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긴 세월은 아니지만, 살아온 경험에 비춰보자면..

서로 대립하는 상대방이 서로 주고받는 공방의 진위를 판단할 때는

'양쪽 다 사실에 근거한 얘기를 한다'는 전제 아래 판단하는 게 좋을 것 같더군요.

가령 가수 장윤정과 나머지 가족들의 관계가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장윤정이나 장윤정 어머니(남동생 포함)가 상대방에 대해서 털어놓는 말이 다 사실일 것 같습니다. 간단하다는 거죠. 결론은?

둘 다 만만치 않은 막장들이라는 것이죠. 사실, 몇십년간 부모자식으로 함께 생활해온 사람들이 특별하게 정반대 종류의 인간들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지금 친노-새누리의 NLL 공방에서도 비슷한 원칙이 적용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양쪽이 서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내용이 다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고 바라보자는 겁니다. 그러면 어떤 판단이 나올까요?

새누리당이 친노를 공격하는 것은 NLL을 포기하려고 했다는 것, 그리고 녹취록을 노무현측이 파기했다는 것입니다.

반면 친노가 새누리당을 공격하는 내용은? 따지고 봤더니 없습니다. 그냥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녹취록 파기)" 또는 "그것은 오해(NLL 포기)"라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주장이 아니라 그냥 새누리의 주장에 대해서 방어에 급급할 따름이지요. "이명박이 녹취록을 파기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하지만 이것은 팩트 주장이 아니라 스스로도 '짐작'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일단 사실 주장이라는 자격 요건에 미달입니다. 뿐만 아니라 친노의 저 주장은 "녹취록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들의 다른 주장과도 배치됩니다.

간단히 말해 친노는 지금 새누리당을 공격할 건덕지가 하나도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걸 좀더 유추 해석해보면 대충 결론이 나온다고 봅니다.

노무현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적어도 NLL 포기라는 논란이 생길만한 발언을 했고, 더 나아가 그런 정황을 입증할 녹취록을 의도적으로 없앴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떠오르는 게 5.16쿠데타 후 박정희의 행적에 대한 김형욱회고록의 증언입니다.

김형욱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가 5.16쿠데타 성공 후 가장 먼저 한 일 중의 하나가 치안본부(당시의 직제명이 맞는지는 잘 모릅니다)에 사람을 보내서 자신의 존안자료를 빼내왔다는 것입니다. 그 존안자료에는 친일경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순사건과 남로당 입당 등의 좌익 관련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성공한 쿠데타의 주역이 달라고 하는데 감히 그걸 거부할 간큰 경찰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또 조직의 힘이나 관성이라는 게 그리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경찰의 담당자는 서류를 넘겨주되, 그 내용을 모두 마이크로필름으로 저장해둡니다. 복사본을 만들어둔 것이죠. 물론 박정희는 이 사실을 몰랐지요. 그리고 김형욱이 그 자료를 먼저 발견하고 심각하게 검토합니다. 극우 김형욱으로서는 자신의 보스가 심각한 좌익경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극심한 불안감을 느꼈고, 박정희가 좌익쪽으로 기우는 것을 감시하는 역할을 자임하게 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미국이 김형욱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도 거의 정설처럼 알려진 사실이구요.

노무현의 경우도 이런 프로세스가 작용했을 것으로 봅니다. 남재준이 발언한 '국정원본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이다'는 말도 분명한 팩트일 것으로 봅니다. 노무현 청와대는 남북정상회담의 대화록 정리를 국정원에 맡겼고 그 소프트 파일과 하드카피를 넘겨받았을 겁니다. 또는 하드카피만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정 기간 보유하고 있다가 이 자료에 잠재해있는 폭발성과 위험성을 인지하고 국정원에 파기를 지시합니다. 청와대로 넘어온 자료는 직접 파기했겠지요.

하지만 국정원은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도 이 자료를 파기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이유는 대략 두 가지였겠지요. 첫째, 청와대의 지시가 국정원법이나 관련 내부규정에 어긋났을 겁니다. 특정 자료의 제작과 등급 책정, 보관, 파기 등에 관한 일정한 프로세스를 규정하고 있을 텐데 청와대의 지시 또는 요청은 그런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실무진에서는 고민할 수밖에 없죠. 둘째, 임박한 정권교체가 실무진의 판단에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당시 이명박의 집권은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으니까요. 정치적 판단이나 눈치보기가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정원 실무자들이 어떤 선택을 했을지는 명약관화하다고 봅니다.

결국 노무현 청와대는 임기를 마치면서 산더미같은 국정자료를 국가기록원에 넘겼지만 거기에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은 없었다고 봅니다. 혹시, 노무현이 봉하마을로 가져간 그 자료에는 남아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노무현이 욕을 먹으면서도 기를 쓰고 이지원시스템의 자료를 보관하려고 했는지도 모르지요. 지금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친노가 국가기록원에서 대화록을 찾는다고 쌩고생을 하고 있는데 차라리 지금이라도 봉하마을 압수수색 영장을 발급받아 노무현기념사업회 서버를 뒤지는 편이 문제해결의 지름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 이 사건이 새누리와 친노의 손을 떠나 검찰로 넘어가는 순간 이 시나리오는 금방 현실화되겠지요. 과연 거기에서 자료가 나올지 장담은 못하겠습니다만, 가능성이 아주 무시할 정도도 아닐 거라고 짐작해봅니다.

한 가지 의문점은 도대체 왜 노무현이 이 모든 쌩쇼를 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느닷없이 임기말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NLL 문제로 베팅을 하고, 대화록을 만들었다가, 그 대화록을 없애고, 나머지 국정자료들은 국가기록원에 넘기고... 이게 무슨 속셈이었을까요?

