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 원래 김수영이 했던 말이였나요? 그 뒤에 김지하가 풍자가 아니면 자살이다라고 패로디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돌이켜보면 당시 시대상황을 꿰뚫는 명언이죠. 풍자나 조롱은 약자의 무기입니다. 유럽의 궁정에서 악세사리로 있던 어릿광대들의 임무였고 한국에서도 장터를 떠도는 연희패들의 장기였죠. 체제를 대체할 무기도 논리도 갖추지 못한(또는 갖출 수 없는) 약자들이 훗날을 보존하면서도 강자에게 기스라도 내고 다른 한편으론 그나마 숨통을 틀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요.  '아니면' 뒤에 따라붙는 단어들도 의미심장합니다. 당시 폭력적인 파시스트 체제에서 풍자를 할 수 없으면 세상에 도튼 사람으로 살든지, 아니면 죽는 것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는 비장함이 지금도 몸을 떨게 하는군요.

그렇지만 지금 시대에도 유효할까요? 물론 부분적으론 유효할 겁니다. 지금도 분명 약자는 존재하지요. 당장 제가 좋아하는 음쩜셋의 글이 감동을 주었던건 그 자신이 너무나 처절한 루저라는 존재기반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그렇지만 저 글이 유효했던 당시와 비교하면?

전 최소한 진보 개혁 진영은 아니라고 봅니다. 최소한 박정희외에 다른 체제를 제시할 수 없었던(그랬다간 죽으니까) 당시와 비교하면 그래요. 민주 개혁 진영은 10년이나 집권했습니다. 진보 진영도 체제에 들어와 세금 받아가며 행정 권력에 참여하고 있지요.

이런 현상은 사람들의 문화를 봐도 그렇습니다. 당시엔 대중들 사이에도 풍자와 조롱이 유행했죠. 소위 전두환 고스톱 시리즈부터 이주일 현상 등등. 박재동 화백 만화에 실린 황지우씨 글을 보면 아주 재밌는 대목이 있어요. 인기 코미디언들을 보면 항상 절대 권력자의 아이콘이투영되었다는 겁니다. 박정희 시절엔 배삼룡, 전두환 시절엔 이주일, 노태우 시절엔 김형곤이었죠. 그 이후엔? 없어졌습니다. 왜?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아닌 것 같으세요? 지금도 이명박 코미디는 유행하고 있다구요? 글쎄요. 그때만큼 대중적 파급력을 갖고 있나요? 하다못해 이명박 코미디의 내용을 봐도 그래요. 대부분이 구 소련이나 동독에서 유행했던 코미디를 이름만 바꿔 내놓더군요. 즉, 그 코미디를 유통하는 주체들조차  창의적인 뭔가가 솟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 그때만큼 절박하지 않으니까.

이야기를 조금 바꿔보죠. 전 참여정부가 실패하지 않을까란 예감을 받았던게 바로 검사와의 대화였습니다. 일단 개혁 진영 내의 이상열기를 이해할 수 없었죠. 그건 뭐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그 뒤에 어느 방송국에서 열린 토론회를 보면서 진짜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죠. 토론자들을 다 기억나지 않는데 한쪽엔 홍근표였고 이쪽은 유시민이 참여했습니다. 그 외에 두 사람이 더 있었는데요. 아무튼 이름이 기억나지 않고...

그 내용을 다 기억하진 않는데요. 아무튼 제가 놀랐던건 의외로 토론이 괜찮게 진행되었다는 겁니다. 검찰의 중립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 이를 위해 인사권을 검찰에게 넘길 것인가 계속 법무부 장관에게 둘 것인가. 그 인사위원회는 어떻게 구성하는게 좋은가. 외부 인사의 참여는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등등을 놓고 토론이 꽤 생산성있게 진행 되더라구요. 그런데 말이죠.... 막판에 갑자기 유시민이.... 사실 제도에 대해 논의할 때 꿔다놓은 보릿자루 처럼 있던 유시민이....갑자기 얼굴이 벌개지면서...(그림 그려지시죠?)

"아니 도대체 무슨 소리들 하고 있는 겁니까? 지금 토론 아주 잘못하고 있어요. 지금 이 자리는 과거 정치적 중립을 잃고 전횡을 일삼았던 검찰을 비판하고 반성을 촉구해야하는 겁니다. 그런데 무슨 제도가 어떻고 그게 뭐 중요합니까?"

참석자들 모두의 얼굴에 '이 뭥미?' 보고 있던 저도 '이 뭥미?"

속으로 그랬죠. 혹시 참여정부 핵심 주체들이 가야할 곳은 권력이 아니라 재야가 아닐까? 재야가 의미없다는게 아닙니다. 다만 책임과 역할이 다르다는 거죠. 전 그때 어쩌면 참여 정부는 전문성이나 치밀한 계획 없이 단지 개혁적이라는 이유로 목소리만 높이는 정권이 되지 않을까란 불안을 안았습니다. 그 뒤에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는 여러분들의 평가에 맡깁니다.

물론 분노와 성토도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권력을 쥐고 난 뒤의 모습은 달라야죠. 최대한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하며 다수를 포용하는 모습을 갖춰야 안정적 기반하에 성과를 낼 수 있죠. 전 참여정부의 파토스는 분노와 성토가 가장 컸고 그게 바로 실패의 요인이었다고 봐요. 처음엔 한나라당을 향해, 그 다음엔 난닝구들을 향해, 그 다음은 숫제 국민을 향해.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자면 참여 정부 당시 있었던 토론에서 누가 더 논리적이었을까요? 몇번 보지 않아 자신할 수 없지만 제가 보기엔 한나라당이었습니다. 가령 로스쿨 토론회부터 그랬어요. 로스쿨 옹호자로 나온 열우당 국회의원이 별로 나은 논리를 제시하지 못하다 갑자기 중간에 '아니 한나라당이 그런 말할 자격이 있습니까?'하는데 정말 하품 나오더군요. 쟤들은 할 줄 아는 말이 저거 밖에 없나라는 실소가 슬슬 배어나오고. 군 가산점 토론에선 전원책이 스타로 부각됐죠. 그거 충분히 이유있는 현상입니다. 그 토론회 봤는데 반대쪽은 무슨 환상만 제시하더군요. 반면 전원책은 외면적으론 열변을 토하지만 그 논리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뒷받침되었거든요. 다 그만두고 반대편에서 '모병제로 가야한다' '과학화해야 한다' '연금을 비롯해 모든 제대군인이 혜택을 받는 제도가 되야 한다'그러는데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왜 니들이 정권 잡고 있었을 때 그렇게 못했니?'란 아주 간단한 의문.

결론은 뭐냐. 정치 권력 투쟁에서 논리적인게 결국은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다수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갖고 있지 못하면 아무리 조롱과 풍자를 잘해봐야 별 도리가 없어요. 자꾸 진중권 떡밥을 던져 죄송합니다만 진중권의 조롱과 풍자가 재밌었을 때는 그가 한겨레 정도에 나왔을 때입니다. 방송 출연하며 잘 나가기 시작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의 자리에 나가 조롱과 풍자만 일삼으니 점점 식상해지고 나중엔 짜증이 나더군요. 만약 진보의 이미지가 조롱과 풍자로 굳어진다면, 제가 장담하건대 집권은 안드로메다에서 하는게 나을 겁니다. 물론 지금 진보 진영의 이미지가 그렇진 않다는 점에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