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사회디자인연구소의 길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지난 해 사회디자인연구소는 좀 머쓱하게 되었다. ‘집권 가능한 진보 정당 건설’이라는 당찬 포부가 무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좋은 정치와 좋은 정당을 꿈꾸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북적될 것을 기대하고 ‘좋은 정치 포럼’이라는 공공의 광장을 열었는데 오는 사람들이 없어 결국 우리 연구소의 안마당처럼 되어 버렸다. 그래서 홈피 간판을 왜 사회디자인연구소로 하지 않고, 좋은 정치 포럼으로 했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 당연한 일이다. 이런 식이면 굳이 좋은 정치 포럼이라는 간판을 사용해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걸었던 포부와 간판이 무색하게 된 것은 담대한 꿈을 어느 정도는 담보할 수 있는, 정당 활동에 비교적 친숙하고 질량도 좀 되는 전국적 네트워크가 (당초의 암묵적 합의 내지 기대와 달리) 연구소의 컨센서스와 무관한 행보를 하였기 때문이다. 2008년 늦봄쯤, 일부지만 이 네트워크의 몇몇 주요 인물들과 의기투합하여 같이 사회디자인연구소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이 네트워크는 2008년 가을 경부터, 2010년 지방선거를 대비하여 독자적인 정당(국민참여당) 건설 행보를 시작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애초부터 이 네트워크의 중심적 컨센서스와 현재 연구소의 중심적 컨센서스는 상호 융합(침투)되지 않았던 듯하다. 물론 2008년 말부터 2009년 초까지 몇 개월 동안 양쪽의 컨센서스를 융합해보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별무신통이었다. 상당한 질량과 함께 2002~2004년 개혁당, 열린우리당 시기에 형성된 조직 유전자(기본 컨셉, 문화, 정서)를 가진 이 네트워크는 거칠 것이 없었다. 물론 중간에 지체 서행도 있었다. 하지만 노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이 이른바 ‘친노’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높이고, ‘친노’에 애정이 있는 사람들의 분노와 행동의지를 촉발시켜 독자 정당의 자양분이 되었다. 지난 11월에는 진보개혁 진영의 슈퍼스타 유시민의 참여에 힘입어 더욱 큰 힘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연구소 네트워크가 그리던 모양도, 방식도 아니지만 잘 되기를 빌 뿐이다. 연구소가 그리던 모양과 방식도 검증이 되지 않는 가설일 뿐이다.

 

 

물론 2007년 ‘성찰과 모색을 위한 토론 모임’-2007년 5월 ‘후보가 아니라 가치다’, 2007년 8월 ‘통합이 아니다 가치다’를 슬로건으로 한 토론회를 개최했다-과 참여정부, 열린우리당, 대선, 총선에 대한 평가 반성을 통해서 공고해 진 사회디자인연구소의 중심적 컨센서스를 실천(실험)하는 것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국민참여당과 사회디자인연구소를 공히 아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죄송스런 마음을 억누를 수 없다. 이유야 어떻든 2008년 연구소 출범시의 소박한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2009년은 국민참여당 네트워크가 빠져나가면서 휘청대던 연구소를 복구, 정상화시킨 한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사회디자인연구소도 국민참여당처럼 2010년을 거대한 도전과 희망의 해로 생각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의견 대립이 생기면서 양쪽의 컨센서스의 차이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사회디자인연구소의 컨센서스가 무엇인지, 2010년, 2011년, 2012년 아니 그 이후에도 사회디자인연구소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해졌다. 이 글은 이것을 밝히기 위함이다. 2009년을 거치면서 보다 선명해진 사회디자인연구소의 컨센서스는 다음과 같다.

 

 

1.진보개혁 세력이 다시 역사의 주도권을 쥐는 관건은 국가경영 능력(경륜)이다. 위대한 생각, 사람(선수), (조직)문화이다. 다시 말해 그 수명이 다한 박정희, 김대중 플랫폼을 뛰어넘는 새로운 플랫폼(가치, 비전, 정책)과 이를 공유하는 다양한 부문/층위의 두터운 선수층(인재 풀)과 선진적인 조직 문화가 진보개혁 세력 사활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2.국가경영 능력은 일조일석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촛불 시위 일으키듯이) 바람으로 권력을 잡고, 사방에 널린 교수, 관료 등 전문가들을 잘 발굴, 배치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어차피 교수들은 관료의 상대가 안 되니) 또 한 번 관료 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진보개혁을 표방하는 집권 세력의 준비가 미약하면 대한민국은 비교적 잘 준비된 기업연구소와 관료가 깔아놓은 레일을 달려갈 수밖에 없다. 큰 수술과 더불어 침, 뜸, 식이요법, 운동요법이 동시에 필요한 중환자 대한민국에게 단지 침, 뜸, 식이요법, 운동요법만 처방하는 의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로 인해 환자의 고통이 극심하면 기존 의사를 내치고 성질은 더러워도 뭔가 확실히 다르게 할 것 같은, 유능해 뵈는 의사에게 몸을 맡기는 법이다. (진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게 만드는 언론 지형도 상수이다)

