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9일  아크로 회원 이덕하님은 아크로의 문화/예술/과학 게시판에 <무슨 근거로 야한 옷차림이 성범죄를 유발하지 않는다고 믿는가?>라는 표제로 글을 올립니다. 그 글에서 덕하님이 소개한 기사가 하나 있으니, 일간스포츠에서 2010년 7월 28일 보도한 <미니스커트가 성폭행 유발 “맞다” “아니다”>가 바로 그겁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눈길을 끄는 곳이 하나 있는데, 바로 아래 대목입니다. 

 
 
 미니스커트가 성폭행 유발 “맞다” “아니다”

 
지난해 영국에선 여자의 야한 옷차림이 실제로 성폭력의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리세스터 대학교 심리학과 소피아 쇼 교수 팀은 여자들에 꽉 끼거나 짧은 옷차림의 여성이 성에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여성계는 “성폭행 원인은 남자에 있다”며 반발했다. 당시 영국의 여성단체는 이 연구 결과에 대해 “야한 옷차림이 강간을 유발한다는 것은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기사링크

 

 이 대목은 두 가지 이유에서 흥미로운데 그 하나는 내용 그 자체가 지니는 흥미로움입니다. 여자의 야한 옷차림이 실제로 성폭력을 유발함을 발견했다는 영국 심리학 교수팀의 연구결과라... 연구의 소재나 그 연구의 결론 모두 자극적이고 도발적이죠.

 두번째 이유는 이 대목이 덕하님이 글 말미에서 부각시킨 구도, 즉 과학적 연구를 통해 사태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자 하는 냉철한 과학자와 이와 대조적으로 올바른 대의에만 매몰되어 머리가 텅 비어버린 채 뜨거운 가슴만 가진 멍청한 페미니스트 진영이라는 대립적 구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의 하나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기사 표면만 본다면 일견 그렇게 보이죠. 

 그러나 저 문제의 기사 대목의 뒤를 아주 조금만 파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집니다. 
 이하는 그에 대한 시간별 정리. 

 1)  2009년 영국 리세스터 대학 심리학과 소피아 쇼(Sophia E. Shaw)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그 해 영국에서 열린 <법의학 심리학 연차 학술대회>에서 "Personality characteristics, sexual behaviours and perceptions of women: Examining the factors that affect male propensity to commit acquaintance rape"라는 제목으로 연구결과를 발표합니다. 

 이 연구결과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The British Psychological Society>가 발간하는 학술지를 통해 일반공중에 발표됩니다. 


 2)  2009년 6월 23일, 영국의 대중매체지 <일간 텔레그래프 The Daily Telegraph>는 이렇게 발표된 연구결과를 신문보도기사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합니다. 

 기사제목은 "Women who dress provocatively more likely to be raped, claimed scientists". 
 기사 머리글은 "The way women dress, how flirtatious they are and their levels of drunkenness really do have an effect on the likelihood of them being raped, claim scientists."


 3) 그리고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2010년 7월 28일, 앞서 말했던 일간스포츠의 한 기사에서 저 일간 텔레그래프의 기사내용이 한줄요약 형태로 한국에 소개됩니다. (글 모두에 인용한 대목 참고)


 4) 이 기사내용은 바로 그 즈음 한국의 포털 사이트 네이트에서 벌어진 성폭력 논쟁에도 논란의 대상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기사 내용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게 됩니다.  저도 몰랐는데 그 당시 네이트에선 이 문제로 한동안 토론판이 떠들썩했다는군요.
  (
[추가][수정]안녕하세요 범죄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5) 다시 이로부터 약 3년이 지난 2013년 6월 29일, 이 문제의 대목이 포함된 기사는 아크로의 이덕하님이 본문 중에 링크를 걸어 아크로에 소개됩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런데, 그 뒷사정을 알게 나면 이게 좀 황당해집니다. 애시당초 소피아 쇼 교수팀의 연구결과를 보도했던 그 <일간 텔레그래프>의 기사가 연구내용을 엉터리(심지어 정반대)로 왜곡해 보도한 왜곡-날조기사였던겁니다. 

