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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Evolutionary Explanlation Can There Be For Our Love of Art? (By Kevin Currie-Knight)
우리의 예술 애호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이 가능할까? (케빈 커리-나이트)
* 출처: 아마존 독자서평란
http://www.amazon.com/The-Art-Instinct-Pleasure-Evolution/dp/B004AYDB1M
In "The Art Instinct," Denis Dutton asks an interesting question: is there a way to explain our human prediliction
for art in evolutionary terms? How can this drive for art be seen as a trait instilled by the process of evolution?
Dutton's answers, unfortunately, turn out to be rather pedestrian, in that he (a) borrows and does not add to
the conclusions of others; and (b) focuses on "easy cases" of representative art as opposed ot cases that would be
more problematic for his theory.
<예술본능>에서, 데니스 듀턴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 인간들의 예술 애호를 진화론의 용어들로 설명할 방도가 있을까? 어떻게 이 예술 충동이 진화과정에 의해 각인된 특질로 이해될 수 있을까? 듀턴의 답변들은 유감스럽게도 그가 (a) 다른 이들의 결론들을 빌려오고는 거기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으며 (b) 그의 이론을 곤란하게 할 사례들보다는 재현적 예술이라는 “쉬운 사례들”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진부한 편인 것으로 드러난다.
First, Dutton outlays his very pluralistic theory of what constitutes art. He makes very good arguments against
the reigning culturally relativistic views (art is whatever we define it as). In its place, he offers twelve criteria that
art must have in order to be art (none of which are necessary or sufficient on their own). They are:
(1) gives direct pleasure; (2) exhibits skill and virtuosity; (3) novelty and creativity; (4) style; (5) ability to evoke
criticism; (6) representation; (7) special focus; (8) expressive individuality; (9) emotional saturation; (10) intellectually
challenging; (11) follows artistic traditions; (12) imaginitive experience.
첫째, 듀턴은 예술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그의 매우 다원주의적인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횡행하는 문화상대주의적 견해 (예술은 우리가 예술이라고 정의하는 일체의 것이다)에 대한 매우 훌륭한 반론을 행한다. 그 견해 대신 그는 예술이 예술이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열두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그것들 중 어느 것도 단독으로는 필요조건이거나 충분조건이 아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직접적 즐거움을 줌; (2) 솜씨와 기교를 내보임; (3) 새로움과 창의력; (4) 스타일; (5) 비평을 야기할 능력; (6) 재현; (7) 특별한 초점; (8) 표현적 개성; (9) 정서적 침윤; (10) 지적으로 도전적임; (11) 예술 전통을 따름; (12) 상상적 경험.
Dutton writes that while none of these critiria are necessary or sufficient, anything that is to be classified as art
must exhibit a greater or lesser degree of at least several of these traits. He certainly shows that even the most different
cultural definitions of art all have at least these criteria in common, and more importantly, that, regardless of culture,
we all have a human drive to admire things with these characteristics.
튜턴은 이 기준들 중 어느 하나도 필요조건이거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예술로 분류될 수 있는 어떤 것도 이 특질들 중 적어도 대 여섯 가지를 어느 정도로든 내보여야 한다고 쓴다. 그는 확실히 가장 상이한 문화적 예술 정의들조차도 모두 적어도 이 기준들을 공통으로 갖고 있음을, 그리고 더 중요한데, 어떤 문화에서든 우리 모두는 이 특성들을 지닌 사물들을 찬탄하는 인간적 충동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From here, Dutton's argument focuses on how to see art in evolutionary terms. While Dutton discount's Stephen
Gould's assertion that art (and human culture) is best seen as an evolutionary byproduct (while language may be
an evolutionary adaptation, love of poetry is a byproduct and has no adaptive value on its own). Dutton does little to
argue out of this, only suggesting that by-products of adaptive traits should themselves be seen as adaptive. (?!)
이 지점에서, 듀턴의 논변은 어떻게 예술을 진화론의 용어들을 써서 이해할 수 있는 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서 튜턴은 예술(과 인간 문화)은 진화의 부산물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는 스티븐 굴드의 주장 (언어는 진화적 적응일 수 있지만, 시 애호는 부산물이며 그것 자체로는 아무런 적응적 가치도 갖지 않는다) 을 무시한다. 듀턴은 그 주장을 논파하는 데는 거의 신경쓰지 않으며 그저 적응적 특질들의 부산물들도 그 자체로 적응적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제안할 뿐이다.
He then goes on to borrow heavily from Steven Pinker in his explanation for how representative art could have
served an evolutionary purpose. (Stories helped early humans learn information and acquire knoweldge of others'
experiences. Admiration for landscape art stems from early humans' abillty to recognize and judge landscapes.) Dutton
also borrows liberally from Geoffrey Miller's idea that art acquisition may have an advantage via sexual selection: like
the peacock's tail, art may be a way of conveying to mates one's sophistication, affluence, and civility.
그는 이어 어떻게 재현적 예술이 진화적 목적에 기여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면서 스티븐 핑커에 무겁게 의존한다. (스토리들은 초기 인류가 타인들의 경험으로부터 정보를 습득하고 지식을 획득하는 데 일조했다. 풍경화에 대한 찬탄은 경관들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초기 인류의 능력에서 비롯되었다.) 듀턴은 또한 예술의 획득은 성선택 과정에서 하나의 이점이 될 수 있다는 제프리 밀러의 생각을 자유분방하게 빌려 온다: 공작의 꼬리처럼, 예술은 짝짓기 상대들에게 자신의 세련됨, 부유함, 그리고 예의바름을 과시하는 방식일지 모른다.
