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신국선언 반대 연합>의 성명서 내용

 <저항의 방식은 지배의 방식을 답습하는가>라는 글에서 길벗님이 링크 걸어준 어느 일베회원의 연대총학 시국선언 반대론을 한번 읽어봤습니다. 주장인 즉슨, 절차적 민주주의 파괴를 규탄한다는 대의를 내세운 비판자들 자신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는 자가당착을 범하고 있다는 건데, 그러면 연대총학이 뭘 잘못했길래 비민주적 행태를 보여줬다는 걸까요?

 그 일베유저가 참여하고 있다는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시국선언 반대 연합>의 논거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투표절차에 관한 문제제기

 1) 투표참여율이 저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국선언을 강행했다. (2% 미만)
 2) 오프라인 투표가 이뤄지지 않았다.

  소결론 : 이런 이유로 결국 학생 총투표의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셈이다.

 2. 설문지 내용의 편향성

 1) 설문지 내용이 한 쪽의 일방적 주장만을 담은 것이었다.

  최종결론 : 연대총학의 시국선언문 시행과정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깡그리 무시하는 비민주적 행태를 노정하였다.



 2. 몇가지 의문점

 그런데 제가 보건대 이런 정도로 연대총학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깡그리' 무시했다고 할만큼 어마어마한 과오를 범했다고 딱 잘라 말하는 건 많이 앞서나가는 주장입니다.

 한번 생각해봅시다. 절차적 민주주의 파괴라는 저 일베유저의 비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시국선언 등과 같은 대외적 입장표명에 관련해 마련된 연대 총학회의 성문화된 규정과 절차를 연대총학이 어겼다는 주장을 하는 겁니다. 그러나 저 시국선언 반대연합의 글 어디에도 어떤 절차를 어겼는지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찾아볼 수 없죠.

 사실 저 시국선언 반대연합의 주장은 암암리에 아래의 전제 하나 깔고 있습니다.

 <시국선언과 같은 대외적 입장표명이 적법성을 띄려면 총학을 포함한 학생 모두가 합의하고 있는 일련의 구체화된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그 절차는 시국선언 반대연합이 성명서에서 언급하는 <학생 총투표>일 수도 있고, 또 뭔가 다른 형태의 절자가 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전 도대체 언제부터 한국에서 총학들이 시국선언 한번 할 때마다 학생총투표를 거치는 것이 성문화 혹은 불문화된 관습법적 관행을 띄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 사람들이 연대총학을 <절차적 민주주의 파괴자>라고 비판하려면, 우선  심히 의문스러운 저 암묵의 전제부터 정당화해야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문제의 글에서는 이런 노력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죠.

 실제로 총학 측에서는 저것이 투표가 아니라 단지 설문조사였을 뿐이었다고, 다시 말해 저처럼 학생들의 의견을 구하는 절차가 시국선언이라는 총학의 정치적 행위에 적법성을 부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아님을 강하게 암시하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대로라면 참가율이 2% 미만이었다 한들 딱히 문제삼을 소지가 없어지는 셈입니다. 오히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절차를 부러 고생하며 한 것이니 칭찬을 해줘야겠죠.

 이게 한쪽 말만 듣고서 연대 총학을 절차적 민주주의 파괴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성급한 짓이라고 제가 보는 한가지 이유입니다.

 그리고 절차적 정당성 여부와 별개로, 저 반대 성명문은 많은 논제들을 제기하면서도 이에 관해 그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고 있어요. 무슨 이유에서인지 침묵하고 있는데...

 우선 국정원 사태에 관해 본인들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죠. 이게 연세대 총학 시국선언의 절차적 정당성과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얼마든지 상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입장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1) 국정원 사태가 여야, 좌우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가 보편적으로 합의하고 중시하는 있는 가치와 규약을 어긴 사건이며,
 2) 대학사회의 대표성을 일부나마 띄고 있는 총학회는 이런 성격의 사건에 관해 그 입장을 표명하고 문제를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을 경주해야할 사회적 의무가 있는 조직이며
 3) 만약 위 두 조건 1) 및 2)가 성립하는 경우, 총학이 모종의 정치적 입장표명을 하기 위해서 개별적으로 학생총투표 등과 같은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할 이유는 없다.

 이건 대학사회가 맡아야 할 사회적 책무는 무엇이며 또 그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덧붙여 이번 국정원 사태는 우리 사회가 보편적으로 합의하고 있는 정치적 가치와 규범을 어긴 사건인가 등을 모두 아우르는 복잡다기한 문제들입니다. 이런 논점들을 일체 건드리지 않고서 연대 총학회 설문(혹은 투표)의 참가율 저조와 같은 단편적 사실 몇 개만을 들고나와 연대 총학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파괴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많이 따르는 주장이에요.  

이런 이유로, 전 저 일베유저가 참여하고 있다는 <시국선언 반대 연합>의 글에 시큰둥함을 느낍니다.
기본적인 '성의'와 '고민'이 담겨져 있지 않은, 날림성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