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이어서 계속 한미FTA에 관한 글입니다. 이번에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를 읽은 관계로, 주로 그 책에 나온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3.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미FTA 추진에 대해서 일부 노무현 지지자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한미FTA가 옳으냐 그르냐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그런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노 대통령은 "우리가 먼저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런 자세는 이라크 파병 때와 비교된다. 미국과 관계 맺는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라크 파병 건에서 미국은 그에게 내키지 않는, 회피하고 싶은 결정을 하게 압력을 가한 강대국이다. 한미 FTA 때는, 노무현 대통령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미국은 그에게 압력을 넣는 강대국이 아니라 우리가 선제적으로 개척해야 할 시장이다. 수동성과 능동성의 차이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192p~193p 중에서
 
  보시다시피,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FTA에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미국의 압력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의견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평가포럼 연설에서도 한미 FTA 반대론자들을 비판했다. 그는 미국 압력론, 반미론에 정면 대응했다. "미국의 압력 때문에 FTA를 추진한다는 논리는 미국 콤플렉스에서 나온 것이며 그런 사대주의적 사고는 버려야 한다."고 했다.
 "제가 우리 국민들의 자존심을 그렇게 허투루 생각하는 대통령은 아닙니다. 압력이라는 용어를 자꾸 쓰고 있는데, 이건 여러 나라 사이에 상호 간 여러 가지 통상관계에서 요구 조건들을 내걸고 여러 가지 주장을 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우리도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는 것이 국가 간의 보편적인 현상인데, 왜 하필이면 미국 말만 나오면 압력이란 표현을 씁니까? 콤플렉스입니다. 미국 콤플렉스, 미국 콤플렉스는 뒤집으면 일종의 사대주의적 사고입니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198p~199p 중에서

 왜 미국 말만 나오며 압력이라는 표현을 쓰는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야기는 넘어가고...한미FTA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어쩔 수 없었다라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상당히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위 인터뷰가 행해진 시점이 아직 임기 중인 2007년 6월이었고 2007년 4월에 한미FTA 협상이 타결된 만큼 솔직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던 상황은 아니라고 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는 '우리 역사의 기록에는 잘못된 선택으로 남을 것이라고는 생각한다'고 비교적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도 했고, 퇴임 후에도 심상정 당시 진보신당 대표와의 서신 토론에서 한미FTA를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봐도 미국 측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대선과 맞물리기 때문에 참여정부 임기 내에 한미FTA의 효과를 보는 것은 무리였고-그렇기 때문에 한미FTA 추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는 생각을 더더욱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 역시 민주당 내의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이나 버락 오바마가 한미FTA를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미국 측에서 한미FTA를 강력하게 요구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부시 정권에 대한 환멸로 인해 중간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승리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았고, 따라서 한미FTA가 폐기되거나 그렇진 않더라도 지금 상황처럼 별로 중요하게 논의되지 않고 붕뜬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고 봐야죠. 그런 점을 감안했을 때 미국에서 한미FTA에 대해 강력하게 압력을 넣었을 가능성은 별로 없었을 거라고 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이렇듯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나 당시 정황을 봤을 때나 '한미FTA 추진은 미국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게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을 떠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지고 있던 '한미FTA를 해야 뒤처지지 않는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라 보는 게 아마 객관적인 평가일 듯 합니다.


4.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역사의 사실을 무시하는 사람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역사의 사실을 무시하는 사람들 정도로 취급합니다. 그동안 개방의 문제에 있어서 진보주의자들이 주장해왔던 개방의 부작용들이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우선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에게 역사의 사실을 존중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과거로부터 법칙을 배우고 그 법칙으로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 아닙니까. 진보주의자들이 주로 개방의 문제와 관련해서 그동안 주장했던 것이 그 이후에 사실로 증명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은 예를 이렇게 들었다.
 "예를 들자면, 1980년대 초반에 외채망국론, 나도 열심히 강연하고 다녔습니다. 책 읽고, 팸플릿도 읽고. 그런데 일면의 논리는 있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 WTO(세계무역기구) 가입 반대도 했지요. 그런데 만약 그때 우리가 WTO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한국이 어떻게 되었을 거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그때 야당 국회의원이라서 쉬운 대로 안주거리처럼 OECD 가입을 반대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OECD이 지금 와서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좀 맞지 않는 것 같고요......"
 '쉬운 대로 안주거리처럼' 반대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대통령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이후에도 이제 우리나라 서비스업, 특히 유통업의 개방이 많이 있었고 또 한-칠레 FTA까지 개방이 있었지만 이 개방 문제는 별 문제 없이 다 넘겨왔습니다. 내가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아마 진보진영에서 '금융 개방해서 외환위기 당하지 않았소?' 이렇게 말하고 싶겠지만, 그것은 개방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개방의 준비가 부실해서였지요. 금융 개방이라고 하는 아주 중요한, 말하자면 경제 전체의 핵심적인 시스템에 해당하는 금융 개방 문제에 준비가 부실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196p~197p 중에서

 WTO 가입이나 OECD 가입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또 이야기를 하려면 글을 몇 편은 써야 될 것 같으니, 구체적인 평가는 넘어가고, '그 당시 반대주의자들이 했던 이야기들나 논리들이 전부 다 잘못된 것이었는가' 하는 점만 이야기하자면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지요. 

