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옷을 입으면 성범죄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이명신 경상대 교수 등이 지난해 경남 3개 중소도시 경찰서와 파출소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17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경찰관 182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3.8%여성의 심한 노출이 성폭행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의 심한 노출이 성폭행의 원인이다?

http://www.segye.com/Articles/NEWS/SOCIETY/Article.asp?aid=20130617004106&subctg1=&subctg2=&OutUrl=daum

 

On January 24, 2011 Constable Michael Sanguinetti spoke on crime prevention, addressing the issue of campus rape at a York University safety forum at Osgoode Hall Law School. He said: "I've been told I'm not supposed to say this – however, women should avoid dressing like sluts in order not to be victimized."

http://en.wikipedia.org/wiki/Slutwalk

 

캐나다 경찰 중 오직 Michael Sanguinetti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한국이나 캐나다에서 경찰들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이런 생각을 강간에 대한 신화(rape myth)라면 비판하는 것도 이런 믿음이 널려 퍼져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 같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을 했다:

 

첫째, 여성주의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야한 옷과 성범죄 사이에는 어떤 관계도 없다”고 단언하는데 그런 단언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희박해 보인다. 그 정도 단언을 위해서는 상당히 강력한 증거가 필요한데도 그들은 그냥 우길 뿐이다.

 

둘째, 성범죄 중 몰카의 경우에는 야한 옷을 입으면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굳이 엄밀한 연구를 해 볼 필요도 없어 보인다.

 

셋째, 몰카 이외의 성범죄의 경우에도 “야한 옷을 입으면 성범죄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라는 가설이 내가 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된 실증적 근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판단을 유보하겠다.

 

 

 

첫째와 둘째의 경우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여성주의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야한 옷과 성범죄 사이에는 어떤 관계도 없다”고 단언한 것이 아니다 “근거도 없이 야한 옷과 성범죄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우기는 사람들”을 비판한 것일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기대학교 이수정 교수는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범죄심리학 박사다. 교정에서 프로파일러를 양성할 뿐 아니라 대검찰청 과학수사과의 자문위원으로서 연쇄살인마 유영철 사건수사에 참여하는 등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는 해당 분야의 대가다.

그런 그녀가 성범죄와 여성들의 야한 옷차림과의 관계에 대해서 의견을 내놨다.

이 교수는 지난 28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한국성폭력상담소 개소 20주년 기념토론회성폭력 정책, 현장에서 듣다에 참가해야한 옷차림이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것은 잘못된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정상적인 남성이라면 야한 옷차림의 여성을 보고 성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범죄를 저지르는건 성욕이 아니라 억제력에 달린 문제다라며야한옷차림은 성범죄와는 무관하다라고 말했다.

‘야한 옷차림이 성범죄를 유발한다고?

http://www.fnnews.com/view?ra=Sent1201m_View&corp=fnnews&arcid=111129150759&cDateYear=2011&cDateMonth=11&cDateDay=29

 

이수정 교수의 말이 단언으로 보이지 않는가? 나는 여러 나라를 계속 뒤져보면 이런 단언을 수도 없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야한 옷과 성범죄 사이에는 어떤 관계도 없다”를 뒷받침한다고 대는 근거들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이미 비판한 적이 있다.

 

무슨 근거로 야한 옷이 성범죄를 유발하지 않는다고 믿는가?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461

 

야한 옷을 입으면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질까?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465

 

 

 

내가 알기로는 몰카(물론 성범죄로 분류되는 몰카를 말한다)의 경우 주로 속옷, 가슴이나 엉덩이 부분의 드러난 살, 달라붙은 옷을 입어서 드러낸 몸매 등을 노린다. 그리고 그런 몰카를 찍을 수 있는 옷은 보통 야한 옷이다. 따라서 야한 옷을 입으면 몰카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너무나도 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가 이런 상식을 뒤엎는 연구를 제대로 해서 발표한다면 내 생각을 바꿀 것이다. 세상에는 누구나 다 믿던 상식이 뒤엎어지는 경우도 있다.

 

 

 

셋째의 경우 생각이 바뀌었다. 이미 다른 글에서 내 생각이 어느 정도 바뀌었다는 점을 암시하는 구절을 썼다.

 

이런 반박에는성욕은 성범죄와 무관하다는 가정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이런 반박이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범죄심리학 박사라고 하는 이수정 교수의 반박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야한 옷을 입으면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질까?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465

 

 

 

내가 “야한 옷을 입으면 성범죄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라는 가설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세 가지다.

 

1. 남자는 여자를 성녀(Madonna, 청순)/창녀(whore, 걸레) 이분법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진화 심리학자들 중에는 이것이 남자가 여자를 그렇게 보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여성주의자들은 사회화 때문이라고 보기는 하지만 남자에게 그런 이분법적 사고가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 듯하다.

