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크로 공식 명의의 시국 선언은 반대입니다. 

아크로가 어떤 곳입니까? 열려있는 공간에서, 합리적인 토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론의 장이 아니던가요?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고 배척하거나 쫓아내지 않고, 누구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토론사이트가 아니던가요? 어느 한쪽 정파의 사람들이 모여서 정치적인 운동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의 생각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애시당초 설계된 공간입니다. 

즉 아크로는 어떤 균질한 결사 집단이 아니라 그냥 열려있는 공간일 뿐이라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린 공간'의 이름으로 어떤 특정 사안에 대해 '시국 선언'을 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정치 토론 사이트라는 아크로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입니다. 

특히나 별로 탐탁치 않아하는 회원들, 반대의 목소리를 낸 회원들이 분명히 있는 상황에서, "모두의 의견을 통일시키는 건 어려우니 투표를 해서 몇 % 이상이면 아크로 전체의 의견으로 인정하고, 아크로 전체 명의로 목소리를 내자." 라고 말씀하시는 회원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사실은 섬찟했습니다. 이런 회원 분들께서는, 아크로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 공간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크로가 어떤 곳인지에 관해, 아주 훌륭하게 설명되어 있는 글은 이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http://theacro.com/zbxe/6035

".. 아크로는 당파성으로 물든 한국의 인터넷 토론 문화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만든 새로운 토론 사이트입니다. 오로지 합리적인 근거에 의한 토론을 통하여 건강한 한국 사회를 만드는...  공론의 광장입니다. 아크로는 ... 자신의 주장과 지식의 좌판을 벌일 수 있도록 늘 열려있는 무료 장터입니다. ... 모든 주장과 논리는 자유를 보장받으며, 책임은 오직 스스로에게만 있는 공정한 토론장을 지향합니다.."

"... 우리는 그와 아울러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가 다수결을 통한 지배 권력의 산출이라는 단순한 형식과 절차에서 시작함과 동시에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상호 인정과 협력합리적이고 건설적인 의사 소통에 바탕을 둔민주주의적 공론장 안에서만 비로소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라는 점을 스스로에게 다시 환기 시키는 바이다이러한 공론장 민주주의를 통해서만즉 공정한 의사 소통의 합리적 절차가 최대한 보장될 때에만우리가 원하는 평등한 정치적인 자유는 최대로 실현될 수 있고또 그를 통해 각 개개인의 의사들의 단순한 총합이, 국가와 사회의 공론을 이끌어 가는 일반적인 의지로 발전적으로 수렴되고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이다진정한 의미의 공론장은 그러므로 국민의 주권적인 의사가 만들어지는 민주주의의 모태인 것이다..."

by 숨쉬는 바람

 

열린 공간 명의의 시국 선언이란 말은, 세발낚지의 갈비뼈 라는 말 만큼이나 공허하고 모순적입니다. 

(2) 아크로 회원 명의로 시국선언 내지는 공동 게시물을 작성하는 일은 찬성합니다.

그리고 저는 기꺼이 그 선언문에 제 아이디를 올려 놓을 생각입니다.

군사 독재 정권이 끝난 지도 이미 20년이 지났는데, 국가 기관 그것도 국가정보원이 직접적으로 정치에 관여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거기에 수사기관이 그 활동을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도 있습니다. 이건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행위였고,  그냥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일인 것에 이견이 없습니다. 

국민들이 관심 없다, 아크로가 비웃음거리가 된다, 특정 정파(친노세력)에게 유리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부차적인 내용입니다.

* 아무리 국민들이 먹고살기 바빠서 관심이 없고, 박근혜 대통령이 인기가 많아서 들어려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일 수록 국민들에게 이 사안이 얼마나 중대한 민주주의의 위기인지, 이런 문제는 그냥 넘어가서는 계속 반복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는 이야기를,  (분노해서 광장으로 뛰어나오라고 선동하는게 아니라), 조목조목 조리있게 설명해 주는게, 공론장으로서의 아크로의 사명입니다.

* 아크로가 비웃음거리가 된다는 이야기, 남의 이목이 두려워 내가 옳다/그르다 라고 생각하는 일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론장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오히려 남들의 비웃음에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논리를 펼칠 수 있는 곳이 아크로입니다. 

* 마찬가지로 특정 정파(친노)가 유리해지기 때문에 잘못되어 있는 것을 그냥 넘어가야 한다는 것도 저로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 야당 (민주당)이 있기 때문에, 나서서 외쳐봤자 소용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깥에서 아무런 호응이 없으면, 원내에서 야당이 뭔가 만들어낼 동력이 부족합니다. 즉, 이 중요한 문제를 어떤식으로든 처리하려면, 적절한 "여론"의 뒷받침이 필요한데, 아크로 같은 공론장의 목적이 바로 이런 여론을 (정제해서) 형성하는데 있는 겁니다. 

개인 명의가 합쳐진 선언은, 별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솔직히 아크로 명의로 선언해도 누가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여기가 무슨 수십만의 회원을 거느린 사이트도 아닙니다. "우와 그 사이트도 시국 선언 했다. 회원수 몇만.."  이런식으로 세몰이 해서 덩치를 불려 보이려고 하는, 억지로 여론을 만들려는 '사이트 명의' 선언은 효과도 없고, 의도도 좋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크로가 여론에 조금이라도 반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은 글을 쓰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숨쉬는 바람님이 쓴 아크로 소개글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 각 개개인의 의사들의 단순한 총합이, 국가와 사회의 공론을 이끌어 가는 일반적인 의지로 발전적으로 수렴되고 형성될 수 있다.."

그러므로 아크로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목소리를내고, 글을 쓰고, 토론을 해서 이 문제를 환기시켜야 진정한 여론 형성의 장이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회원들 명의가 모아진 선언문은 그 목적을 만족시키는데 충분하다고 믿습니다.