 물론 예측이 어긋난 부분은 있을 거라고 봅니다. 예컨대 WTO만 해도 생각만큼 무역자유화를 촉진시키지 못한 측면이 있죠. 다자간 협상의 틀에서는 약자들도 뭉쳐서 저항할 수 있을테니...그래서 FTA를 통해서 각개격파하자는 발상도 나온 것일테고요. 하지만 그런 부분은 당시 WTO를 추진하려고 했던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도 예측 못 했던 부분들 아니겠습니까? 그게 '진보주의자들이 교조적인 이념에 빠져들어서 그렇다'고 하는 건 좀 무리죠. 그런 부분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그 당시 상황에서 정확하게 예측을 할 수 없었던 부분들이 있었다고 봐야될 겁니다.

 그리고 OECD 가입도 이후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구조조정을 대폭 촉진시켰던 또 한 가지의 계기는 YS 정부가 주도한 한국의 OECD 가입이었습니다. 한국이 OECD에 가입하기 위해서 핵심적으로 해야 할 것은 '자본 자유화'였습니다. OECD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거기서 요구하는 기준을 맞춰야 했던 것입니다. 이에 따라 YS 정부는 자본자유화를 99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을 발표합니다. 당시에 한국정부가 OECD에 제시한 개방일정을 보면, 우호적 M&A를 적정한 범위 내에서 인정하고, 포트폴리오 투자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며, 부동산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를 역시 부분적으로 허용한다는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OECD에 가입하기 위해서 과거에 비해 획기적으로 진전된 형태의 자본자유화 방안을 추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IMF 구제금융 이후에 더욱 강화된 형태로 추진되는데요, 이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여러분들은 개방화 조치를 비롯한 일련의 구조조정 작업들이 YS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IMF 이후에 전면적으로 도입된다는 사실을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진실>, 265p 중에서

 결과적으로 작년의 세계 금융 위기가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폭로한 셈이고,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개방과 신자유주의에 대해 했던 이야기가 상당 부분 맞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점에서 역사의 사실을 무시하는 쪽은 오히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개방에 대해 한 이야기가 물론 다 맞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다 틀렸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개방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개방의 준비가 부족해서 외환위기를 당한 거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한미FTA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한미FTA반대 진영에서 졸속협정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죠. 이 부분은 또 다음 편에 넘기고..(생각보다 글이 많이 길어지는군요;)  그래서 안타깝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충고가 공허하게 들립니다.

"그러니까 공허하게 교조적인 이론에 매몰되어서 흘러간 노래만 계속 부르지 마라, 이겁니다. 일부 고달프고 불평스러운 사람들을 선동해서 끌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일부 이른바 강단사회주의라고 이야기하는 급진 지식인들은 뭉쳐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198p 중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야말로 공허하게 '개방은 선이다'라는 교조적인 이론에 매몰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개방은 상황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은 구체적인 상황과 개방에 따라 달라지겠죠. 그런데 왜 하필이면 한미FTA라는 거의 최악의 형태의 개방을 선택하면서 국민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추진을 해야 했나? 더구나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역사의 사실을 무시하는 사람들이다'라는 식의 프로파간다를 해가면서까지 추진해야 했나? 사실 저로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다음에는 한미FTA의 특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to be continued


ps 1. 이 글을 계속 쓰는 이유는 제 나름대로 한미FTA에 대해 정리해보기 위해서입니다. 한미FTA 반대 시위에 몇 차례 나가기도 했고, 허세욱 열사의 죽음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기도 했었기 때문에 한미FTA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관심이 있습니다. 이쪽저쪽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객관적으로 정리를 해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한미FTA 찬성론자들이 쓴 책이 별로 없어서...그러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만약 이 글이 지나치게 한미FTA 찬성론자들의 목소리를 담지 못한다고 해도 제 탓만은 아닙니다.-_;;;

ps 2. 4번은 제가 봐도 좀 많이 부실한데 제가 경제학에 워낙 아는 게 없고 하다 보니 어쩔 수가 없네요. 어차피 이 글에서 다루려고 했던 건 한미FTA의 문제고 개방이라는 것 전체에 대한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부족한 부분을 메꿔줄 리플들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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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에 밀착해서 살아왔다. 역사는 목동의 피리소리에 맞추서 춤추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부상자의 신음소리와 싸움하는 소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