 

 

3.국가경영 능력은 꽃꽂이하는 마인드가 아니라, 거대한 숲을 가꾸는 마인드가 있어야 생겨난다. 촛불시위 조직 마인드 및 유통 벤처 마인드(떴다방 마인드 등)와 더불어 제조업 벤처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대체로 제조업 벤처는 오랫동안 숙성시킨 비장의 기술이 있고, 우직한 농경적 마인드가 있다.

 

 

4.진보개혁 성향 사람들을 주된 기반으로 하여 정치를 하려면, 무엇보다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그리고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개혁당(참정연), 한겨레, 경향신문, 민주노총, 전교조, 참여연대 등의 성과, 한계, 오류를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마디로 이 시대 진보,개혁이 무엇인지, 과거의 진보,개혁과 (세계관, 가치관, 정치노선, 조직노선에서) 어떻게 다른지를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5.사회디자인연구소는 좌파신자유주의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았던 참여정부의 정책의 큰 방향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엄청나게 많이 남아있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외상값(바닥현실)을 바로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인체라면 뇌 깊숙한 곳부터 말초까지 그 핵심 문제와 급소와 선수를 알지 못하고 요란한 치료에 임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비자, 마키아벨리, 박정희, 등소평과 달리 작은 권력을 휘두르는 존재들의 행태에 대한 통찰도 미흡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칭 진보 세력의 이념적, 문화적 지체가 얼마나 심한지, 참여정부를 포함한 진보개혁 세력이 그 포부에 비해 얼마나 가진 것(이념, 정책, 조직, 문화, 물적 기반 등)이 없는 집단인지 알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진보개혁 세력 전체가 자신의 역량을 냉철하게 타산하지 못하고, 엉뚱한데서 변죽을 올렸기에 너나 할 것 없이 좌익맹동주의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6.소정의 당비 내고, 활동하면 1/n의 주인 자격 준다는 원리로 일단 정당을 만들고 나서, 강령, 정책을 얘기하고, 사회가 먹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언감생심이다. 오히려 평소 자신의 직업, 직능을 통해, 또는 대중 운동(활동)을 통해 먼저 사회(주변)가 먹어 주는 사람이 되고 나서 자신이 참여하는 정당이 먹어주기를 기대해야 한다는 얘기다. 마치 기독교 신자들이 전도를 할 때, 성경 말씀을 전하기 전에 (스스로 복음대로 행동하여) 불신자들의 신뢰를 얻어야 것처럼! 기독교계의 상식은 ‘세상 사람들 100명 중 1명 정도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알게 되며, 나머지 99명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의 평소 행실을 보고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과 정당도 다를 리 없다. 사람들은 정당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주도하는 사람들의 평소 행실을 통해서 그 정당의 강령, 정책, 비전을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 강령, 정책이 아무리 참신해도 그 지도자들, 중간 간부들, 구성원들의 평소 행실이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면 지지율이 오를리가 없다.

 

 

(하지만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그것도 국민적 증오와 분노가 넘쳐날 때에는 양대 정당이나 간판급 정치지도자에 대한 지지율은 좀 다르다. 더 미운 놈을 혼내주기 위해서 평소 지지율은 낮아도 투표 때는 껑충 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촛불시위에서 보았듯이 시위라는 것은 그 주동, 주체가 누구인지 묻지 않고, 옳으면 힘을 보태주곤 한다. 아마 이 때문에 정당을 할 때 평소 행실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나 생각된다.)

 

 

7.이념, 정책적 측면의 컨센서스는 식상할 정도로 많은 얘기를 하였다.