 

만약 남자가 야한 옷을 입은 여자를 창녀(창녀 같은 여자)로 본다면 상대적으로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성범죄를 일으키기 쉽게 만들 수 있다.

 

아래 연구는 남자가 실제로 야한 옷을 입은 여자는 당해도 싸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Abstract: A vignette depicting a date rape was presented to 352 male and female high school students. To investigate the effect of the victim's clothing on subjects' judgments of the date rape, the vignette was accompanied by either a photograph of the victim dressed provocatively, a photograph of the victim dressed conservatively, or no photograph. Subjects who viewed the photograph of the victim in provocative clothing were more likely than subjects who viewed the victim dressed conservatively or who saw no photograph of the victim to indicate that the victim was responsible for her assailant's behavior, that his behavior was justified, and were less likely to judge the act of unwanted sexual intercourse as rape.

The influence of victim's attire on adolescents' judgments of date rape.

Cassidy L, Hurrell RM.

http://www.ncbi.nlm.nih.gov/pubmed/7676869

 

 

 

2. 남자가 야한 옷을 성교나 애무나 성적 대화로의 초대로 파악할 가능성이 있다.

 

진화 심리학계에는 오류 관리 이론(error management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 뱀을 뱀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면 뱀에 물려 큰 해를 당할 수 있다. 즉 잘못된 인식의 비용이 크다. 반면 뱀이 아닌 것을 뱀으로 인식하면 잠깐 두려워하면서 피하는 비용 정도만 치르게 된다. 따라서 인간이 뱀이 아닌 것을 뱀으로 오해하는 쪽으로 오류를 더 많이 범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 오류 관리 이론의 핵심이다.

 

비슷한 원리를 남녀 관계에 적용할 수 있다. 여자가 추파를 던졌는데 못 알아채면 성교 기회를 날릴 수 있다. 반면 추파가 아닌데 추파로 오해하면 잠깐 뻘쭘해지는 비용을 치르게 된다. 따라서 남자가 추파가 아닌 것을 추파인 것으로 오해하는 쪽으로 오류를 더 많이 범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Haselton, M.G., & Buss, D.M. (2000). Error management theory: A new perspective on biases in cross-sex mind read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8, 81-91.

http://homepage.psy.utexas.edu/homepage/Group/BussLAB/pdffiles/Error_Management_Theory_2000.pdf

 

만약 남자가 그런 식으로 진화했다면 여자의 야한 옷을 성적 초대로 오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인식이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3. 야한 옷을 입으면 남자가 성적으로 흥분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리고 성적 흥분은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보통 성적 욕망이 성범죄의 동기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성적으로 흥분하지 않은 상태보다 성적으로 흥분한 상태에서 성범죄가 일어나기 쉬울 것이다.

 

 

 

위에 나열한 세 가지 요인 분석이 나에게는 여전히 꽤 그럴 듯해 보인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야한 옷은 다른 방향으로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a. 남자가 야한 옷을 입은 여자를 볼 때 기가 센 여자 또는 자기 주장이 강한 여자로 인식하고, 수수한 옷을 입은 여자는 소심한 여자로 인식할 수 있다.

 

다른 조건이 비슷하다면 남자는 만만한 여자를 범행 대상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따라서 야한 옷이 성범죄를 막는 방향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Sexual harassment is about power; therefore, a target who is dressed provocatively is not the ideal target for the would-be harasser, who appears motivated at least in part by his ability to dominate his victim. Provocative dress does not necessarily signify submissiveness but instead may be an indication of confidence and assertiveness.

SEXY DRESSING REVISITED: DOES TARGET DRESS PLAY A PART IN SEXUAL HARASSMENT CASES?

THERESA M.BEINER

http://scholarship.law.duke.edu/cgi/viewcontent.cgi?article=1109&context=djglp#H1N3

 

 

 

b. 야한 옷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으면 범행을 들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 상황에서는 자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지하철 성추행의 경우 이런 요인 때문에 야한 옷이 성범죄를 막는 방향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나의 직관으로는 1, 2, 3a, b를 정량적으로 고려해서 잠정적 결론도 내릴 수 없다. 즉 어느 요인이 더 강력한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내가 고려하지 않은 중요한 요인들도 있을지 모른다. 결론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실증적 근거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야한 옷을 입으면 성범죄(몰카 제외)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가 그럴 듯해 보이는 가설이라는 생각조차도 (적어도 잠정적으로는) 포기하게 되었다.

 

어쩌면 문화권에 따라, 범죄 유형에 따라 야한 옷의 효과들의 총합은 성범죄를 당할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성범죄를 당할 가능성을 낮추는 쪽으로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지도 모른다.

 

 

 

이덕하

2013-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