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이 노무현 정부에 비해 특별히 엉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4대강 같은 예외는 있지요. 하지만 그것은 이명박 개인의 퍼스낼러티와 관계를 맺는 일종의 해프닝에 불과합니다. 대한민국 보수의 진짜 정체성과는 상관이 별로 없으며, 그러므로 중요한 얘기가 아니죠. 우리는 결국 기득권 세력 전체를 논의해야지, 이명박 개인의 실수나 멍청함에 몰입해서는 안됩니다.

대기업 위주의 예산편성, 부동산 세금 감면, 언론장악(?)외에 이명박 정부의 정치가 특별히 서민의 삶을 어렵게 한다고 확언할수 있을까요? 물론 가진자 위주의 정책이 당장에 서민의 삶을 어렵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장기적 효과를 노리고 하는 측면도 있지요. 하지만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 운용이 실제로 노무현 정부에 비해 돌출적으로 가진자 위주의 것으로서, 정치 경제적 생태계 질서를 파괴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냐는 겁니다. 저는 거기에 대해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이 노무현 정부에 비해 좀더 노골적일뿐, 관료-법조-재벌연합이 형성한 경제 운용의 프레임워크에 구속되어 있는 것은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나 매한가지라고 답하고 싶네요.

어떤 마인드를 갖고 임하냐에 관계 없이, 놓여진 레일이 동일하므로, 나오는 아웃풋도 비스무리할수 밖에 없지요. 물론 마인드의 차이는 중요합니다. 그 차이가 우리가 이토록 개혁진영과 보수 진영을 구별해 관념하며 이명박 정부(보수 진영)의 집권을 결사 반대하는 이유겠지요.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웬만한 정부는 저 3두 지배체제가 깔아놓은 레일에서 이탈할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정치 세력의 "마인드"에 촛점을 맞추고 이명박 정부를 증오하는 세력만큼이나, 철저하게 아웃풋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이명박과 노무현을 자유롭게 왔다 갔다하는 캐스팅보트 진영도 차고 넘친다는 것을 이해할수 있겠습니다. 물론 "노명박"이 진보 담론에서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도요.

저는 그래서, 저번에도 말했지만, 거시 경제가 그럭저럭 돌아가고, 4대강 사업이 대충 끝날경우, 중도 개혁 진영은 앞으로 한 20년간 정권을 못 잡을것 같습니다. 연대요? 네. 흩어진 세력들이 합쳐지면 원래의 세를 회복할수 있겠죠. 하지만 효과는 그 정도에서 끝날것이며, 저쪽은 그 합쳐진 세에 상당한 타격을 가할 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합쳐진 세라고 해봤자, 200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얻은 표 정도가 최대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노무현 효과, 한명숙 효과, 유시민 효과... 인물 내세운 약발, 오래 안갑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봤을때, 중도 개혁 진영은 큰 부메랑으로 돌아올수 있는 그놈의 "이명박 악마화하기" 전략좀 그만 써먹고, 차분하게 정책 연구나 하는 것이, 고난의 미래에서 생존할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도 만약 한나라당이 흡사 박정희 식으로 우파 국가주의 기조를 가지고 신자유주의-재벌체제에 칼을 들이댈 경우, "선한 자민당"이 되서 장기 집권하는 것을 막을수가 없습니다. 물론 기득권 세력의 속성을 고려해 봤을때 그건 어려운 일입니다만, 우리는 한나라당이 민정당 티를 벗고 "자유주의 정당"으로 성공적으로 탈바꿈 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이 "예전에는 좀 나쁜짓도 했지만", 정신 차리고 제대로된 국가주의 우파 정당으로 거듭나 테디 루즈벨트 같이 "강도 남작 자본주의"를 때려 잡는 용단을 내려 진보 좌파 진영을 감동시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나요? 5.18-6.10에 기댄 민주화 담론의 약발은 더욱 떨어질것이며, 개혁진영이 실제 정책에서 한나라당에 비해 더 서민을 챙겨주지 않는 이상, 서민들로서는 중도 개혁진영이 분배 영역에서 보수 정당에 비해 갖는 비교우위를 딱히 체감할수 없을 것입니다. 박세일의 "공동체 자유주의"와 노무현의 "좌파 신자유주의"간에 분배 수준에 대한 엄청난 이견이 존재할거라고 보십니까? 

뭐, 그렇다고 해서 제가 진보 좌파 처럼 보수 우파(=노무현=이명박)/진보 좌파의 이분법을 가진것은 아닙니다. 이 잣대는 80년대 논의되었던 사구체 논쟁의 21세기 버전으로서, 신자유주의가 악이라는 도식에 바탕을 두고 사회 현상을 연역적으로 꿰맞춘 단순론이죠. 이 논리는 중도 개혁의 "마인드"를 무시하는데, 저는 그 "마인드"가 굉장히 중요하며, 오히려 현실에 마인드를 적용하는 과정이 진보 좌파의 연역적 논리보다 대한민국을 변화시키는데 더 크게 기여할거라고 봅니다. 노무현 정부는 현실에 압도되느라 마인드를 엉뚱한 영역에서 과잉 응용했지만(소위 "권위주의 타파", 언론과의 전쟁, 과거사 청산등의 사회개혁)제대로된 방향성을 가진 개혁 세력이 중요한 영역에서 차근 차근 변화를 추동해 나간다면, 그것이 우리가 목표해야 할 지점이 되겠죠. 그래서 김대호 소장님 같은 분이 분투를 하고 계시는 것이고요.

이런 현실적 노력, 대안 마련이 중요하지, 진보 좌파와 연대 하느냐 마느냐는 다음 문제라고 봅니다. 진보 좌파와의 이념 논쟁으로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은 좋지만, 연대에 너무 매달리는 것도 결국 당장의 집권만을 염두에 둔 행태입니다. 그리고 유시민 같은 소위 영남 친노들도, 지역의제는 그만좀 꺼내고, 그냥 이념 얘기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영남이 불리할법할때는 지역의제에 대해 침묵 모드로 일관하는 분들이, 꼭 호남이 불리할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반지역주의자가 되는데, 이런 모순을 지적하기도 이제 질렸으니, 그냥 제발 이념갖고만 얘기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럼 호남 리버럴로서 그분들과 함께 못할것도 없습니다.



ps. 그나저나 제가 인터넷 하면서 거의 처음으로 정을 붙인 아크로 사이트인데, 너무 한산해서 좀 그렇네요. 물(?)이 흐려지지 않는 범위내에서, 좀 북적북적해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