제가 지난번에도 한번 글을 올린 적이 있지만(댓글인지 본글인지는 기억이 분명치 않네요), 저는 이게 노무현의 김대중과 동교동, 호남, 국민의정부에 대한 견제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봅니다. 임기는 끝나가는데, 노무현이 야심적으로 시도한 모든 정치 및 국정 프로젝트는 한결같이 실패로 돌아갔죠. 노무현 자신도 퇴임 이후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야심을 버리지 못했거니와(저는 이렇게 봅니다), 정권을 내놓은 이후 똘마니들의 앞길도 걱정해야죠. 어차피 집권당의 궁물이야 포기할 수밖에 없지만 그나마 남은 야권의 대표성이라도 반드시 챙겨야 했습니다.

열우당의 공중분해와 잔민당 세력의 대두가 노무현의 초조감과 불안, 분노를 더욱 부채질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 중에서도 남북대화 문제는 가장 인화성이 높은 정치적 자산의 하나였습니다. 적어도 노무현이 보기에는 그랬다는 겁니다. 노무현이 16대 대선 기간 중 "다른 것은 다 깽판쳐도 햇볕정책만 제대로 하면 된다"는 발언을 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노무현의 스타일에서 저런 발언을 립써비스로 했을 가능성은 적습니다. 아마 진심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집권 이후 범친노 일당들의 요구에 의해 김대중과 호남, 국민의정부를 쓰러트려야 하는 시급성이 더 커졌기 때문에 햇볕정책을 부인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봅니다.

하지만 남북대화가 대한민국의 국정과제에서 갖는 중요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죠. 이것은 좌우 막론하고 대한민국 역대 집권세력이 북한과 대화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안달해왔는지를 봐도 분명합니다. 게다가 노무현 퇴임 이후 잔민당 세력이 남북대화의 상징성을 갖고 게다가 이명박정권의 협조까지 얻는 상황은 노무현과 친노에게는 그야말로 악몽이었을 겁니다.

노무현이 임기말에 부랴부랴 남북정상회담을 급조한 배경이 이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남북정상회담에서 얻어낼 구체적인 성과물을 시뮬레이션했을 겁니다. 사실 남북대화에서 대부분의 성과는 이미 국민의정부 시절에 다 이뤄진 것이라서 노무현이 새로 숟가락을 얹을 여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때 떠오른 것이 NLL 문제였을 겁니다.

나름 통박을 굴린 야심작이었지만 (노무현의 다른 회심의 역작들이 다 그랬던 것처럼), 이 시도 역시 비참하게 실패했습니다. 북한은 노무현의 러브콜에 립서비스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남북정상회담은 그냥 임기말 인증사진 찍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해프닝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획과 해프닝은 성과가 나오건 안 나오건 공짜가 아닙니다. 이제 노무현 앞으로 청구서가 날아올 차례가 된 것입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회담 성과 특히 NLL 문제에 대해서 슬슬 이야기가 새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그건 필연이었죠. 퇴임 이후 자신과 수하들의 안전과 전관예우를 놓고 이명박 무리와 딜을 시도했지만 그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임기 내내 이명박이나 한나라당에 대해 매우 유화적이거나 심지어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던 노무현이 임기 말에 느닷없이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은 엄청난 재앙" 운운하는 발언을 했던 것이 당시의 상황을 간접 증거한다고 봅니다. 물론 정신차리기 불가능한 노빠들은 노무현의 저 발언을 두고 "우리 노짱의 엄청난 혜안"이라고 쌩쇼 난리 지랄 부르스들을 여전히 춰대고 있긴 합니다만.

이명박이야 원래 특별한 소신이나 철학이 없는 놈인지라 분위기 봐서 남북대화를 할 생각도 없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보수꼴통들이 "그래 너 하고싶은대로 해봐라"고 놔둘 친구들이 아니죠. 특히 NLL 문제는 더욱 예민하고 인화성이 높은 사안이었습니다. 이명박에게 이때쯤 대화록이 들어갔을지도 모릅니다. 대화록의 전달 경로가 누구의 손이었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테구요.

암튼, 노무현으로서는 야심찬 기획의 성과는 고사하고 그 기획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여기서 우리 참여정부의 슬픈 현실이 드러나죠. 노무현 자신도 임기 말에 정신이 없었겠지만, 그를 둘러싼 친노 일당들이 이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었다고 봅니다. 모르기는 해도 문재인도 이 문제가 어떻게 처리됐는지 잘 몰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냥 총체적 난국이었다는 겁니다.

그 이후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됐는지는 다들 아실 것 같구요. 분명한 건, 노무현의 죽음 이후에도 이 문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나라 정치판을 배회하는 유령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누리당은 계속해서 이 문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을 겁니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럴 것이구요. 이 문제는 이렇게 간단히 써버릴 카드가 아니라고 어떤 극우파 논객이 아쉬워하던데 (새누리당 입장에서) 내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노빠들이 쉽게 죽을 것 같지도 않군요. 노빠들의 온갖 지랄삽질의 후유증과 타격을 호남이 대신 몸으로 떼워주는 구도도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보세요, 지금 분위기 환상적입니다. 정사갤 살인사건에 세계수영대회 서류 위조까지 완벽한 앙상블 아닙니까? 요즘 노빠들 하는 꼬라지 보면 꼽추 허리 펴준다고 엎어놓고 널판지 얹어 그 위에서 널뛰는 넘들 같습니다. 깔려서 비명지르는 꼽추가 차라리 빨리 죽기라도 하면 그냥 판이 끝나고 말텐데, 웬 저주스러운 목숨이 이리도 질기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