만명. 여기에 2년 이상 근속한 일반 임시직 가운데 5인 이상 사업장 종사자 38만명을 더해도 실제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인원은 전체 노동자의 4.9%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연장이나 유예가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김 소장은 "기간제는 정규직 고용을 회피하기 위한 가장 극악한 비정규 활용전략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김 소장이 내놓는 유일한 해법은 상시적인 일은 정규직으로, 일시적이거나 임시적인 일은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방식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사용자 판단에만 맡기게 되면 소수정예 핵심역량만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다수는 비정규직으로, 외주로 돌리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용형태에 따른 도소매업 판매종사자 임금 격차.)

비정규직 보호의 핵심은 단순히 비용절감을 이유로 비정규직 고용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사용사유를 철저하게 제한해야 한다는데 있다. 상시적인 고용은 정규직 고용을 의무화하되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 이를 테면 결원 대체나 예상치 못한 수출물량 등 일감의 급증하는 경우, 계절적인 일자리,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는 프로젝트성 사업에 따른 고용 등에만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민주당의 정규직 전환 지원금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는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무기계약직 전환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를 고착화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정규직 전환지원금을 무기계약직 전환에 지원하면 기업은 남는 장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비정규직을 상시로 활용해 비정규직 대량 남용 기업에 면죄부를 주면서 그 비용까지 다 감당해 주는 것이 비정규 대책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허울뿐인 기간제한, 생색과 왜곡으로 점철된 4년 연장안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비정규 전반의 문제를 아우르는 사유제한의 방식이나 불법파견 엄단, 정규직 전환 따른 비용의 사회적 분담원리에 충실하면서와 대규모 비정규직 활용했던 관행에 면죄부를 부여하지 않는 방식의 대규모 정규직 전환프로그램, 차별금지 제도의 획기적 개선, 특수고용의 노동권과 생활권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기간제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14.3% 정도다. 다른 파견근로와 용역근로, 특수고용 등의 문제는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김 소장은 "정부와 경영계는 비정규직 문제를 기간제한 논란으로 몰고 가면서 시야를 좁히는데 성공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도소매업 판매종사자의 경우 정규직 임금이 173만2천원인 반면, 일반 임시직은 118만4천원, 기간제는 112만1천원, 용역근로는 80만원으로 크게 차이가 났다. 청소용역의 경우도 정규직은 135만2천원, 일반 임시직은 89만5천원, 기간제는 96만5천원, 용역근로는 87만7천원으로 용역근로의 임금 수준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소장은 "노동권 사각지대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문제, 일은 대기업에서 하는데 중소기업에서 고용되어 차별을 절감하면서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몰라도 원청 대기업이 계약해지 하면 그게 해고 통보가 되는 사내하청과 용역, 도급, 파견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 단기 계약 하에서 채용과 해고를 반복하는 임시계약직 노동자의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한 고민과 관심도 묻히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7월13일 미디어오늘 온라인판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