  <일간 텔레그래프>의 그 기사가 나간 뒤 소피아 쇼 교수를 비롯한 영국심리학협회는 보도내용에 이의를 제기하고, 왜곡-날조기사로 사람들 낚으려다 들통이 난 <일간 텔레그래프>는 꼬리를 말며 사과 및 기사삭제 조치를 취합니다. 

 이 사실은 바로 이 링크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가능합니다. 2009년 7월의 일입니다. 
 
 
 
 (British Psychological Society: Miss Sophia Shaw :
 
 Owing to an editing error, our report “Women who dress provocatively more likely to be raped, claim scientists” (June 23) wrongly stated that research presented at the recent BPS conference by Sophia Shaw found that women who drink alcohol are more likely to be raped. In fact, the research found the opposite. We apologise for our error. )


 그렇다면 문제의 이 기사는 소피아 쇼 연구팀의 연구결과 중 무엇을 어떻게 왜곡-날조했다는 걸까요?  그 좀더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 소피아 쇼 교수 본인의 입을 통해 확인됩니다. 

 2009년 10월, 영국심리학협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홈피에 소피아 쇼 교수가 올린 글을 일부 따와 살펴봅시다. 

 
 
 The Print media and rape 

 Based on the BPS press release, The Daily Telegraph issued an article, both in print and online. However, the media report came from an altogether different angle to that of both the BPS press release and the original study—The Telegraph headline stated ‘Scientists say women who drink alcohol, wear short skirts and are outgoing are more likely to be raped’. The results described in the headline were contrary to the study’s findings
 
  The research found that men with extensive sexual histories engaged in more sexual contact with the woman in the scenario, even when she indicated that she did not wish to continue engaging in the sexual activity. In addition, a main effect of alcohol intoxication was found, such that men chose to opt out of the situation much sooner if the woman was intoxicated. Note that the direction of the alcohol effect is opposite to that reported by the Telegraph. No effects were found for the woman’s dress or her flirtatiousness on men’s self-reported likelihood of coercing a woman into sexual activity. The woman’s sexual experience is beginning to emerge as a significant factor (data are still being collected to investigate this possibility), with men engaging in more sexual activity with the woman in the scenario if she was described as highly sexually experienced. 
 
 ...(중략)...

   Interestingly, the focus of the Telegraph article was on the behaviour of the hypothetical woman, rather than on the behaviour of the male participants who took part in the study. Perhaps the so-called “spin” of the Telegraph’s article provides an indication of a more systemic problem, whereby people have a tendency to scrutinize the victim’s behaviour to determine whether the victim precipitated the attack. 


 
 <일간 텔레그래프>의 기사보도, 그리고 일간스포츠지에서 보도한 기사내용과는 연구결과의 내용이 전연 다름을 소피아 쇼 교수 본인이 주장하고 있죠. 

 결국 저 어느 꼴통영국기자의 구라기사 하나에 여러사람 낚인 겁니다.

 이후 3년이 지나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한국까지 도달해 네이트라는 포털 사이트 토론장에서도 여러 사람 헛힘 쓰게 만들었고.

 다시 그 뒤 1년이 지나 아크로의 이덕하님마저 낚았죠. (전 덕하님이 일간스포츠의 기사 중 저 대목을 보고 냉철한 과학자 대 멍청한 페미라는 대립구도를 떠올렸을 거라고 '추정'합니다. 또 야한 옷차림이 성폭행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믿을만한 하나의 근거라고 생각했을 개연성도 꽤 높다고 '추정'합니다. 제 추정이 맞다면, 덕하님마저 2009년의 저 날조기사가 낚은 셈이죠)

 소피아 쇼 교수는 저 글 말미에서 "After a long correspondence with the researchers of the study and the BPS, The Telegraph eventually retracted their article and apologised; however, one has to wonder how much damage had already been done by the time the article was removed from the Telegraph’s website"라고 말하고 있지만, 기사가 철회된 이후에도 저 구라기사가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아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 한 쪽 끝에 위치한 한국에까지 도달해 3년이 지난 뒤에도 소동을 야기할거란 우려까지 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러기엔  미처 그 상상력이 미치지 못했겠지요. 
 
 하여간 이 놈의 구라는 바퀴벌레라고나 할까요. 죽여도 죽여도 끝까지 살아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