My biggest problem with these explanations is that they focus on the easy cases of representative art. Dutton
dismisses 'dadaism' and abstract art as not really art, suggests that scents never developed into an art because they
are not reperesentative in nature, and is at a complete loss to explain music as an art (other than to rehash Darwin's
suggestion that love for music may stem from our affinity for language and bird songs.) And his discussion very
unknowingly dismisses that fact that, attached to our love for art is a love for decoration and style in the sense of
having nice looking things (bedsheets for instance). Very few of these fall within the purview of representative art,
which leaves all of this outside the purview of Dutton's narrow theory.
이 설명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것들이 재현적 예술이라는 쉬운 사례들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듀턴은 ‘다다이즘’과 추상미술을 실은 예술이 아닌 것으로 기각하며 냄새는 본성상 재현적이지 않기 때문에 예술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음악 애호는 언어와 새 노래들에 대한 우리의 친화감정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른다는 다윈의 제안을 되풀이하지 않고) 음악을 예술이라고 설명하는데 쩔쩔맨다. 게다가 그의 논변은 매우 무지하게도 우리의 예술 애호에는 멋지게 보이는 것들 (예를 들어 침대보) 을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장식과 스타일에 대한 애호가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이것들 중 매우 소수만이 재현적 예술의 범위에 들며, 따라서 그 범위에 들지 않는 것들은 모두 듀턴의 협소한 이론의 범위 밖에 남게 된다.
Quite honestly, I was very unconvinced by this book. I am VERY symapathetic to Dutton's desire to find an
evolutionary explanation for art, but do not dismiss as quickly as Dutton the 'byproduct' theory of Stephen Jay
Gould and Jerry Fodor. The theories that Dutton does expound are all borrowed, namely from Steven Pinker (The
Language Instinct) and Geoffrey Miller (The Mating Mind). Also, the application of his ideas is too narrow in its almost
exclusive focus on representative art (leaving music, abstract visual art, and the human prediliction for "nice looking"
non-represenative things untouched.
노골적으로 말해, 나는 이 책에 의해 전혀 설득되지 않았다. 나는 예술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을 찾아내려는 듀턴의 욕망에 매우 공감하지만 스티븐 제이 굴드와 제리 포더의 ‘부산물’ 이론을 듀턴처럼 성급히 기각하지는 않는다. 듀턴이 해설하는 이론들은 모두 스티븐 핑커 (<언어본능>)와 제프리 밀러 (<짝짓기 마인드>)에게서 빌려온 것들이다. 또한, 그의 관념들의 적용은 음악, 추상적 시각예술, 그리고 “멋지게 보이는” 비재현적 사물들에 대한 인간적 애호를 고려하지 않은 채 거의 배타적으로 재현적 예술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너무 협소하다.
칼도 / 와...정말 잘 읽어습니다. 이 사람 서평 실력이 장난 아니네요!
좋은 서평 번역해주셔서 감사하고요.
다만, "Dutton outlays his very pluralistic theory of what constitutes art." 이 문장 번역은 수정해야겠습니다.
아마 나이트는 진입장벽을 높이려는 고귀한 현대미술종사자 입장에서 의문을 던지는 모양새 같군요.^^
다른 방향에서 이런 조류를 비판한 톰울프의 [현대미술의 상실]을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예술이 문예화 돼간다는게 주요 골자였죠.
그는"봐서 아는 것이 아니라 아니까 보는 것이다."는 말로 관념화를 비판했습니다.
레디메이드라 불리는 뒤샹이후 펼쳐진 기성품의 개념화작업은 현학적요소들로 인해서
이를테면 그가 "샘" 이라고 명명한 변기는 보수적프랑스의 전시회 기간동안 구석에 처박혀 있었으나
뉴욕화단에서 재평가가 이루워 졌습니다.
비구상적 추상작업들도 팜플렛의 평론가적 이론을 접한 후에야 인지한다거나 혹은 대부분의 대중은
작품의 코디네이션 용도로만 인식할 뿐이죠.
사진에게서 재현력의 권좌를 내어주고 그 자리를 관념화로 채우게 되다보니 발생하는 현상일 것 같습니다.
케빈에게 재현력은 예술의 권위를 위협하는 진부한 것이 되나봅니다.
그렇다면 재현기술이 발전한 현대에 극사실주의가 대중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더튼의 강의를 테드를 통해 접해 봤는데요.
http://www.ted.com/talks/lang/ko/denis_dutton_a_darwinian_theory_of_beauty.html
보니까 진화적설명을 하고 있고 꾀나 설득력이 있어보입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예전에 예술은 기복적 성격을 띄고 나아가 생산수단의 소유와 번식에 유리한 자기과시에서
비롯된 심리기제가 유전자에 축적되어 왔고 현대예술은 그것의 발현과 전개과정이 마음속에서 부터
시작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나이트는 물질과 정신을 분리해서 보는 모양입니다.
뒤샹이 변기를 전시장에 갖다놓고 워홀이 스프캔을 전시한 것은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격이 떨어지는 것이고 또한 그것을 왜 설명 않하냐고 떼를 쓰는 아이 같습니다.
다다이즘도 결국 물질의 집합을 정신적으로 재조합해 표현 할 뿐인데도 말이죠.
개인적 취향과 같은 부산물로서의 예술들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 부분은 급속한 사회화와
대자본가의 출현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를테면 만조니가 자신의 똥을 캔에 담아서
작품이라고 내 놨을때 소수의 똥애호가들보단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소수의 자본에 의한
투자적 관점에서 예술은 물질적 정신적 인간의 소외를 발생시키며 진화적 과시의 변종으로서 적응되어
진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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