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연세대 총학의 시국선언 과정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자 여기 아크로의 일부 회원들께서는 연세대 총학이 학생들의 총의를 묻지 않고 시국선언을 한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제 비판이 잘못되었다는 반론의 글이 홍수를 이루더군요. 아크로가 민주적 공론의 장이고 아크로 회원들은 민주에 대한 열망이 대단한 분들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저런 반론을 보고 아연실색했습니다.

다시 한번 연세대 총학의 시국선언이 왜 문제였는지 살펴보도록 하지요.


1. 시국선언은 학생들의 찬반의사를 확인할 필요가 없는가

아크로의 미뉴에, 흐강, 비행소년, Komarvo, 오마담님 등의 회원들께서는 시국선언을 하는데 총학이 굳이 학생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총학생회 이름으로 시국선언을 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 연세대 총학생회 회칙에 시국선언을 하는데 학생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조항이 성문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연세대 학생회 회칙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살펴 볼까요?

http://story.yonsei.ac.kr/xe/regulation

<2장 학생총회>

10(지위) 학생총회는 본회의 최고 의결 기구이다.

11(권한)

① 본회의 존립 및 회원전체에 대한 중대한 사항을 의결한다.

② 본회의 활동 전반에 대한 중요한 사항을 토론·의결한다.

15(의사, 의결 정족수)

① 학생총회는 의안의 내용에 관계없이 회원 1/10이상의 참석과 참석회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3장 학생총투표>

16(지위) 본회의 활동 전반에 대한 사항을 결정하는 최고 의결 투표이다.

17(권한)

① 본회의 존립 및 회원전체에 대한 중대한 사항을 의결한다.

② 본회의 활동 전반에 대한 중요한 사항을 토론·의결한다.

20(의결) 안건의 내용과 관계없이 본회의 회원 과반수 참여와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위에서 보듯이 연세대 학생회 회칙은 <본회의 활동 전반에 대한 중요한 사항은 학생총회나 학생총투표에서 토론, 의결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시국선언은 연세대 학생회칙에서 어떻게 하라고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총학이 학생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연세대 총학생회 명의의 시국선언을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학생총회와 학생총투표에서 말하는 <중요한 사항>은 무엇일까요? 학생회칙에는 어떤 구체적 안건이나 행위를 적시하지 않고 <중요한 사항>이라고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미뉴에님 말대로 학생회칙에 성문화되어 있지 않은 안건이나 행위는 총학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한다면 학생총회나 학생총투표에서 토론, 의결할 <중요한 사항>이라는 규정은 유명무실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학생회칙에는 학생총회나 학생총투표가 토론, 의결할 <중요한 사항>은 어떤 사안이나 행위를 구체화해 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뉴에님 논리라면 총학은 어떤 중요한 사항이라도 학생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궤변으로 귀착하게 됩니다.


2. 흐강님의 자가당착

흐강님은 시국선언은 연세대 학생회칙에서 규정하는 <중요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학생들의 의사를 물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흐강님께 묻지요. 흐강님은 <국정원 사건, NLL 사건>을 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고 보십니까? 그런데 왜 연세대 총학은 이 사건들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데도 총학생회 이름으로 시국선언을 발표하려 한 것일까요?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시국선언 같은 중차대한 형식의 성명이 필요하지 않지 않습니까? 연세대 총학 스스로도 이 사건들이 중대한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굳이 연세대 총학 이름으로 시국선언을 하려 한 것입니다. 연세대 총학이 이 사건들을 중대한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다면 시국선언의 형식을 빌릴 필요가 없는 것이고, 중대한 문제라고 인식했다면 학생들의 의사를 물어야 하는 것이죠. 이제 흐강님의 논리가 왜 궤변이며 자가당착인지 이해가 되시는지요?


3. 서울대와 연세대 총학은 학생들의 의사를 묻는 절차를 왜 밟았을까요?

서울대 총학이나 연세대 총학은 시국선언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후에 학생들의 의사를 묻는 찬반투표를 진행했습니다.

서울대는 6/20 기자회견을 갖고 그 전의 행위가 시국선언은 아니라는 해명을 하고 차후에 학생들의 의사를 묻는 공청회/토론회나 찬반투표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연세대 총학도 마찬가지로 찬반투표를 실시했습니다. 이는 서울대나 연세대 총학은 시국선언이 중대한 사안으로 학생들의 의사를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인식했다는 뜻이죠. 정작 당사자들인 서울대나 연세대 총학은 시국선언이 학생들의 의사를 물어야 하는 중대 사안으로 인식하는데, 미뉴에님과 흐강님은 그렇게 보지 않고 있네요. 두 분의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나 인식이 나은 것일까요? 아니면 서울대나 연세대 학생들의 인식이 낫다고 해야 할까요?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25269

http://www.ilbe.com/1558223019 


4. 연세대와 서울대 총학의 시국선언의 비민주성

연세대 총학은 연세대 학생 3만명 중에 785명이 시국선언 찬반투표에 응해 609명이 찬성한 것을 가지고 시국선언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습니다. 전체 학생의 2%의 찬성을 가지고 학교의 이름으로 시국선언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우기는 것도 기가 차지만, 온라인에서 학번과 이름을 공개하는 찬반투표를 해 선거에서 보장되어야 할 비밀투표를 무시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학생회칙에는 학생총투표에서 의결이 되려면 과반수 참석과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연세대의 찬반투표는 학생회칙에 나온 학생총투표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어 시국선언의 정당성은 애초에 확보되지 못했습니다.  단순 설문조사 형식이라 하더라도 그 표본수의 대표성을 인정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런 절차상의 문제 이외에도 설문조사 자체에도 많은 문제를 노정하고 있지요.

