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는 세계에서 찾아보기가 힘든 대중적이고도 근대적인 여론정치를 했습니다.
우선 제도적으로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삼사를 통하여 관리들을 탄핵하고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직언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보장이 되었습니다.

또한 오늘날 대학생의 현실참여와 같은 성균관 유생들의 권당이 있었고 유림들이 지부상소를 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일개 유생이나 전 현직관리도 임금에게 직접 상소를 하여 자신의 뜻을 피력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바람직한 제도들이었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여론수렴 장치였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붕당싸움이나 정치권력싸움속에 악용되기 시작하면서 상대방의 허물을 찾아내고 과장하고 모함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임금 역시 이를 적절히 이용하여 권신들을 견제하는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남이장군 조광조, 이순신, 임경업 장군등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습니까?

조선 중,후기로 갈 수록 당쟁이 격화되어 탄핵과 유배가 일상생활이 되다시피하고 유능한 인재들이 유배로 인생을 끝냈습니다.
추사 김정희 고산 윤선도 다산 정약용등 대표적인 사람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상대당파의 허물찾기에 걸려들어서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고 낙마하였습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을 수없이 넘어뜨렸던 송시열 역시 사약을 받고 죽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일제시대와 6.25 군사독재와 압축경제 성장을 거치면서 안정되고 정상적인 삶을 살기가 어려운 시대적 환경을 지나왔습니다
즉 난세를 살아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노무현이 집권하면서 군사독재와 싸웟던 386 세력들이 재벌에게는 타협적으로 나갔으면서도 정치나 학계 관료세력에게는 적대적으로 대하였습니다.
그리고 권력을 연이어 상실한 새누리 세력은 상실감에 노무현 정부의 인사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검증을 시작하였으며 그러한 행위는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이명박 정부의 장관들과 주요인사 낙마로 이어졌고 급기야는 정권 말기에는 장관직을 제의하면 오히려 고사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박근혜 정부역시 김종훈 창조부 장관 내정자의 사례에서 보듯이 검증을 빙자한 여러가지 말들때문에 낙마한 사람들 사퇴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급기야는 그 반작용으로 변희재나 보수진영에서  좌파진영쪽 문화예술계 인사들에대한 뒷조사에 들어가서 조그만 흠이라도 찾으면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그 피해자들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아마 좌파의 반격이 곧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들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 공직자나 공인들의 도덕적 수준을 높이고 투명성을 제고한다는 순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서두에 말하였듯이 난세를 살아왔는데
웬만큼 사회생활하고 나름 업적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몇가지 안걸릴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 당시대의 기준에서는 소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반공개적으로 하다시피 한 일인 다운계약서 같은것등
또는 청탁전화를 하거나 받거나 하는 일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검증의 룰을 만들고 용인되는 가이드라인을 사회적 합의로 정치권이 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쓸만한 사람들은 숨어버리든가 아니면 죄다 상처를 입고 그저 무능하고 몸보신 주의로 살아온 사람들만이 살아남아 무사안일한 지도자들만 남을까 염려가 됩니다.

이제는 사회적으로 편을 갈라서 싸우더라도 주장과 논리로 싸워야지 사람을 죽이는 방식으로 싸워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우리 민족의 역량을 갉아먹는 일이 되기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흠이 있어도 국가를 위해 큰 유익을 준 인물들이 많습니다.
우리 개인들을 보더라도 흠에도 불구하고 장점이 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 아크로에서도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사실 사람들의 단점을 지적하고 비난을 하는 일이 주로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필요한 견제이기도 하고 현명한 지도자를 찾아내는데 필요하기도 합니다.
다만 사람을 죽이는 일은 신중히 해야 할 것입니다.
쥐를 잡으려다 장독을 깨는 우를 범하기 쉽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