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의 세계화 추진에 대한 저의 판단은 노무현이 한미FTA를 졸속으로 추진한 것처럼 졸속으로 했다는 것입니다만 피노키오님은 세계화 추진이 재벌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냐?라고 반문하시던데 여기에 그 부분을 따로 적습니다. 그리고 네임드님의 IMF에 대한 판단 역시 저의 판단과는 상당히 다른데 그건 이 쪽글에서 또는 나중에 따로 발제하겠습니다.


제가 읽은 신문기사에 의하면 당시 미국에서 귀국하던 YS가 비행기 안에서 '우리도 세계화를 하자'라고 폭탄처럼 선언하자 비행기 안에서 환호성이 났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출국하면 재벌총수들이 동반하는데 그 박수친 사람들 중에 재벌총수들도 포함되어 있을겁니다만, 당시 신문에서 읽은 저의 느낌은 '졸속'이었습니다.


이 읽은 기사가 동아일보였다면 기사를 찾아 인용할 수 있겠지만 조선일보였다면 인용이 좀 곤란할텐데 어쨌든, 아래에 세계화 추진에 대한 상황 설명을 따로 적습니다. 과연, YS의 세계화가 준비된 것(설사, 그 준비가 불완전하더라도)이었겠느냐? 입니다.




1993년 12월 정부는 수년 간 끌어오던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을 타결지었다. 보호무역주의의 철폐를 골자로 하는 이 협정은 국제경제경쟁력이 약한 개발도상국에 대해 선진국이 핵폭격과 같은 피해를 주는 것으로서, 우리나라는 이 협정으로 상품, 금융, 건설, 유통, 서비스 등 모든 분야에서 외국에 문호를 열어 놓게 되었다. 정부는 시장개방정책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1996년 9월 12일 서방 선진국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시장개방정책에 맞추어 낙후된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세계화’를 강조하고 1995년 1월 ‘세계화추진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한국경제는 1995년 10월 현재 수출사상 처음으로 1천억불을 돌파하고, 1996년 말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불을 돌파하여 선진국을 바짝 뒤쫓는 수준에 올라섰으나, 무역역조가 갈수록 심화되고 경제성장이 둔화되어 1996년의 경제성장률은 7%를 밑돌게 되었다.
(인용자 주 : 우루과이 라운드는 다자간 협상으로 WTO와 같이 필수조건입니다. 따라서 우루과이 라운드를 체결했다고 세계화에 대한 준비를 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YS정권은 우루과이 라운드를 비밀리에 진행하여 우루과이라운드에서의 예외 사항인 농산물 시장을 내주는 닭짓을 하고 결국 학교급식에서조차 외국농산물이 판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2. 세계화에 의한 개혁 전략 대 개혁을 통한 세계화 대응 전략
그러나 세계화로 인한 국가 간 경쟁의 격화는 심화되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민주화가 공고해졌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서서히 세계적 조류에 눈을 뜨게 되었다. 김영삼 정부는 중반 이후 세계화 전략을 전면에 내세웠다. 당시만 하더라도 세계화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세계화 전략의 구체적 내용이 갖추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용자 주 : 당시만 해도 전자제품에 국산화율에 대한 법안, 그리고 국산품 애용=애국심이라는 광고가 TV에 자주 나왔던 시절인데 재벌들이, 당시만 해도 OEM 산업구조였던 현실에서 안마당을 내주는 세계화를 추진했을까요? 세계화를 추진하지 않아도 수출보조금 따먹고 수출할 수 있는 구조여서 수출가격은 덤핑, 이윤은 내수시장에서 챙기는 구조인데요?)


세계화로 인한 정세의 변동에 주목한 박세일(1994)3) 등은 과거 불균형 성장전략으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라는 경제구조의 문제를 채 해결하기도 전에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체제의 구축이라는 이중적 과제를 안게 되었다고 정확히 지적하고, 이를 위한 조속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국가적 대책을 마련하기는 불가능했다.


김영삼 정부는 미국 레이건 행정부의 감세와 규제완화를 받아들이자는 학자군과 정부에 의한 경제의 조절을 신봉하는 관료집단간의 절충으로 경기부양과 규제완화를 위주로 하는 신경제전략을 채택했다. 후반기에는 지지부진한 규제완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자, 세계화 추진 세력에 의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기 가입을 단행했다. 이는 향후 한국의 세계화 대응전략과 관련한 긴 논란의 시작이 되었다.


즉, 이른바 세계화 추진세력은 관치의 철폐와 규제완화를 위해 적극적 개방을 주장했다. 선진국 대열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정부규제형 관치에서 벗어나야 하고 사회 곳곳의 비효율적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민주화 이후 노동시장이 경직적이 되어 고비용 구조가 되었기 때문에, 개방을 통한 고비용 구조 해소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지침이 되었다.
(인용자 주 : 그 세계화의 허술함은 지금도 해결되지 않는 외국인 투자자들에 의한 주식차익.... 수천억원이 세금도 제대로 걷히지 않고 고스란히 외국인들 주머니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 하나의 방증입니다.)


반면 내부적 모순을 해결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외 개방을 확대하면, 소규모 개방 경제인 한국경제는 해외 자본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때 이른 OECD 가입은 경제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다.

이들의 주장은 대내적 구조개혁을 통해 세계화를 대비하자는 것으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화와 한국경제의 대응전략에 대한 고찰 / 경원대학교 경제학과 홍종학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