서울대 총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총학이 일방적으로 시국선언 형식의 발표를 했다가 내부 반발이 거세지자, 언론이 앞서가면서 시국선언이라 표현한 것이고 자기들은 시국선언한 것이 아니라고 발을 뺐지요. 그 이후 학생들의 의사를 묻는 찬반투표를 했습니다만, 그 과정과 내용이 비민주적이었습니다. 찬반투표를 대자보와 과톡으로 고지를 하였지만, 과톡 고지 내용이 공정하게 찬반을 묻는 형식이 아니라 <국정원 사태 관련 온라인 서명입니다. 참여해 주시고 주변에 많은 전달 부탁합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찬반을 묻는 것이 아니라 서명을 권하는 문구이지요. 그 찬반투표의 결과가 1,205명이 참가해 1,080명(89.6%) 찬성, 78명 반대(5.9%), 기권 54명(4.5%)로 나왔다고 합니다. 참여자 1,205명이면 서울대생 전체의 10%가 되지 않고 있으며, 찬성자도 전체의 8% 수준입니다. 이것을 서울대 학생들의 총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서명 형식의 찬반투표에서 반대자들은 아예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을 감안한다면 이를 두고 89.6%가 찬성했으니 서울대생들의 총의가 모여진 것이다고 주장할 수 있나요? 민주국가에서 지켜져야 할 국가기관의 정치적 중립이 무너짐을 비장하게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한다면서 스스로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깡끄리 무시하는 행위를 하는 것에 문제를 전혀 못 느끼고 있는 것이죠. 이런 아이러니도 없습니다.


5. 과거 시국선언도 찬반투표 없이 했으니 이번 건도 문제없다?

흐강님은 과거의 시국선언 때도 학생들의 의사를 묻는 찬반투표를 하지 않고 했음으로 이번에 대학 총학들이 찬반투표 없이 시국선언을 한 것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 동안의 시국선언과 최근의 시국선언이 층위가 같다고 보시나요? 80년대 90년대까지야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수용되지 못했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과거에는 총학이 시국선언을 한다고 했을 때 학생들의 반대가 있었나요? 당시에는 정권 자체의 정통성이나 정당성에 하자가 있었으니 대부분 학생들이 총학이 시국선언을 하더라도 반발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동의하는 분위기였구요. 지금은 사안을 보는 시각이 학생마다 다르고 분명히 시국선언을 하는데 반대 의견이 있고, 또 반발하는 움직임이 농후합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하고 총학에 항의도 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상황이 다름에도 과거의 전례를 들어 비교하고 총학의 일방적 시국선언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온당한 것일까요?


6. 대학의 시국선언 문제는 현 국면이 중대하냐 여부가 아니라 총학의 비민주성에 있다

대학의 시국선언의 문제는 현 국면이 중대하냐 아니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총학이 학생들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총학 이름으로 하는 것이 온당하냐에 있죠.

현 국면(국정원 사건, nll 사건)이 중요한 문제이냐 아니냐는 대학생 각 개인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분명 있습니다. 연세대 총학 간부들이야 중대한 것으로 여기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 같고, 일부의 학생들은 총학의 시국선언에 반대하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총학 간부들의 특정 정치성향에 의해 대학 총학생회의 이름으로 시국선언이 발표되는 것은 정상이 아니죠. 총학 간부들이 하고 싶다면 개인 자격의 시국선언을 하면 됩니다. 이건 개인의 자유이고 누구도 안 말립니다. 이렇게 하면 되는데 왜 마치 연세대 전체 학생들의 의사인양 총학의 이름으로 시국선언을 하는냐 말입니다. 이 점을 아는 서울대 총학은 총학 명의의 시국선언은 아니다고 분명히 선을 긋고 있죠.


7. 2013년판 이순신 노적봉 전략

목포 유달산에는 노적봉이 있습니다. 이 노적봉은 이순신장군이 임진왜란 때 이엉으로 노적봉을 둘러싸게 해서 마치 수많은 군사들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 왜군들의 접근을 막으려 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죠.

연세대를 비롯한 총학들이 총학의 명의로 시국선언을 굳이 강행하여 노리는 효과도 이 이순신 전략이 의도한 것과 흡사합니다. 다만 그 목적과 진의가 확연히 다르지만.

총학이 학생들 다수의 의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총학 명의의 시국선언을 하는 것은 대중들에게 학생들 절대 다수가 현 국면을 중대하게 인식하고 새누리당과 박근혜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으며, 박근혜의 당선도 무효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죠. 이것은 여론의 왜곡이며, 불순한 선전선동입니다.

자칭 진보언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대 총학이 시국선언을 하지 않았는데도 마치 시국선언을 한 것인 양 보도하거나, 서울대의 찬반투표 결과를 89.6%가 시국선언에 찬성하는 것처럼 과대 보도하는 것도 역시 현대판 노적봉 효과를 보기 위함이죠. 찬반투표를 서명 참여 형식으로 하고 전체 학생 중 10%도 참여하지 않은 결과를 두고 마치 전체 학생의 89.6%가 시국선언에 찬성하는 것처럼 보도하는 것 역시 왜곡 보도이며, 정치적 기동의 일환입니다.

촛불집회에 400여개의 단체가 참여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작 참여인원은 1,2천명이거나 기껏 수천명에 불과한 것도 착시효과를 노린 선전선동술이죠. 전국의 정체불명의 단체가 거명되지만 정작 단체당 참여 인원이 평균적으로 3~4명도 되지 않는 형편이죠. 집회에서 깃발은 무수히 나부끼나 그 깃발이 얼마나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하는지 궁금합니다.

그 깃발들이 노적봉의 낫가리(이엉)가 될 수 없는 것은 그 목적과 진정성에 의문을 품는 국민들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