긴 얘기 짧게 줄이면 이렇다. 거대하고 복잡한 대한민국을 깊숙하게, 그러면서도 종합적, 균형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대한민국은 오른쪽으로 확 굽은 사회이자, 왼쪽으로도 꽤 굽은 사회라는 것, 이는 개인과 이익집단은 유능하고 강성한데 반해 공공(정치, 행정, 사법, 언론 등)이 무능하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좌파적 개혁과 우파적 개혁의 결합, 병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분단, 냉전,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로 인해 국가의 권능이 과도하고 재벌.대기업 역시 결코 시장 질서를 자신이 유리한 곳에서만 받아들이기에 자유주의 시장주의적 개혁이 한국에서는 여전히 진보, 개혁적이라는 것, 국가질서와 시장질서(게임규칙)를 창조하고 규율하는 정치가 제 역할을 다하도록 제도(헌법,선거법 등 정치관계법)를 만들고, 훌륭한 인재들이 정치 분야로 모여들도록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른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에는 제대로 된 정치가 층=국가경영전문가 층이 없고, 구조적으로 이 층이 형성되기 힘들다는 것, 미국, 유럽, 일본에서 성장한 경제사회 개혁이론은 한국에 잘 맞지 않는 다는 것(이데올로그들이 독특한 한국 현실을 천착하지 않으면 사상.이념의 오퍼상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 등이다.

 

 

이런 컨센서스 하에서 사회디자인연구소의 2010년 주력사업은 다음과 같다.

1. 기본 사업을 지속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일찍이 <노무현 이후>를 통해 개괄적으로 제시한 진보개혁의 새로운 플랫폼(가치, 비전, 정책 대강)을 잘 다듬고, 이 플랫폼 위에 올려놓을 세부 정책들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여러 전문가들과 소통, 교류하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새로운 컨텐츠 생산에 투자를 아끼지 않을 작정이다.

 

 

2.긴 호흡으로 정책 마니아 집단 내지 ‘30Society’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과거 30년을 돌아보고, 미래 30년을 내다보면서, 한국 사회가 아직도 해법 자체를 갖고 있지 못한 30개의 주요 Agenda를 1년이고 2년이고 물고 늘어져 해법을 내는 30개의 전문가(연구자, 시민운동가, 정치가) 연구,토론 모임을 만들겠다는 얘기다. 단적으로 한국은 아직도 진보와 보수의 정책적 아이디어를 유기적으로 통합한 일자리 해법이 없다. 가장 잠재력이 뛰어난 청년들이 시장으로부터 먼 쪽(국가의 규제산업인 의,법,관)으로 달아나는 현상을 제어할 해법도, 이왕 투입된 청년인재들을 활용할 해법도 없다. 대학 진학률 84% 문제, 대학 구조조정 문제, 시장/사회와 대학/지식인집단이 따로 노는 문제, 수명을 다한 행정체계와 헌법 문제, 보건의료복지 문제, 거대한 3비층 문제, 벤처중소기업 육성 문제, 유연안정성과 사회연대성 적용 문제 등등 해법은 아는데 실행할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해법 자체를 모르는 문제가 숱하게 많다. 이 대부분은 전공을 뛰어넘고, 부문(이론, 실물, 강단, 관료, 정치 등)을 뛰어넘는 연구, 토론이 필요하다. 물론 곳곳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는 세미나, 심포지엄은 많이 열리지만 이런 Agenda를 질기게 물고 늘어져서 해법을 내겠다는 집단은 거의 없다. 사회디자인연구소는 올해 몇 개나마 남들이 잘 안하거나 못하는 과제를 다루는 Task Force Team을 만들려고 한다.

 

 

3.지방정부용 컨텐츠 생산 사업이다. 이는 연구소의 재정사업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서울시를 놓고 보면 오세훈 시정의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가 서울시를 경영하면 오세훈과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자신 있게 얘기하기 어렵다. 지난 1년간 서울시를 연구해 보니, 지금 서울시장을 뛰겠다는 사람들의 서울시정에 대한 비판 수준이 매우 얕다는 느낌이 든다. 진보개혁 진영 어디서도 서울시를 깊이 연구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이명박 정부는 국회와 언론과 시민사회가 깊숙이 파헤치고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오세훈의 서울시정은 (등잔 밑이 어둡다고) 비판의 무풍지대이자, 자신의 치적을 침소봉대하는 광고마케팅의 광풍지대이다. 서울시가 이럴진대 다른 지자체는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드물게도 진보개혁 성향의 지방정부가 있는 곳은 주로 토건족이나 토호들이 경영하는 언론아닌 언론들이 말이 되든 안 되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니 비난, 음해는 풍성하다)

 

 

4. 연합정치 관련 사업이다. 이는 최근에 몇 개의 글로 표현하였다. 이는 잘 되면 깨어있는 시민들 수십만 명이 정치적으로 조직되고, 동시에 2010년 지방선거도 압승하겠지만, 무엇보다도 2012년 대회전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진다. 연합정치, 통합정치가 활성화되면 지금 쪼개져 있는 수많은 정치사회 역량들이 하나 또는 두 개의 제대로 된 정치조직으로 모이지 않을까 한다. 수많은 지류들이 한강에서 만나듯이…….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